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칼럼 / 시민일보 / 2003-08-28 19: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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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2) 불을 뿜는 海女示威
    강은자는 쉽사리 말려들 수 없었다. 못 이긴체 하고 따라나설 법도 했건만, 왠지 육감이 안 좋았고 그래서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다.

    “왜 갑자기 빵이야? 니가 빵을 산다는 건 말이 안돼. 빵을 산다면 진명의숙 소재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사야하는 것 아니겠어? 주객전도도 유분수지 니가 어떻게…?”

    강은자의 말인즉슨 이치나 경우나 어느쪽으로 갖다 맞춰도 백번 옳은 말이었다. 최정옥의 얼굴에 낭패의 빛이 비쳤다가 후딱 사라졌다.

    “꼼꼼하긴…. 누가 좁쌀 할망 아니랄까봐 그러냐? 정 그렇다면 요다음 니들이 사든가…? 오늘은 내가 큰 맘먹고 선심 한번 쓰자는 거니까 잔말 말고 따라와 주심 돼요. 자 , 가자구!”

    최정옥은 그럴싸하게 꾸며대고 선웃음치며 붙잡은 손에 힘을 주어 바짝 끌어 당겼다. 그래도 부동자세를 허물어 뜨리기엔 어림도 없다고 이를 악물며 다짐을 하고는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강은자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어서, 몸이 말을 들을 것 같지는 않는 상황이었다. 늪은 보였다 안보였다 해서일까?

    구원이라도 청하겠다는 심정인 듯 그녀는 바위처럼 도사리고 선채, 양숙희의 얼굴위로 시선을 기울였다. 양숙희는 이미 강은자의 흔들리고 있는 속마음을 읽고서, 구미가 동하는 쪽으로 채찍질하는 것만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골고루 좋은게 좋은 것 아니겠냐고, 일깨우기로 마음을 굳혔다.

    “너무 사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지 않니? 그쯤해도 우리 체면은 세운거라구. 동창생끼리 야박하게 굴 것 없잖아? 끝까지 사양하면 강제로 끌고 갈 모양이니까 못 이긴체하고 따라가 보자. 응!”

    양숙희는 한술을 더떠서 강은자의 등을 떼밀었다. 그제서야 강은자는 시큰둥하니 발걸음을 내디디었다. 진명의숙에서 ‘전방’까지는 약 3백m. 그러니까 문제의 전방은 진명의숙에서 약 1km떨어진 천외동 못미쳐 중간지점인 일주도로변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날따라 하늘엔 먹구름이 짙게 깔린 탓으로, 질천하니 탁 트인 한길이었지만 10여m앞도 가늠할 수 없는 암울하고 살벌한 밤이었다.

    그런데, 강은자와 양은숙을 이끌고 최정옥이 진명의숙을 떠나 점방쪽을 향해 2백m쯤 걸어갔을 때였다. 그녀들 앞으로 우람한 괴물체-2개의 검은 그림자가 총알같이 튀어나왔다. 아니, 이게 귀신이냐 사람이냐? 미리 길목을 지키고 있었던 ‘복병’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세사람은 기절초풍 오금이 저려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그녀들은, 동지섣달 설한풍에 사시나무 떨 듯 달달달 떨기에 바빴다. 전방까지는 약 1백m. 비명을 지르면 전방에서 들릴수 있는 거리였다.

    그래서 비명을 질러 봄직도 했지만, 비명소리가 목구멍밖으로 울러 터질 것 같지가 않다. 게다가 깊은 산속 공동묘지 같은 음침하고 살벌한 한길 위여서 비명을 내지를 엄두도 나지 않지만, 설령 큰 소리로 외친다손 치더라도 구원의 손길이 미치기를 바랄 수도 없는일이다.

    영락없이 그녀들은 ‘고립무원’ 죽음의 외딴섬에 갇힌 몸이 되고 말았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떠오르긴 하지만, 기사회생의 기적은 일어날 가망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녀들은 체념할 수 없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아돌아올 수 있다는 속담이 불현 듯 떠올랐다.

    설마하니 죄없는 사람 죽이기야 않을테지? 똑같이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그녀들은 공포에 떠는 모습외에 달리 보여줄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런데, 2개의 검은 그림자는 말없이 도사리고 서서, 그녀들의 떠는 모습을 바라보다 코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어디 보자! 사흘 굶은 우리에게 포식시켜줄 맛 좋은 먹거리 대령했나 안 했나…. 입맛 당기는걸!”

    철저히 얼굴을 가린 괴한들은 변조된 목소리로 콧노래 부르며, 그녀들의 얼굴을 꼼꼼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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