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위장진지로 가는 길
제주도 유일의 일간지인 B일보는 제주인의 기질을 적나라하게 돋보여주는 자랑스런 정론지(正論紙)였다. 그리고 윤동성 기자는 30만 ‘괸당’인 도민의 편에 서서 싸우는, 패기 있고 배짱 있는 정의의 언론인이었다. 29일자 1면 톱기사는 제주도가 발칵 뒤집힐 정도로 거센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었다. 이튿날일 30일 아침, 이만성의 집에 B일보를 듣고 흥분된 얼굴로 헐떡거리며 달려온 사나이,
그는 서병천 이었다. 요 며칠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그가 불쑥 나타난 것은, B일보기사가 안겨준 충격 탓임을 첫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서병천씨 틀림없나요? 꽤 여러 날 동안 왜 자취를 감췄었는지? 혹시 개성에 다녀오시기라도...그렇습니까?” 외출을 하려고 툇마루를 갓 내려선 이만성이 불쑥 나타난 방문객을 보자 반가움이 앞섰지만, 본의 아니게 터져 나온 가시 돋힌 목소리는 상대방을 자못 어리둥절케 했다.
“미안합니다. 여러 날 동안 연락은 못 드려서...그새 아버님은 별고 없으신지요?” 서병천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이양국에 대한 문안인사를 배놓지 않았다.
“아버지는 무고하십니다. 염려 덕분에...급히 볼일이 있어서 잠깐 외방 가셨어요. 서형 소식이 끊겨서 아버지도 무척 걱정을 하셨더라구요. 대관절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던 겁니까?”
“개성에 다녀온 건 아니구, 줄곧 제주에 머물러 있었지요. 별것은 아닌데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느라 경황이 없었어요. 자세한 얘기는 곧 아시게 될 테니 너무 몰아붙이지 말아주세요. 그건 그렇고, 그저께는 경서 K일보에서 제주인의 얼굴에 먹칠하는, 악의에 찬 기사를 싣고 있어서 얼마나 불쾌했는지 모를 정도였다니까.
그런데, 어제 날짜의 B일보는 널따란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을 활짝 걷어 젖히듯, 아주 통쾌하기 짝 없는 기사가 실렸더군요. 30만 ‘괸당’의 명예를 회복시켜준 백만달러짜리 이상의 값진 기사라고 생각되어서, 얼마나 기쁘고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할 일이 더러 남아있지만, 뒤로 미루고 이렇게 달려왔지 뭐예요” 이만성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듣고 있다가 얘기가 끝나자, 서병천의 손을 붙잡고 힘주어 흔들었다.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뜨거운 동지애를, 체온을 통해 확인 시켜주는 길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느껴진 때문이었다.
“모처럼 찾아오신 귀빈, 방안으로 모시지 못하고 이거 죄송합니다. 서형은 지금 저와 함께 가주셔야 해요. 그동안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구요. 그래서 서형이 나타나시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지 뭡니까?” 이만성은 이틀전 ‘건준’의 오진구부장과 B일보 윤동성기자가 다녀간 사실과 곁들여서, 김대호 선생 실종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연거푸 일어난 경위와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서병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화무쌍하게 일그러지면서, 금방 폭발음을 터뜨릴 것 같은 긴박감과 위기감을 동시에 돋보여 주고있었다.
“이거야 꾼도 아니구. 지극히 절망적이군요. 김대호 선생은 기적이 없는 한, 십중팔구 ‘불귀의 객’이 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지 않아요? 30만 ‘괸당’들의 대들보를 잃었으니...이렇게 암담하고 비통할 수가...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면장타도운동’도 물거품이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고... 우리 모두 발벗고 나서서 납치범 색출을 위해 신명을 바쳐야 되지 않겠어요? 정치적 음모를 분쇄하는 것이 만시지탄은 있지만 다급한 선결과제라고 보여진다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자, 갑시다. 고정관·조용석 선배님들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그분들과 의견교환해야 합니다. 그렇잖아도 도선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만나 제주성내로 동행키로 되어 있지요” 두사람은 달미동을 떠났다. 그런데 두사람은 도선마을과 달미동이 갈리는 길목에서 고정관-조용석 등과 맞닥뜨렸다. 낯선 두 청년에 끼여있어서 이만성-서병천에게 짙은 궁금증을 안겨주고 있었다. 웬 청년들일까?
제주도 유일의 일간지인 B일보는 제주인의 기질을 적나라하게 돋보여주는 자랑스런 정론지(正論紙)였다. 그리고 윤동성 기자는 30만 ‘괸당’인 도민의 편에 서서 싸우는, 패기 있고 배짱 있는 정의의 언론인이었다. 29일자 1면 톱기사는 제주도가 발칵 뒤집힐 정도로 거센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었다. 이튿날일 30일 아침, 이만성의 집에 B일보를 듣고 흥분된 얼굴로 헐떡거리며 달려온 사나이,
그는 서병천 이었다. 요 며칠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그가 불쑥 나타난 것은, B일보기사가 안겨준 충격 탓임을 첫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서병천씨 틀림없나요? 꽤 여러 날 동안 왜 자취를 감췄었는지? 혹시 개성에 다녀오시기라도...그렇습니까?” 외출을 하려고 툇마루를 갓 내려선 이만성이 불쑥 나타난 방문객을 보자 반가움이 앞섰지만, 본의 아니게 터져 나온 가시 돋힌 목소리는 상대방을 자못 어리둥절케 했다.
“미안합니다. 여러 날 동안 연락은 못 드려서...그새 아버님은 별고 없으신지요?” 서병천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이양국에 대한 문안인사를 배놓지 않았다.
“아버지는 무고하십니다. 염려 덕분에...급히 볼일이 있어서 잠깐 외방 가셨어요. 서형 소식이 끊겨서 아버지도 무척 걱정을 하셨더라구요. 대관절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던 겁니까?”
“개성에 다녀온 건 아니구, 줄곧 제주에 머물러 있었지요. 별것은 아닌데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느라 경황이 없었어요. 자세한 얘기는 곧 아시게 될 테니 너무 몰아붙이지 말아주세요. 그건 그렇고, 그저께는 경서 K일보에서 제주인의 얼굴에 먹칠하는, 악의에 찬 기사를 싣고 있어서 얼마나 불쾌했는지 모를 정도였다니까.
그런데, 어제 날짜의 B일보는 널따란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을 활짝 걷어 젖히듯, 아주 통쾌하기 짝 없는 기사가 실렸더군요. 30만 ‘괸당’의 명예를 회복시켜준 백만달러짜리 이상의 값진 기사라고 생각되어서, 얼마나 기쁘고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할 일이 더러 남아있지만, 뒤로 미루고 이렇게 달려왔지 뭐예요” 이만성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듣고 있다가 얘기가 끝나자, 서병천의 손을 붙잡고 힘주어 흔들었다.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뜨거운 동지애를, 체온을 통해 확인 시켜주는 길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느껴진 때문이었다.
“모처럼 찾아오신 귀빈, 방안으로 모시지 못하고 이거 죄송합니다. 서형은 지금 저와 함께 가주셔야 해요. 그동안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구요. 그래서 서형이 나타나시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지 뭡니까?” 이만성은 이틀전 ‘건준’의 오진구부장과 B일보 윤동성기자가 다녀간 사실과 곁들여서, 김대호 선생 실종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연거푸 일어난 경위와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서병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화무쌍하게 일그러지면서, 금방 폭발음을 터뜨릴 것 같은 긴박감과 위기감을 동시에 돋보여 주고있었다.
“이거야 꾼도 아니구. 지극히 절망적이군요. 김대호 선생은 기적이 없는 한, 십중팔구 ‘불귀의 객’이 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지 않아요? 30만 ‘괸당’들의 대들보를 잃었으니...이렇게 암담하고 비통할 수가...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면장타도운동’도 물거품이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고... 우리 모두 발벗고 나서서 납치범 색출을 위해 신명을 바쳐야 되지 않겠어요? 정치적 음모를 분쇄하는 것이 만시지탄은 있지만 다급한 선결과제라고 보여진다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자, 갑시다. 고정관·조용석 선배님들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그분들과 의견교환해야 합니다. 그렇잖아도 도선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만나 제주성내로 동행키로 되어 있지요” 두사람은 달미동을 떠났다. 그런데 두사람은 도선마을과 달미동이 갈리는 길목에서 고정관-조용석 등과 맞닥뜨렸다. 낯선 두 청년에 끼여있어서 이만성-서병천에게 짙은 궁금증을 안겨주고 있었다. 웬 청년들일까?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