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목소리… 묵직한 울림

    문화 / 시민일보 / 2003-10-30 17: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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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명씨는 기네스북에 최장기수로 기록된 인물이다. 수감생활만 무려 44년. 한국전이 한창이던 51년, 만 25세의 나이로 UN군에게 포로로 붙잡힌 뒤 95년에 비로소 풀려났다.

    `선택’(제작 영필름ㆍ신씨네)의 주인공은 바로 김선명(김중기). 젊은 시절에서부터 칠순의 나이로 교도소 담에서 벗어날 때까지의 궤적을 좇는다.

    53년 재판장이 선고한 형량은 15년이었으나 사형으로 무거워졌다가 이듬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이야기는 서울구치소에서 마포형무소, 그리고 대구를 거쳐 대전교도소로 이감되면서 새로운 감방 동료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높은 담과 사방이 꽉 막힌 방에서 그의 육신은 고통스러웠으나 가슴속에 품은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고 동지들을 만나 추억담을 나누는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72년 10월 유신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무지막지한 전향공작은 모든 것을 앗아가버렸다.

    새로 부임한 좌익수 전담반장 오태식(안석환)은 폭력범들을 동원해 전향서를 쓰기를 강요한다. 거듭되는 폭력과 고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신념을 포기한다. 김선명은 동지에 대한 신뢰와 통일에 대한 희망마저 사라진 처지에도 양심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태식의 끈질긴 협박과 회유에 그는 “커다란 사상은 버릴 수 없어도 작은 양심은 버릴 수 없다”고 말한다.

    이밖에도 목소리는 나지막하지만 큰 울림을 갖는 내레이션들이 내내 귓전을 맴돈다.

    “인간에게 운명이란 게 있고 그걸 선택할 수 없다해도, 나는 이제 내 운명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 운명이므로.”, “인간이 운명을 선택할 수 있다면 같은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두렵다.”, “사람들은 자유가 감옥 밖에 있는 줄 알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감옥 안에 있었다. 양심의 자유가 그곳에 있었으니까.”

    영화가 역사와 진실의 무게로 관객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만은 아니다. 수인들의 장기자랑, 밥그릇 모스 부호를 이용한 통방(通房) 등 교도소의 생생한 풍경이 흥미롭다.

    이 영화를 보면서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진실의 힘. 실화를 극화로 꾸민 100여분의 모든 장면보다도 김선명이 출감 직후 94세의 노모를 만나는 채 1분도 되지 않는 다큐멘터리 장면이 가장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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