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문화 / 시민일보 / 2003-12-01 17: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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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16) 범인들은 오리무중

    윤동성 기자가 버스정류장에 나타나 것은, 이만성과 헤어진 지 2시간후인 오후 6시30분께 였다.

    “자, 우리 집으로 갑시다. 10여분 걸리는 거리이지만, 자전거가 있으니 다행이군요, 저녁식사도 하고 하룻밤 푹 쉬고 가시지요”
    이만성은 스스럼없이 옷소매를 끌어당겼다.

    “모슬포에 급히 볼일이 있어서 오늘은 안되겠어요. 양해바랍니다. 김정애는 만났어요. 연락선에 탄 사실 시인하더군요. 그러나 광주에 볼일이 있어 다녀왔을 뿐, 의심받을 짓은 안했노라면서 펄쩍 뛰던데요. 알리바이조사를 해 볼 작정입니다. 그리고 가짜 편지 전달과는 강민호로 밝혀졌어요. 일본에서 대학을 나왔고, 좌익책을 많이 읽었다던데요.

    지난달 23일 그자는 ‘건준’의 이도인 위원장과 김대호 부위원장을 평소에 잘 알고 있는 터여서, 사무실로 찾아가서 만났었다는 거예요. 김대호선생으로부터 부탁 받은 편지를 갖고 버스정류장에 나왔었는데, 우연히 김정애를 만나게 되었고 그녀에게 편지를 넘겼다는 얘기였어요-확인하는 문제만 남은 셈이지요”

    윤기자는 취재결과를 달음질식으로 설명해주고 휭하니 달아나 버렸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멍하니 서 있다가 이만성은 허겁지겁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는 자신이 김대호 선생 살해범을 추적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음을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로 김정애와 그녀의 제2 기둥서방 강민호가 지목되고 있음도 말씀드렸다.

    그러나 선뜻 동의하고 격려까지 해 줄 것으로 믿었던 이양국의 입에서는…꿀먹은 벙어리인양 가타부타 말이 없다. 이만성은 영문을 모른 채 무안하고 두렵기까지 해서 몸둘 곳을 못 찾고, 어리둥절해 하다가 김영선양이 추적도중 김정애의 역습을 받았으나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윤기자가 한남마을에서 르포기사를 취재하고 돌아간 사실도 털어놓았다.

    “젊은 사람들답게 정열을 앞세우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가상히 여길 뿐 나무랄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한가지 물어보자! 혹시 너는 이 사건을 반대방향으로 추적해 볼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았더냐라고…. 무슨 뜻이냐 하면 범인은 따로 없다- 그 한마디로 족하다는 얘기지.

    물론 나의 추리가 1백 % 들어맞는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한번 되새겨볼 값어치는 있을 것 같이 느껴지는구나!” 이양국은 아들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애드거 앨런 포’ 저리가라할 탐정소설 작가로서의 기질을 간직한 아버지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이만성이었지만, 이번 사건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져서, 거부감이 솟구치는 것을 그는 억제할 수 없었다.

    “그럼, 아버지께서는 자작극으로 단정지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만성은 핼쓱한 얼굴로 투박하게 되물었다.

    “음, 자작극이라는 얘기가 되겠지? 김대호 그 사람에 대해 그 됨됨이를 이 애비는 잘 알고 있단다. 나도 그렇지만 그 친구도 탐정소설을 즐겨 읽었어. 평소에 범죄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구. 요컨대 연락선을 무대로 쇼를 연출했다고나 할까. 무대위의 배우들은 김대호의 각본대로 움직였던 하수인들이고, 윤기자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 주연배우역을 맡았던 것으로 볼 수 있겠지?”

    “그럼, 딸 영선에게 전달된 가짜 편지는요?”

    아들의 질문, 그것은 주눅이 든 목소리였다.

    “가짜가 아니고 진짜인 셈이지, 착각은 자유겠지만, 있지도 않은 범인을 찾아내려고 법석떨지 말고 차분히 관망자세를 취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것 같다만…” “그럼, 그분은 생존해 있고 언젠가는 돌아오시겠군요?”

    “그럴테지, 시끄럽고 위험한 과도기가 지나면 불쑥 나타날지도 모른다구! 추리이기 때문에 빗나갈 수도 없는건 아니지만…”

    자작극-아버지의 추리가 적중하든 말든 언젠가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랴! 싶은 생각으로 이만성의 머릿속은 꽉 채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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