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문화 / 시민일보 / 2003-12-03 18: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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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2) 군중소리 발포소리

    “아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그럼, 저 남쪽나라 탐라국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고려국 송도에 오신 귀한 손님 이만성씨란 말입니까? 뜻하지 않게 찾아와 주셔서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하하하”

    서병천은 여관이 떠나갈 정도로 호쾌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허둥지둥 계단을 내려섰다.

    그리고 요란스럽게 서양식 포옹을 거친 다음, 시큰둥하니 떨어지고 나서 뒤늦게 생각난 듯 김순익과 뜨거운 악수를 나눴다.

    “자, 올라갑시다. 저의 집은 3층입니다”

    잠옷 자락을 펄럭이며 서병천은 신바람이 난 듯 앞장서서 휘적휘적 계단을 올라갔다. 이윽고, 두사람은 널따란 대청마루인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두분 정말 잘 오셨습니다. 이 여관은 지은지 1년 남짓 되었습니다만, 그동안 세를 놓았었지요. ‘집들이’ 때에나 여러 동지들을 초대할 생각이었습니다만, 그동안 짬을 낼 수가 없었어요. 요즘 개성에서 가족들도 내려왔고, 직접 경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두사람이 소파에 앉기 바쁘게, 서병천은 따르르 글을 외듯 거리낌없이 떠들어댔다.

    “황제의 꿈이라! 대충 알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제주성내에 올 때엔 숙박료 준비 않고 빈손으로 올 작정이니까요”

    이만성이 꿍꿍이 속 치하와 곁들여서, 고개를 끄떡거리며 걸쭉하게 우스갯소리로 응수를 했다.

    “물론이지요. 이 여관은 서병천의 것임과 동시에 동지 여러분의 것이라니까요. 김순익동지도 아셨겠지요? 공적이든 사적이든간에 공동의 집으로 아시고 기탄없이 이용해주세요” “자선사업도 아니고 명색이 여관인데, 적자운영을 감수하시겠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요. 바가지 긁는 가족 등쌀에 쫓겨나는 꼴을 눈뜨고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네요!”

    김순익도 우스갯소리로 들린 탓인지, 고개를 꺄우뚱거리며 우스갯소리로 맞받아 넘겼다.

    “진담입니다. 농담으로 듣지 마세요. 남아일언이 중천금이라는 말 기억해두시면 됩니다. 에또, 그건 그렇고 고정관·조용석동지도 와 계십니다. 간밤에 우리는 뜬눈으로 꼬박 밤을 새웠어요. 지금 혼곤히 잠이 들었나봅니다. 천천히 깨우기로 하지요. 그래, 어쩐일로…?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건가요?” 서병천이 정색을 하고 물었다.

    “급한 일이 생긴건 아니고…. 고정관, 조용석 두 형님이 와 계신 참이라 함께 의논해볼까하구…”
    이만성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의논할 일이라면…. 지체할 것 없이 깨워야겠군!”

    서병천은 불에 덴 듯 뛰어 일어났다. 붙잡을 사람도 없는데, 그는 도망치듯 아래층으로 우당우당 내달리는 것이었다. 숨돌릴 겨를도 없이 고정관·조용석을 앞세우고 서병천이 응접실로 되돌아왔다. 물론 ‘의논’도 중요하지만 다섯사람은 얼렁뚱땅 세수부터 하고 아침식사를 했다. 커피한잔씩을 마신 다음, 그들은 진지하고 느긋한 모습으로 무릎을 맞댔다.

    “오진구씨와 윤기자가 동참을 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다음으로 미루고 우리끼리 먼저 얘기를 나누는 것도 무방할 것 같네요”

    이만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궁금증에 사로잡힌 눈들이 날카롭게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김대호선생 실종사건이 발생한 바람에 보류했던 ‘관광면장 타도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실종사건은 미궁에 빠뜨리는 한이 있어도, ‘면장타도’만은 기필코 해치워야 할 초미의 급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김순익동지를 강제로 끌고오다시피 대동하고 오게 된 것도 그래서였지요” 이만성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드디어 때는 왔구나! 싶어서였던지 매우 초조해진 얼굴로 새치기라도 하듯, 고정관이 침방울 튀기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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