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문화 / 시민일보 / 2003-12-04 17: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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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3) 군중소리 발포소리
    “그렇잖아도 건준 양남욱부위원장님을 어젯밤 이 자리에서 뵈었었다네. 나와 조동지 그리고 서동지더러 ‘건준’으로 들어와 달라는 얘기였어. 이만성동지도 물론 거명되었었고…. 그런데, 나는 학병동맹 소속인 관계로 곧 경성을 떠나야할 몸이고, 조동지 또한 학업을 끝내지 못한 처지여서 사양할 수 밖에 없었어.

    그래서 일단 서병천동지만 합류하기로 결정을 본 셈일세, 차제에 ‘건준’을 새로이 출범시켜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지. 아직은 극비사항이지마, 양부위원장을 정점으로 서병천동지가 제2인자가 되어 ‘건준’을 보아란 듯이 이끌어 나가게 되었어. 따라서 김대호선생 실종사건 탓으로 유보되어온 ‘면장타도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데에도 뜻을 모았으니까 이만성동지는 그리 알고, 서동지와 손을 잡고 함께 의논하며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보게나!

    그럼 서동지가 구체적인 계획 같은 것을…” 고정관은 설득력있게 차분히 경위를 설명해주고 책임있는 서병천에게 배턴을 넘겼다.

    “지난밤에 있었던 일은 방금 고정관위원장님이 설명해 주신 그대로입니다. 면장타도문제도 임시안건으로 거론이 되었었지만, 이만성, 김숙익동지가 불참한 상태에서 본격적으로 토의할 형편이 못 되었었어요. 이동지와 김동지가 부랴부랴 달려온 마당에 미결로 끌어온 면장타도 문제를 다루어야겠지요. 우선 관광면장에 관한 것은 특별케이스로 아니 테스트케이스로 당장 착수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기위해 먼저 김순익동지를 주축으로 뜻있는 사람들을 규합해서, 관광면민의 이름으로 들고일어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관광면장타도를 신호탄으로 해서 제주도전역에 걸쳐 범도민운동으로 전개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실을 보 수 있을 것으로 믿어마지 않습니다.”

    서병천이 목에 힘을 주고 떨리는 목소리로, 지금이야말로 행동으로 옮길 때임을 겉으로는 온건론인 척 하면서 속으로는 강경론을 펴고 있었다. 그러자 고정과·조용석·이만성 등은 ‘사실은 내가 그 소리를 하려고 했었는데!’ 대신해준 격이어서,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 빤히 마주 보며 고개들을 그럴싸하게 끄덕였다. 하지만, 김순익만은 달랐다. 그는 너무도 뜻밖이라는 듯 어리둥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숨통과 말문이 꽉 막힌 상태였다.

    “왜 김동지만 입을 다물고 있소? 여느 때의 김동지 같지 않게…. 고정관 선배나 이만성 동지도 서슴없이 동의를 하고 있는데…나도 물론 찬성이지만, 어디 김동지의 얘기 들어보기로 할까요?”

    조용석이 대뜸 핀잔이라도 주는 것 같은 말투로 김순익을 다그치고 나서, 씽긋 웃고는 나머지 사람들의 의중을 떠보려는 듯 말꼬리를 접었다.

    “김동지가 얘기하기 전에 제가 한마디해야겠군요. 오늘아침 사실은 제가 혼자서 달려올까 하다가 부랴부랴 김동지를 앞세우고 달려오게 된 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지요. 긴급을 요하는 당면과제로서 관광면장타도에 관한 한, 오로지 김동지소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습니까?

    생각해보세요. 여러 선배님들! 제주도내 10여개 읍면의 읍면장들을 일제히 타도하는 데엔 여러 가지 장애물들이 가로놓여 있는게 현실이 아닙니까? 일단 시험용 애드벌륜을 하늘높이 띄워볼 필요도 있고, 관광면민들의 단결된 힘을 과시하는 계기도 될 터이고, 그래서 모처럼 찬스를 잡은 김에 김순익 동지에게 한풀이와 곁들여서 실력 발휘할 기회를 주기 위해 맡겨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 때문이었어요”

    이만성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김순익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김순익은 격앙된 얼굴에서 눈빛을 빛내며 두 주먹을 무쇳덩어리처럼 불끈 쥐어졌다.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비장한 결의가 몸과 마음속에서 성난 파도처럼 일렁거리고 있음을 읽게 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이만성동지를 억지로 따라온 셈이엇는데…. 못난 저에게 엄청난 중책을…”

    감격한 목소리로 김순익의 말은 떠듬떠듬 이어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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