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문화 / 시민일보 / 2003-12-06 18:12:18
    • 카카오톡 보내기
    “존경하는 여러 선배님들! 불초 이 김순익은 여러 선배님들을 하늘같이 믿고, 시키는 대로 심부름이나 착실히 해 드리는 것으로써 보람을 삼으려고 했던 것이 솔직한 마음가짐이었습니다. 그런데, 선배님들은 이 구실 저 핑계로 뒤로 쏙 빠지시고, 어리석고 못난 저를 전면에 내세우시겠다니, 이렇게 난감해보긴 머리에 털이 난이래 처음이랍니다. 몸과 마음이 떨려서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김순익은 눈물을 글썽거려가며 입으로는 선배들을 탓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크게 감격한 나머지 몸둘곳을 모르고, 어리둥절해 하는 그 순박함과 우직함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신뢰감과 안도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자, 머리에 털 난이래 처음으로 난감해 하는 김순익동지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뜻에서,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내기로 할까요?”

    고정관이 흐뭇해하는 눈으로 여러사람들의 얼굴을 싹 훑어보고 나서, 두손을 번쩍 들어 박수를 쳤다. 나머지 사람들도 덩달아 환호성을 올리며 박수를 쳤다.

    “이거 정말 어쩔 수가 없군요. 그럼 자신은 없습니다만, 선배님들의 지엄한 명령에 순순히 복종하기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선배님들 이점만은 잊지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뭔고하니…제가 전면에 나서서 싸우는 데 있어 목숨이라도 바칠 각오는 이미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전쟁과 같은 성격의 것이므로 치밀한 작전계획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거든요. 제주도내 전체의 면장타도 운동이 언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그리고 관광면장타도에 있어 시일과 방법론 등, 심도있게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셔야지만 차질없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김순익의 말발엔 달라진 것이 없다. 퍽 나직하고 온건한 것이었지만, 얼굴의 모습은 서서히 달라져가고 있었다. 몸 속에 감춰져있었던 특공대장 기질을 드러내면서, 바야흐로 임전태세-단방치기 돌격을 감행하기 직전의 늠름함과 단호함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좋아요. 그 대목에 대해서는 여러사람의 중지를 모아서 결정하는게 좋을 것 같네요. 우선 차근차근 방법론을 펴보기로 하되, D데이를 언제로 잡느냐부터 결정하자구요!”

    고정관의 제안이었다.

    “시일은 늦추지 않아야겠지요. 거사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봅니다. 저는…” 이만성의 의견이었다.

    “이건 저의 깊지 못한 사견입니다만, 다급하다 해서 졸속으로 치닫는건 곤란하니까 준비기간만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준비기간을 1주일 정도로 잡고, D데이는 오는 10일이 어떨가 싶네요!”

    신중론을 내세우면서 촉박하게 날짜를 잡은 사람, 그는 서병천이었다. 1개월이상 늦춰 잡는게 아닐까 하고, 속마음을 졸였던 많은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음이 뚜렸했다.

    “더 앞당기는 것도 무리이고 더 늦추는 것도 곤란하니까 10일께로 못박는게 무방할 것 같소. 그러나 한 두사람의 뜻대로 택일을 한다는 것은 옳다고 보지 않아요. 달라진 의견이 많으면 많을수록 민주적인 방식으로 걸러서 여과를 시켜야 하니까, 기탄없이 생각나는 대로 날짜들을 꼽아봐요!”

    고정관이 민주방식을 운운하면서 개방적인 의견제시를 촉구했다.

    “생각 같아서는 오늘이라도 해치워야 옳을 일이지만, 저도 D데이 10일을 찬성하고 싶어요”

    조용석의 말을 끝으로 D데이는 10일로 낙착을 보았다. 뒤이어 동원문제·투쟁방법 등 종합적인 작전계획이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확고하게 세워졌다. 뿐만아니라 양남욱 부위원장을 필두로 고정과·조용석·이만성·서병천·오진구 등은 상임고문으로 추대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말이 고문이지 그들은 태산같이 도사리고 서서, 엄호사격하는 백만대군으로서의 구실을 다한다는 것이 주어진 소명인 셈이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시민일보 시민일보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