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떼기’ 대선자금

    고하승 칼럼 / 시민일보 / 2003-12-10 18:5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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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고 하 승
    {ILINK:1} 현금을 가득 실은 트럭이 고속도로 입구 만남의 광장으로 서서히 진입한다.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트럭에서 내린다. 아무리 보아도 트럭운전기사는 아닌 것 같다.

    그 사내는 뒤이어 나타난 회색양복을 입은 한 노신사와 귓속말을 주고받고는 둘이 함께 어디론가 사라진다. 잠시 후 돈 다발을 가득 실은 그 트럭이 유유히 만남의 광장을 미끄러지듯이 빠져 나온다.

    그런데 어럽쇼?

    운전자가 바뀌었다. 분명히 들어갈 때는 검은 양복의 사나이가 운전을 했는데 나올 때는 회색양복을 입은 노신사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 아닌가. 다음날 아침, 시내 모처에 그 트럭이 다시 나타났다.

    으잉?

    그런데 운전자가 또 바뀌었다. 이번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의 신사가 운전대를 잡았으며, 회색양복의 노신사는 그 트럭을 향해 입가에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한나라당이 LG그룹으로부터 현금 150억원을 실은 트럭을 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서 인계받은 뒤 다음날 빈 트럭을 돌려주었다는 검찰의 발표가 있었다. 이는 마피아영화의 한 장면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정말 참담하다 못해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심정이다.

    서민의 입장에서 불법정치자금 150억원이 트럭으로 한꺼번에 오갔다는 `차떼기’소식은 가히 충격적이다. 사실 조직폭력배, 특수강도, 마피아도 `차떼기’같은 파렴치한 수법은 동원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정의구현을 사명으로 하는 법조인이 그 트럭을 운전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더구나 삼성과 SK 불법 대선자금 추가 포착소식까지 전해진 상황이다. 대검 중수부는 바로 어제 삼성이 지난 대선 직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법률고문을 지낸 서정우 변호사에게 채권 형태로 100억원을 전달하고 현금 40억원을 최돈웅 의원을 통해 각각 한나라당측에 추가로 제공한 정황을 잡고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일각에서는 여전히 부끄러움을 모르는 듯 대선자금 특검법 검토 입장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으니, 도대체 정신이 있는 사람들인가. 필자는 그들의 낯이 얼마나 두꺼운지 한번 재보고 싶은 심정이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한나라당은 이제 특검법을 낼 자격이 없다.

    오히려 한나라당과 이회창씨는 고해성사를 통해 불법대선자금의 전모를 밝히고, 국민 앞에 백배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형평성 시비가 더 이상 불거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노 대통령측 대선자금 수사결과도 조속히 공개돼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지난해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회창씨는 이들 기업에 강취(强取)한 이상의 상당한 특혜를 주었을 것이며, 그로 인해 우리 경제가 얼마나 왜곡됐을지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하지만 이 쌀쌀한 날씨보다도 한나라당의 ‘차떼기’ 불법 대선자금 소식이 우리 서민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든다. 그래서 이 겨울이 더욱 춥게 느껴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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