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관광면 하늘에는 불길한 조짐을 떠올리는 짙은 먹구름이 땅버닥에 닿을 것처럼 드리워져가고 있었다. 이를 갈며 눈을 부라린 ‘불구대천의 원수’같은 두 세력간의 아귀다툼은, 피바다를 전제로 한 격돌과 파멸의 종착역을 향해 숨가쁘게 치닫는 중이었다.
과연 어느쪽이 이기고 어느쪽이 지느냐? 보다도,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을 것이냐라는 미지수의 결과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태였다.
이종상면장의 집에서는 철통같은 보안조치 속에서 긴급대책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4명의 특공대원들이 양규일고문을 그의 집으로 찾아갔던 그날 밤-그러니까 양고문이 불쑥 들이닥친 특공대원들로부터 편지를 전해받은 시간대와 맞물리는 그 무렵이었다.
긴급대책회의라고는 하지만, 안방에 모여 앉은 면민들을 훑어볼 것 같으면 우선 그 규모부터가 쓸쓸하고 초라했다.
학병으로 나갔다 돌아온 맏아들 윤근(潤根-25)과 둘째아들 영근(英根)을 위시해서, 이종상의 심복으로 알려진 5명의 면서기들이 전부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얼굴엔 쫓겨 달아나는 도망자들처럼 겁에 질린채 패색이 짙게 깔려 있었다.
“아버지! 제가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짜고 골똘히 생각해보아도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서 아주 냉철하고 엄밀하게 따져볼 때 그것 이상의 묘책은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맏아들 윤근의 발언이었다. 당돌하게 첫 발언을 한 그러서는 긍지를 내세울 법 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얼굴에도 목소리에도 힘이 없고 자신이 없어 보였다. 귀를 쫑긋 세우고 시선을 기울었던 주위의 사람들 얼굴엔 눈에 띄게 낭패의 빛이 감돌았다.
묘책이 있다고는 하지만, 대견스런 것이 못된다는 것을 육감으로 짚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음, 방법이라…? 그게 뭔데…? 하나밖에 없다는 그 방법이 어떤 것인지? 어서 얘기해 보아라! 사람 감질나게 굴지말구…”
이종상이 예감이 안 좋은 듯 퉁명스런 목소리로 채근을 했다.
“네, 말슴드릴께요. 거북살스럽더라도 끝까지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시국과 정세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지요. 이미 이 땅에서 일본제국주의는 완전히 물러갔습니다. 어디 일본제국주의 뿐인가요?
독일이나 이태리에도 아니 온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도 민중 위에 군림해온 독재는 영원히 쫓겨나 버린게 사실이지요. 영국이나 미국처럼 민중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시대 즉 민주주의시대를 맞게 된 셈입니다.
우리 조선 땅에는 당분간 미군정이 베풀어지겠지만,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으로 독립하고 민주정부가 수립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닌가라고 여겨지거든요.
물론 지금은 일제식민지 정치를 끝내고, 자유민주주의 나라로 옮겨가고 있는 희망찬 과도기가 아니겠습니까?”
맏아들인 윤근이 여기까지 살얼음판 기는 기분으로 늘어놓았을 때였다.
“잠깐!”
이종상이 눈알을 부라리며 볼멘소리로 제동을 걸었다.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신나게 잘 나가던 윤근이 입을 헤벌린채, 철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넋을 잃고 어리둥절했다.
“네가 무슨 소리를 늘어놓자는 건지 끝까지 들어보나마나 결론을 뻔한 것 아니겠냐? 시간 없다. 그 정도 지껼였으면 됐잖아? 입 다무는게 좋겠다!”
이종상의 얼굴은 붉으락 푸르락 험악하게 일그러졌고, 목소리는 심하게 떨려나왔다.
동지섣달 설한품에 사시나무 떨 듯 모두들 떨기 시작했고, 방안은 두꺼운 얼음판으로 쫙 깔린 북그의 설원(雪原)으로 바뀌었다. 5명의 면서기들은 간덩이가 콩알만큼 오므라들면서 어깨를 축 늘어뜨린채, 쥐구멍 찾는 모습이 되어 있었다.
과연 어느쪽이 이기고 어느쪽이 지느냐? 보다도,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을 것이냐라는 미지수의 결과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태였다.
이종상면장의 집에서는 철통같은 보안조치 속에서 긴급대책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4명의 특공대원들이 양규일고문을 그의 집으로 찾아갔던 그날 밤-그러니까 양고문이 불쑥 들이닥친 특공대원들로부터 편지를 전해받은 시간대와 맞물리는 그 무렵이었다.
긴급대책회의라고는 하지만, 안방에 모여 앉은 면민들을 훑어볼 것 같으면 우선 그 규모부터가 쓸쓸하고 초라했다.
학병으로 나갔다 돌아온 맏아들 윤근(潤根-25)과 둘째아들 영근(英根)을 위시해서, 이종상의 심복으로 알려진 5명의 면서기들이 전부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얼굴엔 쫓겨 달아나는 도망자들처럼 겁에 질린채 패색이 짙게 깔려 있었다.
“아버지! 제가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짜고 골똘히 생각해보아도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서 아주 냉철하고 엄밀하게 따져볼 때 그것 이상의 묘책은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맏아들 윤근의 발언이었다. 당돌하게 첫 발언을 한 그러서는 긍지를 내세울 법 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얼굴에도 목소리에도 힘이 없고 자신이 없어 보였다. 귀를 쫑긋 세우고 시선을 기울었던 주위의 사람들 얼굴엔 눈에 띄게 낭패의 빛이 감돌았다.
묘책이 있다고는 하지만, 대견스런 것이 못된다는 것을 육감으로 짚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음, 방법이라…? 그게 뭔데…? 하나밖에 없다는 그 방법이 어떤 것인지? 어서 얘기해 보아라! 사람 감질나게 굴지말구…”
이종상이 예감이 안 좋은 듯 퉁명스런 목소리로 채근을 했다.
“네, 말슴드릴께요. 거북살스럽더라도 끝까지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시국과 정세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지요. 이미 이 땅에서 일본제국주의는 완전히 물러갔습니다. 어디 일본제국주의 뿐인가요?
독일이나 이태리에도 아니 온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도 민중 위에 군림해온 독재는 영원히 쫓겨나 버린게 사실이지요. 영국이나 미국처럼 민중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시대 즉 민주주의시대를 맞게 된 셈입니다.
우리 조선 땅에는 당분간 미군정이 베풀어지겠지만,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으로 독립하고 민주정부가 수립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닌가라고 여겨지거든요.
물론 지금은 일제식민지 정치를 끝내고, 자유민주주의 나라로 옮겨가고 있는 희망찬 과도기가 아니겠습니까?”
맏아들인 윤근이 여기까지 살얼음판 기는 기분으로 늘어놓았을 때였다.
“잠깐!”
이종상이 눈알을 부라리며 볼멘소리로 제동을 걸었다.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신나게 잘 나가던 윤근이 입을 헤벌린채, 철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넋을 잃고 어리둥절했다.
“네가 무슨 소리를 늘어놓자는 건지 끝까지 들어보나마나 결론을 뻔한 것 아니겠냐? 시간 없다. 그 정도 지껼였으면 됐잖아? 입 다무는게 좋겠다!”
이종상의 얼굴은 붉으락 푸르락 험악하게 일그러졌고, 목소리는 심하게 떨려나왔다.
동지섣달 설한품에 사시나무 떨 듯 모두들 떨기 시작했고, 방안은 두꺼운 얼음판으로 쫙 깔린 북그의 설원(雪原)으로 바뀌었다. 5명의 면서기들은 간덩이가 콩알만큼 오므라들면서 어깨를 축 늘어뜨린채, 쥐구멍 찾는 모습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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