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문화 / 시민일보 / 2004-01-06 18: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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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면장(面長)타도사건-3천명의 면민 대중이 벌떼같이 들고일어나서 관광면장 이종상을 현직에서 물러나게 한, 제주도내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범을 보인 민의(民意)의 승전고(勝戰鼓)였다.

    그러나 사건의 겉만 보고 속을 들여다보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말하기 좋다하고, 1개 면장 감투 벗긴 것 갖고 별 것도 아닌데 입맛 다시며 재탕삼탕 우려먹을 건더기가 있는 것일까? 하고 빈정거리기 쉬울 법하다.

    직접 현장에서 꺾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숲만 보고 나무를 못 봇 짧은 안목을 탓할 수 없을 테니까. ‘민의’와 ‘총칼’의 그 섬뜻 했던 대결을 피부로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겠다. 솔직히 말해서 하늘에서 떨어진 듯 땅속에서 솟아난 듯 지축을 뒤흔들며 기습공격을 퍼부은 무장병력 3천명의 민의는 곧 추풍낙엽이 되고 말았다.

    이종상의 주변에 1당백(一當百)을 자랑하는 무술인 패거리와 무장병력이 포진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 했던 게 거짓말 같은 현실이었다.

    민주적인 방법으로 면민과 면장사이에서 당사자끼리 조용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면민들은 군중심리에 의존했고 면장은 총칼에 의존했던 결과 눈 깜짝하는 사이, 관광면은 공포의 전쟁터로 바뀌고 말았었다.
    너죽고 나살고…한치의 양보없는 극한적인 적대감정의 폭발이었고, 그것은 다름아닌 2년후에 있을 ‘4·3항쟁’의 축쇄판(縮刷版)이자 예고편을 말해주는, 불길한 조짐임을 부인키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민의’와 ‘무장병력’과의 맞대결 결과, 승자는 누구이고 패자는 누구였더냐가 관심의 대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었다는 데 있다고 하겠다.

    헷갈리는 결론-민의가 승자임을 주장했을 때엔 상대방인 면장쪽에서도 승자임을 내세우게 되었을 정도로, 양자간에 얽히고 설킨 문제점은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고 평행선을 달리는 묘한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딱 부러지게 말한다면 승리도 패배도 어느 한 쪽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똑 같이 양쪽에서 공유(公有)하고 있다는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결국어느 한 쪽은 승자이고, 다른 한 쪽은 패자다라는 판정을 내리기 어려운 싸움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고 보면 승자와 패자는 비록 애매할망정 존재하고 있음이 사실이었다.

    얼핏 겉으로 보기엔 무장군경을 내세워서 3천여 군중을 제압한 이종상 면장에게 후한 점수를 매기고 손을 들어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종상 그는 명분없는 뚝심으로 위기를 넘기는 데 한 몫 했을 뿐, 올바르고 정당한 길에서 벗어나 단말마와 같은 만용을 휘두름으로써 스스로를 무덤구덩이로 굴러 떨어뜨리는, 어리석음을 범한 장본인이엇다.


    어렵게 어렵게 무장군경을 동원한 자리에서 면민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연기력 아닌 연기력을 그는 발휘했다.

    객기나 오기를 부리지 말고 역사에 오점(汚點) 남기는 치욕적인 난동을 부릴 것 없이 순순히 요구조건을 들어주었더라면, 자존심은 상했었다 해도 누이좋고 매부좋고 그 얼마나 바람직스런 일이었겠는가?

    그렇다면 결론은 뻔한 것 아니었겠는가?

    하지만, 김순익을 비롯한 시위군중은 자신들이 패배자임을 시인하고 있었다. 비록 목적을 달성했다고는 하더라도 굴욕의 댓가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치를 떠는 증오감과 패배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혹시 이종상이 제2의 역습을…? 면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어하는 참이었는데, 구세주처럼 불쑥 나타난 사나이-그는 서병천이었다.

    서병천은 패배를 겪을수록 칠전팔기(七顚八起)와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떠올리면서, 더욱 분발하는 강인한 성격의 사나이였다. 면민궐기대회가 끈난 직후, 그는 ‘松都旅館’에서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고정관, 조용석, 이만성(그들이 제주도를 떠나던 날), 오진구, 윤동성기자, 그리고 장지태, 부종운, 양윤근 등을 이끌고 김순익이 참석함으로써 회의장 안팎은 터질 것 같은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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