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民衆 ‘공생공존’ 형상화

    문화 / 시민일보 / 2004-02-01 20:15:35
    • 카카오톡 보내기
    전시 - ‘80년대 이응노 군상展’
    한지에 먹으로 그려진 수십, 수백, 수천의 인간들. 한번의 붓놀림이 곧 한 사람이 되는 일격의 운필이 무한히 반복돼 나타난 것이다.

    서로 손잡고 같은 율동을 취하고 있는 이들 한사람 한사람은 마치 살아 숨쉬는 인간같은 기운을 느끼게 한다.

    올해는 고암(顧菴) 이응노(李應魯 1904-1989) 화백이 태어난지 100주년이 되는 해. 고암은 1980년을 기점으로 생의 마지막 10년간 군상(群像) 연작을 남겼다.

    서울 평창동 이응노미술관은 탄생 100주년 기념전으로 미공개 군상 연작 50여점을 모아 ‘80년대 이응노 군상전’을 연다. 태어난 날인 2월2일(음력 1월12일)에 전시를 시작해 6월27일까지 계속한다.

    그림속의 사람들은 남녀, 노소, 민족, 계층의 구별도 없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고암은 생전에 “나의 그림은 추상적인 표현이었으나 1980년 5월의 광주사태가 있고나서부터 좀 더 사람들에게 호소되는 구상적인 요소를 그림 속에 가져왔다. 200호의 화면에 수천명 군중의 움직임을 그려넣었다”라고 쓴 적이있다.(「이응노-서울ㆍ파리ㆍ도쿄」)

    그는 자신의 그림 제목을 ‘평화’라고 붙이고 싶다며 “모두 서로 손잡고 같은 율동으로 공생공존을 말하는 민중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이응노는 충남 홍성 출신으로 일본 가와바타화학교를 졸업했으며 광복 후에는 단구미술원을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힘썼다. 1958년 파리에 정착, 1963년 살롱도톤전에 출품하면서 유럽 화단에 알려지게 됐고 1968년 제8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서 명예대상을 획득,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1967년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 강제 소환되어 옥고를 치르고 1969년 사면됐다. 파리 정착 뒤 동양의 서예와 문인화 정신을 기반으로 서양의 콜라주 기법을 혼용하여 독특한 환상적 기호로 개성적인 화면을 구축했다. 89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문의 02-3217-5672

    /임병화기자 cult@siminnews.net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시민일보 시민일보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