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참스승 선비’(전2권)는 삼국시대부터 항일기까지 빼어난 학덕과 절개를 보인 선비 234명의 이야기를 묶은 책이다.
소설가 이용범씨는 5년에 걸쳐 역사서와 개인문집, 문헌설화에서 본받을 만한 인물들의 일화를 가려 뽑았다.
신라 진평왕 때 병부령을 지낸 김후직은 왕이 지나치게 사냥을 즐기고 정사에 소홀한 것을 우려해 간언을 계속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가 늙어 병석에 누웠을 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나는 신하로서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다. 임금이 사냥하고 노는 데 정신이 팔려 나라가 망하는 꼴을 보게 될까 두렵다. 내가 죽거든 아무쪼록 임금이 사냥 나가는 길에 내 뼈를 묻어다오”
김후직의 세 아들은 어버지의 유언을 따랐고 이 소식을 접한 왕은 죽을 때까지 사냥을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최석은 고려 충렬왕때 관리였다. 그가 승평부사의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게 되자 고을 사람들이 관례에 따라 말 여덟 마리를 선물했다. 최 석은 말을 타고 도성에 도착한 후 말을 돌려보냈으나 고을 사람들이 받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최석은 급히 망아지 한 마리를 보내며 이렇게 전했다.
“오는 도중에 말이 새끼를 낳았는데 깜빡 잊고 그 망아지를 내가 데려오고 말았다. 이것은 나의 탐욕이었다. 이제 너희가 받지 않는 것은 나의 탐욕스러움을 알면서도 겉으로 사양하는 척하는 것이 아닌가?”
조선 초 재상 정갑손이 함길도 감사로 있을 때였다. 마침 조정에 일이 있어 도성으로 가던 중, 과거 합격자 명단에 아들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게됐다.
그는 서둘러 말을 몰아 도성에 도착한 후 곧바로 시관(試官)을 찾아가 꾸짖었다.
“늙은 놈이 감히 나에게 여우처럼 아양을 떠는구나. 내 아들놈은 아직 공부가 되어 있지 않거늘 어찌 임금을 속이고 과거에 합격시켰느냐!”
정갑손은 그 자리에서 아들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광해군은 즉위 직후 신료들의 천거를 물리치고 왕비의 외숙인 정창연을 이조판서에 임명했다.
조정에서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외척의 권세가 막강해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대구부사로 있던 정경세가 상소를 올렸다.
책은 이밖에 조선시대 여러 선비들의 이야기를 두루 소개한 뒤 독립운동가 조만식의 말로 끝을 맺었다.
“내가 죽은 뒤 비석을 세우려거든 거기에 비문을 쓰지 말고 큰 눈을 두 개 새겨다오. 저승에 가서라도 한 눈으로는 일본이 망하는 것을 보고, 다른 한 눈으로는 조국의 자주독립을 지켜볼 것이다”
바움 刊. 각권 420쪽 내외ㆍ1만5000원.
소설가 이용범씨는 5년에 걸쳐 역사서와 개인문집, 문헌설화에서 본받을 만한 인물들의 일화를 가려 뽑았다.
신라 진평왕 때 병부령을 지낸 김후직은 왕이 지나치게 사냥을 즐기고 정사에 소홀한 것을 우려해 간언을 계속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가 늙어 병석에 누웠을 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나는 신하로서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다. 임금이 사냥하고 노는 데 정신이 팔려 나라가 망하는 꼴을 보게 될까 두렵다. 내가 죽거든 아무쪼록 임금이 사냥 나가는 길에 내 뼈를 묻어다오”
김후직의 세 아들은 어버지의 유언을 따랐고 이 소식을 접한 왕은 죽을 때까지 사냥을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최석은 고려 충렬왕때 관리였다. 그가 승평부사의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게 되자 고을 사람들이 관례에 따라 말 여덟 마리를 선물했다. 최 석은 말을 타고 도성에 도착한 후 말을 돌려보냈으나 고을 사람들이 받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최석은 급히 망아지 한 마리를 보내며 이렇게 전했다.
“오는 도중에 말이 새끼를 낳았는데 깜빡 잊고 그 망아지를 내가 데려오고 말았다. 이것은 나의 탐욕이었다. 이제 너희가 받지 않는 것은 나의 탐욕스러움을 알면서도 겉으로 사양하는 척하는 것이 아닌가?”
조선 초 재상 정갑손이 함길도 감사로 있을 때였다. 마침 조정에 일이 있어 도성으로 가던 중, 과거 합격자 명단에 아들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게됐다.
그는 서둘러 말을 몰아 도성에 도착한 후 곧바로 시관(試官)을 찾아가 꾸짖었다.
“늙은 놈이 감히 나에게 여우처럼 아양을 떠는구나. 내 아들놈은 아직 공부가 되어 있지 않거늘 어찌 임금을 속이고 과거에 합격시켰느냐!”
정갑손은 그 자리에서 아들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광해군은 즉위 직후 신료들의 천거를 물리치고 왕비의 외숙인 정창연을 이조판서에 임명했다.
조정에서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외척의 권세가 막강해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대구부사로 있던 정경세가 상소를 올렸다.
책은 이밖에 조선시대 여러 선비들의 이야기를 두루 소개한 뒤 독립운동가 조만식의 말로 끝을 맺었다.
“내가 죽은 뒤 비석을 세우려거든 거기에 비문을 쓰지 말고 큰 눈을 두 개 새겨다오. 저승에 가서라도 한 눈으로는 일본이 망하는 것을 보고, 다른 한 눈으로는 조국의 자주독립을 지켜볼 것이다”
바움 刊. 각권 420쪽 내외ㆍ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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