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진실’

    고하승 칼럼 / 시민일보 / 2004-02-02 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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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고 하 승
    {ILINK:1} 필자가 언론인으로서 가장 고심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진실’을 알리는 일일 것이다. 특정 ‘사실’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언론인의 책무를 다했다고 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기사작성에 있어서 ‘사실’과 ‘진실’은 사뭇 다르다.

    최근 연합뉴스는 ‘워싱턴포스트’(WP)발 기사임을 밝히면서 ‘盧 자신 反부패 운동의 표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연합뉴스는 거두절미하고 WP가 “지난 6개월간 한국의 검사들이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캠프에 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체포한 기업가들과 이 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한 정치인, 노대통령 측근 인사들은 모두 16명에 달한다”고 보도한 사실을 전했다.

    심지어 연합뉴스는 WP가 “한국인들은 노(盧)에 철저히 환멸을 느껴 검사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면서 일반 국민은 정치권의 부패를 수사하는 검사들에게 인삼 등 보약을 보내거나 온라인 팬클럽까지 결성하면서 성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물론 연합뉴스의 보도내용이 전적으로 틀린 것만은 아니다. WP의 보도에는 그런 내용도 일부 포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진실’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WP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불법정치자금 수사가 진행중인 것과 관련) 법학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하고 있는 12개월 동안 유례가 없을 정도의 검찰 자율을 보장해 한국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부패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노력은 개혁성향의 검찰을 자신의 문 앞까지 이끌었다.”

    즉 노 대통령이 스스로 표적이 될 정도로 ‘검찰독립’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 기사의 주된 골자라는 말이다.

    그런데 일부 특정 사실만 나열함으로 인해 주제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오마이뉴스는 연합뉴스의 이같은 보도에 대해 ‘WP가 작심하고 노 대통령을 비난했다는 인상을 풍기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연합뉴스의 보도가 진실이 아닌 것만은 틀림이 없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지금 4.15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에서 연일 시민일보로 쏟아져 오는 보도 자료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정치부 기자는 사실 이런 보도 자료들을 받아 정당발 기사로 쓰면 그 뿐이다. 사실에는 어긋남이 없기 때문에 설사 잘못됐더라도 기자와 신문사는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자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언론인은 단순한 사실 전달자이기에 앞서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보여야하는 직업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도 기자들을 이렇게 독려한다.

    “사실보도가 늦어 비록 물먹는 한이 있더라도 기사의 진실규명을 위해 한번쯤 시선을 돌려보는 여유를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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