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귄터 그라스(77)의 신작 시화집 ‘라스트 댄스’(민음사 刊)가 번역돼 나왔다.
조각가이자 판화가로도 활동해온 저자는 이번 시집에서 춤을 통해 독일과 세계의 역사, 그리고 자신의 생애를 돌아본다. 나아가 성애를 표현한 관능적인 그림을 통해 성적인 욕망(에로스)과 죽음에 대한 욕망(타나토스)을 함께 드러내 보인다.
책에 실린 32점의 그림은 지난해 독일에서 전시회를 통해 공개된 것들로 연필, 목탄, 붉은 색연필 등을 이용해 격정적인 춤동작과 다양한 체위의 성교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수록작들은 2002년 소설 ‘아득한 평원’을 발표한 뒤 쓰거나 그린 것들이다.
좌파 지식인이자 사회참여작가로서 깊은 인상을 심어온 저자의 관능적인 그림들은 국내 독자들에게 의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의 제목처럼 말년의 노작가가 그림을 통해 솔직하게 드러낸 ‘삶의 마지막 춤’은 관능적 육체에 신성(神性)을 부여한다.
이에 대해 독문학자 장희창 박사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 시집의 생기발랄한 스케치들이,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짤막한 시들이 분명히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책에 실린 36편의 시들은 원스텝, 탱고, 폭스트롯, 왈츠 등의 춤을 통해 ‘열정적 춤꾼’으로 살아온 자신의 생애를 드러낸다.
저자는 “원스텝은 그렇게 단순했다. 아이였을 때, 이미 나는 배웠다. 전쟁중이었고, 군화를 신은 사내들은 동쪽 멀리 떠났다. 춤추고 싶어 몸이 단 아가씨들은 손가락을 튀겨 수업을 마친 우리 사내애들을 불렀다.”(‘일찍 배웠다’ 중)며 춤과의 오랜 인연을 소개한다.
그의 춤은 “고통은 다만 가면일 뿐. 분장한 채로 우리는 미끄러진다. 가없는 평면 위를, 발꿈치까지 따라온 죽음 위를”(‘죽음의 탱고’ 중)이라며 죽음의 목전에 이를 정도로 격렬하게 추는 탱고로 이어진다.
춤을 노래한 시들에도 저자의 좌파적 정치의식은 여전히 담겨 있다.
그는 ‘한때는 왈츠가 유행이었지’라는 시에서 국가주의와 자유주의 운동을 탄압했던 오스트리아 정치가 메테르니히를 기리는 비엔나 왈츠의 ‘가벼움’을 꼬집는가 하면, ‘옛 멜로디에 맞춰’라는 시에서는 ‘신의 명에 따라’ 이라크 전을 일으킨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난한다.
“미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장군들은 이제 스크린 위에서 명성을 떨치는구나. 그건 너무도 힘겨웠지, 검둥이로서 자신의 역할을 기어코 흰색보다 더 희게 만드는 일이란”이라고 쓴 ‘밀리터리 블루스’는 미국의 인종주의를 다루면서 콜린 파월 미국무장관을 우회적으로 비꼬고 있다.
춤추는 즐거움을 환기시키던 그의 시들은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회화적인 성애묘사로 넘어간다.
“그토록 오랜 세월 써먹어서 이제 닳아져 축 늘어졌는데, 그가 일어섰다 기적이다! 그가 일어섰다 너의 눈이, 너와 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모독당했다, 쓸모 있어졌다.”(‘기적’ 전문)거나 “우리가 엉킨 몸을 풀고 끈적이는 실오라기를 빼내었을 때 허기가 덮쳤다, 그러나 손에 잡히는 것은 고작 당근뿐이었다, 아삭아삭한, 날것이기에”(‘그 후’ 전문) 등의 시에서는 작가의 말마따나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는 나이에” 쓴 매우 솔직하고 명랑한 성적 표현들이 넘친다.
이수은 옮김. 100쪽. 1만6000원.
/임병화기자 cult@siminnews.net
조각가이자 판화가로도 활동해온 저자는 이번 시집에서 춤을 통해 독일과 세계의 역사, 그리고 자신의 생애를 돌아본다. 나아가 성애를 표현한 관능적인 그림을 통해 성적인 욕망(에로스)과 죽음에 대한 욕망(타나토스)을 함께 드러내 보인다.
책에 실린 32점의 그림은 지난해 독일에서 전시회를 통해 공개된 것들로 연필, 목탄, 붉은 색연필 등을 이용해 격정적인 춤동작과 다양한 체위의 성교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수록작들은 2002년 소설 ‘아득한 평원’을 발표한 뒤 쓰거나 그린 것들이다.
좌파 지식인이자 사회참여작가로서 깊은 인상을 심어온 저자의 관능적인 그림들은 국내 독자들에게 의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의 제목처럼 말년의 노작가가 그림을 통해 솔직하게 드러낸 ‘삶의 마지막 춤’은 관능적 육체에 신성(神性)을 부여한다.
이에 대해 독문학자 장희창 박사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 시집의 생기발랄한 스케치들이,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짤막한 시들이 분명히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책에 실린 36편의 시들은 원스텝, 탱고, 폭스트롯, 왈츠 등의 춤을 통해 ‘열정적 춤꾼’으로 살아온 자신의 생애를 드러낸다.
저자는 “원스텝은 그렇게 단순했다. 아이였을 때, 이미 나는 배웠다. 전쟁중이었고, 군화를 신은 사내들은 동쪽 멀리 떠났다. 춤추고 싶어 몸이 단 아가씨들은 손가락을 튀겨 수업을 마친 우리 사내애들을 불렀다.”(‘일찍 배웠다’ 중)며 춤과의 오랜 인연을 소개한다.
그의 춤은 “고통은 다만 가면일 뿐. 분장한 채로 우리는 미끄러진다. 가없는 평면 위를, 발꿈치까지 따라온 죽음 위를”(‘죽음의 탱고’ 중)이라며 죽음의 목전에 이를 정도로 격렬하게 추는 탱고로 이어진다.
춤을 노래한 시들에도 저자의 좌파적 정치의식은 여전히 담겨 있다.
그는 ‘한때는 왈츠가 유행이었지’라는 시에서 국가주의와 자유주의 운동을 탄압했던 오스트리아 정치가 메테르니히를 기리는 비엔나 왈츠의 ‘가벼움’을 꼬집는가 하면, ‘옛 멜로디에 맞춰’라는 시에서는 ‘신의 명에 따라’ 이라크 전을 일으킨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난한다.
“미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장군들은 이제 스크린 위에서 명성을 떨치는구나. 그건 너무도 힘겨웠지, 검둥이로서 자신의 역할을 기어코 흰색보다 더 희게 만드는 일이란”이라고 쓴 ‘밀리터리 블루스’는 미국의 인종주의를 다루면서 콜린 파월 미국무장관을 우회적으로 비꼬고 있다.
춤추는 즐거움을 환기시키던 그의 시들은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회화적인 성애묘사로 넘어간다.
“그토록 오랜 세월 써먹어서 이제 닳아져 축 늘어졌는데, 그가 일어섰다 기적이다! 그가 일어섰다 너의 눈이, 너와 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모독당했다, 쓸모 있어졌다.”(‘기적’ 전문)거나 “우리가 엉킨 몸을 풀고 끈적이는 실오라기를 빼내었을 때 허기가 덮쳤다, 그러나 손에 잡히는 것은 고작 당근뿐이었다, 아삭아삭한, 날것이기에”(‘그 후’ 전문) 등의 시에서는 작가의 말마따나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는 나이에” 쓴 매우 솔직하고 명랑한 성적 표현들이 넘친다.
이수은 옮김. 100쪽. 1만6000원.
/임병화기자 cult@simin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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