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시골약사 약혼녀로 ‘둔갑’

    문화 / 시민일보 / 2004-02-25 18: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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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제의 영화 - 그녀를 믿지 마세요
    어느 때부터 신세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에는 욕설과 배설물이 필수 재료인 것처럼 여겨져왔다. 청초한 여주인공이 이슬만 머금을 것 같은 입으로 쌍소리를 거침없이 내뱉는가 하면 토사물을 쏟아놓고 코딱지를 삼키기도 한다.

    이러한 `엽기적’ 세태에 얼굴을 찌푸리던 관객들은 지난 20일 개봉한 `그녀를 믿지 마세요’(제작 영화사 시선)를 한결 편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이야기는 탁월한 연기력으로 교도관과 가석방 심사위원들의 눈을 속인 사기범 영주(김하늘)가 교도소를 나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유일한 피붙이인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행 열차를 탔다가 애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러 가던 시골약사 희철(강동원)과 마주앉는다.

    희철은 애인에게 선물하려던 반지를 영주 좌석 아래 떨어뜨린 뒤 주우려다 오해를 받아 흠씬 두들겨 맞는다. 영주는 희철이 반지를 소매치기 당하자 가석방 상태에서 도둑 누명을 쓸까 두려워 범인을 뒤쫓는다.

    결국 반지는 되찾지만 가방을 놓아둔 채 기차를 놓치고 만다.

    수소문 끝에 희철의 동네를 찾아온 영주. 희철의 가족은 반지를 가져온 그녀를 희철의 약혼자로 오해하고 한번 시작된 거짓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엄청난 해프닝을 빚어낸다.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환경과 성격의 남녀 주인공을 하나의 상황 속으로 몰아 넣어 과장된 재미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는 2000년대 로맨틱 코미디인 `동갑내기 과외하기’나 `가문의 영광’과 닮았다. 그러나 `엽기 코드’를 덜어내고 푸근한 시골의 인심과 따뜻한 가족애를 내세웠다는 점을 보면 90년대 중반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그것은 배형준 감독이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맨’, `고스트 맘마’, `찜’ 등에서 연출력을 다진 늦깎이 신인이라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억지스러우면서도 무난한 구성과 어설픈 듯하면서도 과장된 캐릭터는 장점이자 단점. 자극적인 장면에 열광하는 관객을 만족시키기에는 밋밋해 보이고 완벽한 내러티브를 기대하는 사람의 눈에는 차지 않겠지만,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할 만한 작품으로는 별 손색이 없다.

    청순가련형 멜로 배우에서 `푼수데기’ 코믹 배우로 변신한 김하늘은 왕년의 장기를 웃음의 무기로 적절하게 활용한다. 처량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다가 뒤돌아서서 얄미운 미소를 흘리는 모습은 폭소를 자아낸다.

    모델 출신의 `꽃미남’ 강동원이 순진한 시골 약사로 등장해 수난을 당하는 장면을 보는 것도 즐겁다.

    관록의 탤런트 송재호와 김지영, 코미디언 출신 임하룡, `살인의 추억’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연극배우 류태호 등도 가세해 이들을 받쳐준다.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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