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덱스 목간’ 함안 출토유물서 확인

    문화 / 시민일보 / 2004-02-25 1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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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시대 지방별 호적관리 증거 뒷받침
    신라가 6세기 중반 진흥왕(540~578년) 무렵에 이미 각 지방별로 치밀하게 호적을 작성해 지방과 민(民)을 관리했음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인덱스(index 색인)용’ 목간(木簡)이 경남 함안 성산산성 출토 유물에서 확인됐다.

    이는 일본 열도보다 100년 가량 앞선 것으로, 신라가 일반적인 통념을 훨씬 뛰어 넘는 이른 시기에 중앙 국가권력이 지방 곳곳에 깊숙이 침투했음을 잘 보여주는 획기적인 유물로 평가된다.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소장 김선태)는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목제 유물류 중 목간으로 생각되는 112점에 대해 적외선 촬영을 실시한 결과 그 중 93점에서 묵글자 약 400자 가량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25일 발표했다.

    이들 묵글자 중 300여 자는 판독이 가능하며 나머지 95자는 판독이 어렵거나 학자간 이견이 있다고 밝혔다.

    목간이 제작된 시기에 대해 묵글씨에서 확인되는 신라의 벼슬 이름이나 지명 표기 등을 볼 때 6세기 중후반 무렵 혹은 그 이전에 작성된 신라시대 목간이라는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특히 목간류 중에는 두루마리 문서에 꽂는 목편으로 오늘날 ‘인덱스’ 혹은 ‘책갈피’와 같은 용도로 사용된 목간이 확인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런 목간은 한국보다 목간학 연구가 활발한 일본에서는 ‘다이센지쿠’(題籤軸)라고 일컫는 것으로, 모양은 마치 농기구 중 하나인 넉가래나 삽처럼 생겨 긴 자루에다가 네모난 머리가 일체를 이루고 있다.

    ‘다이센지쿠’ 목간은 지방관아에서 사용하던 문서류 일종으로서, 둥글게 말아 풀어지지 않도록 끈을 동여 맨 종이나 비단류 문서에 꽂아 사용했다.

    ‘다이센지쿠’ 목간은 대체로 네모지거나 둥글게 생긴 머리 부분에다가 해당 문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지를 간략히 기록해 두게 된다.

    100여 점 이상이 출토된 함안 성산산성 목간류에서는 지금까지 모두 3점에 달하는 ‘다이센지쿠’ 목간이 확인됐으나 이 중 묵글씨가 확인되는 것은 1점.

    여기에는 ‘利豆村’(리두촌)이라는 마을 이름으로 생각되는 세 글자가 판독되고 있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일본 와세다대 이성시(李成市)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국제통화에서 “이는 신라시대 성산산성에 행정 문서를 보관하던 ‘문서창고’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동시에 이 무렵 신라의 문서행정 레벨이 고도로 발달해 있었음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또 “이런 목간은 중앙 국가권력이 각 지방 호적을 작성하고, 또 이를 통해 각 민(民)에 대한 실태를 철저히 파악하지 않고서는 작성되기 힘들다”면서 “단양 적성 신라비(진흥왕대)와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 신라가 진흥왕 무렵에는 호적을 작성하고 이를 통해 지방과 민(民)을 통치했음은 거의 틀림없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이어 “이런 목간이 일본에서는 1세기 가량 늦은 7세기 후반에야 나오기 시작하며 나라(奈良)의 쇼쇼인(正倉院)에는 실물이 남아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정밀판독 결과 지명으로는 기존에 확인된 級伐城(급벌성)ㆍ감문성(甘文城)ㆍ진성(陳城)ㆍ구리벌(仇利伐) 외에 古陀(고타. 안동 추정)ㆍ추문(鄒文)ㆍ巴珍兮城(파진혜성)ㆍ巴珍兮村(파진혜촌)ㆍ阿卜智村(아복지촌)ㆍ양촌(陽村) 등 17개가 확인됐다.

    또 인명으로는 기존 波婁(파루)ㆍ居利支(거리지)ㆍ伊竹伊(이죽이)ㆍ巴兮支(파혜지)ㆍ구잉지(仇仍支) 외에 阿那休智(아나휴지)ㆍ阿那舌只(아나설지)ㆍ內恩支(내은지)ㆍ居助支(거조지)ㆍ仇禮支(구례지) 등 23명이 추가로 확인됐다.

    /임병화기자 cult@simin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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