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철시인 육필원고 공개

    문화 / 시민일보 / 2004-03-07 20: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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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 66년만에 번역시등 100여편 ‘햇빛’
    ‘떠나가는 배’를 지은 시인으로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용아(龍兒) 박용철(朴龍喆·1904~1938·사진)의 육필원고가 사후 66년만에 대량으로 공개됐다.

    계간 ‘시로 여는 세상’ 봄호는 ‘박용철 탄생 100주년 기념특집’을 통해 박용철의 창작시 ‘고향’의 개작과정, 번역을 시도한 T.S 엘리엇의 ‘프루프록 연가’ 등 다수의 미완성 번역시, 김영랑이 박용철에게 보낸 편지형식의 산문시 등의 육필원고를 공개했다.

    이번 자료들은 1940년 발간된 ‘박용철 전집’(전2권, 동광당서점 刊)에 수록되지 않은 것으로, 번역시를 포함한 시작품이 80여편, 평론과 수상류의 글이 6점, 20여편의 서간문 등이다. 자료에는 창작을 모색한 기록 등 노트 12권도 있다.

    공개된 자료 가운데 박용철이 누이에게 보낸 편지글의 중간에 들어 있는 베르렌느의 시 ‘가을’의 번역원고, 아내 임정희 여사에게 보낸 편지, 김기림이 박용철에게 보낸 편지 등이 포함돼 있다.

    특히 김영랑이 박용철에게 보낸 편지는 산문형태의 시에 가깝다.

    이와 관련해 문학평론가 김용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영랑은 이 작품 이전에 산문 형식으로 이뤄진 시를 전혀 쓰지 않았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이 글은 영랑의 시에 또 하나의 목록이 불어났음을 뜻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서정소곡을 즐겨 쓴 그가 이때부터 산문형식의 시도 쓰려고 시도했음을 이 작품은 말해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교수는 “박용철은 1930년대초 순수시전문지 ‘시문학’을 비롯해 ‘문예월간’ ‘문학’ ‘극예술’ 등을 발행함으로써 한국문단의 대들보 역할을 했다”면서 “그가 남긴 원고의 일부는 연필로 쓴 것들인데, 이는 병상에 누워 잉크 펜으로 글을 쓸 수 없게 되자 천장쪽에 원고지와 노트를 매어달고 목숨을 담보로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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