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INK:1} 1956년 정·부통령선거 결과로 자유당은 그야말로 좌불안석(坐不安席)이었다.
차기선거 승리를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58년 민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은 당초 목표로 삼았던 개헌선 확보에 실패했다.
이승만 정권의 실정(失政)을 보도하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지 않고서는 자유당은 60년 대선에서도 결코 이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유당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언론제압을 위한 ‘꼼수 찾기’에 나섰다.
결국 진보당 사건 등을 핑계로 자유당은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마련하기에 이르렀고, 12월19일 국회법사위에서 날치기로 이를 통과시키고 말았다.
하지만 국회 본회의 통과는 쉽지 않았다. 민주당 조병옥 대표최고위원을 비롯한 소속 의원들이 국회본회의 ‘결사저지’를 외치며, 온 몸으로 막아섰기 때문이다.
실제로 20일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는 자유당 의원들과 난투극을 벌이면서 결연한 의지로 이를 제지했다.
급기야 자유당은 24일 경호권을 발동, 300여명의 무장경위들을 앞세우고 국회의사당에 진입하고 말았다.
물론 무장경위들은 이를 저지하려는 민주당 의원들을 ‘질질’ 끌고나와 의사당 밖으로 내동댕이쳤으며, 조병옥 대표최고위원은 어쩔 수 없이 의사당 밖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2004년 각종 여론조사에서 주요 3당 가운데 최하위에 머물고 있는 민주당은 그야말로 좌불안석(坐不安席)이었다. 4.15 총선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실제로 총선 이후 원내 정당이 가능하겠느냐는 걱정 어린 소리까지 들리는 실정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어떻게든 이 국면을 반전시켜야만 했다. 그래서 자유당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민주당은 ‘꼼수 찾기’에 나섰고, 결국 국민들의 비난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자유당 정권의 ‘국가보안법 개정안’이 국회본회의 통과에 진통을 겪었듯이 ‘탄핵안’ 역시 간단치 않아 보인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를 비롯, 소속 의원들이 자유당 정권 당시의 민주당 의원들처럼 ‘결사저지’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58년 경호권을 발동, 무장경위들을 앞세운 자유당 의원들이 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힘으로 끌어냈듯이, 2004년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요청에 의해 박관용 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한다면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어쩔 수 없이 의사당 밖으로 끌려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1958년에는 아버지 조병옥 대표가 다수당, 즉 자유당의 횡포로 인해 울어야 했다.
그런데 2004년에는 ‘한-민공조’로 다수당의 수장이 된 그의 아들 조순형 대표가 숫적으로 열세에 있는 열린우리당의 국회의원들을 울리려 하고 있다.
아버지는 힘이 없어 울었고, 아들은 힘으로 소수를 울리려 하고 있으니, 참으로 역사는 아이러니한 것이다.
차기선거 승리를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58년 민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은 당초 목표로 삼았던 개헌선 확보에 실패했다.
이승만 정권의 실정(失政)을 보도하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지 않고서는 자유당은 60년 대선에서도 결코 이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유당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언론제압을 위한 ‘꼼수 찾기’에 나섰다.
결국 진보당 사건 등을 핑계로 자유당은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마련하기에 이르렀고, 12월19일 국회법사위에서 날치기로 이를 통과시키고 말았다.
하지만 국회 본회의 통과는 쉽지 않았다. 민주당 조병옥 대표최고위원을 비롯한 소속 의원들이 국회본회의 ‘결사저지’를 외치며, 온 몸으로 막아섰기 때문이다.
실제로 20일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는 자유당 의원들과 난투극을 벌이면서 결연한 의지로 이를 제지했다.
급기야 자유당은 24일 경호권을 발동, 300여명의 무장경위들을 앞세우고 국회의사당에 진입하고 말았다.
물론 무장경위들은 이를 저지하려는 민주당 의원들을 ‘질질’ 끌고나와 의사당 밖으로 내동댕이쳤으며, 조병옥 대표최고위원은 어쩔 수 없이 의사당 밖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2004년 각종 여론조사에서 주요 3당 가운데 최하위에 머물고 있는 민주당은 그야말로 좌불안석(坐不安席)이었다. 4.15 총선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실제로 총선 이후 원내 정당이 가능하겠느냐는 걱정 어린 소리까지 들리는 실정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어떻게든 이 국면을 반전시켜야만 했다. 그래서 자유당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민주당은 ‘꼼수 찾기’에 나섰고, 결국 국민들의 비난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자유당 정권의 ‘국가보안법 개정안’이 국회본회의 통과에 진통을 겪었듯이 ‘탄핵안’ 역시 간단치 않아 보인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를 비롯, 소속 의원들이 자유당 정권 당시의 민주당 의원들처럼 ‘결사저지’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58년 경호권을 발동, 무장경위들을 앞세운 자유당 의원들이 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힘으로 끌어냈듯이, 2004년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요청에 의해 박관용 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한다면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어쩔 수 없이 의사당 밖으로 끌려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1958년에는 아버지 조병옥 대표가 다수당, 즉 자유당의 횡포로 인해 울어야 했다.
그런데 2004년에는 ‘한-민공조’로 다수당의 수장이 된 그의 아들 조순형 대표가 숫적으로 열세에 있는 열린우리당의 국회의원들을 울리려 하고 있다.
아버지는 힘이 없어 울었고, 아들은 힘으로 소수를 울리려 하고 있으니, 참으로 역사는 아이러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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