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가 원나라 치하에 있던 14세기에 한 고려인이 중국으로 건너가 원 왕조 지방관인 다루가치(達魯花赤)가 되고 이슬람교도가 돼 임지에 있는 이슬람교도 공동묘지에 묻혔음을 밝혀주는 묘비가 발굴됐다.
한중문화교류사 전공인 순천향대 박현규(朴現圭·46) 교수는 지난해 12월 중국 광둥성(廣東省) 광저우(廣州)에서 한국학 관련 자료를 조사하다가 ‘라마단’(剌馬丹)이라는 이름의 고려인 이슬람교도 묘비를 찾아냈다고 29일 말했다.
박 교수 조사 결과 이 묘비는 1985년 7월, 도시계획 확장 공사 중에 광저우시 해방북로(解放北路) 계화강(桂花崗)의 이슬람교도 묘역인 청진선현고묘(淸眞先賢古墓) 부근에서 출토됐다.
묘비 원본은 현재 광저우시 구 시가지 광성로(光塔路)에 소재하는 중국에서 가장 오랜 이슬람사원인 회성사(懷聖寺)에 보관돼 있고, 광저우박물관에는 복제품이 전시되고 있다.
이 라마단 묘비석은 높이 62.0㎝, 폭 42.0㎝이고, 두께는 6.2㎝. 앞면은 매끈한 편이고, 뒷면은 다소 거칠었다.
정면에는 이슬람 경전인 ‘꾸란’ 제2장 255절을 인용한 아랍어가 크게 새겨져 있고, 좌우측에는 한자가 조그마하게 새겨져 있다.
글씨 상태는 정면과 우측면은 깨끗해 판독에는 별 문제는 없으나, 좌측 부분은 이미 심하게 마모돼 글자 판독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박 교수는 전했다.
우측면에서는 “대도로(大都路) 완평현(宛平縣) 청현관(靑玄關) 주인인 라마단(刺馬丹)은 고려 사람이다.
나이 38세이고 지금 광서도(廣西道) 용주(容州) 육천현(陸川縣) 다루가치(達魯花赤)에 임명되었다”(大都路宛平縣靑玄關住人,刺馬丹, 系高麗人氏. 年三十八歲, 今除廣西道容州陸川縣達魯花赤)라는 문구가 확인됐다.
또 같은 비문에 의하면 고려 출신 ‘라마단’은 지정(至正) 9년(=1349년) 3월23일에 사망해 그 해 8월18일에 광주(廣州)의 성북쪽 유화교(流花橋) 계화강(桂花崗)에 묻혔음이 밝혀졌다.
이 비문은 할렙, 즉 지금의 중동 국가인 시리아 일대를 여행하기도 한 다른 이슬람교도 아르사라는 사람이 썼다.
박 교수는 비문을 종합하면 라마단은 고려 충선왕 4년(1312)에 ‘알라웃딘’의 아들로 태어나 대도 완평현(大都宛平縣), 즉 북경 남쪽의 청현관(靑玄關)이라는 저택에 살았다.
그러다가 고려 충정왕(忠定王) 1년(지정 9년, 1349)에 광서도 육천현을 다스리는 다루가치에 임명되었으나 그 해 3월 현지에서 죽어 같은 해 8월에 광주 이슬람교 묘역인 유화교(流花橋) 곁 계화강(桂花崗)이란 곳에 묻혔다.
박 교수는 “라마단과 그의 부친 알라웃딘이 언제, 무엇 때문에 원에 들어갔는지 다른 자료가 없어 알 수는 없다”면서 “다만 그가 다루가치가 된 것으로 보아 원에서 상당한 배경을 지닌 고려 유력집안 출신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이슬람문화권과 한반도간 교류는 이미 신라시대에 확인되고 있다”면서 “특히 원 지배치하 고려시대에는 교류가 더욱 성행했는데 이 자료는 고려인이 이슬람교도가 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중문화교류사 전공인 순천향대 박현규(朴現圭·46) 교수는 지난해 12월 중국 광둥성(廣東省) 광저우(廣州)에서 한국학 관련 자료를 조사하다가 ‘라마단’(剌馬丹)이라는 이름의 고려인 이슬람교도 묘비를 찾아냈다고 29일 말했다.
박 교수 조사 결과 이 묘비는 1985년 7월, 도시계획 확장 공사 중에 광저우시 해방북로(解放北路) 계화강(桂花崗)의 이슬람교도 묘역인 청진선현고묘(淸眞先賢古墓) 부근에서 출토됐다.
묘비 원본은 현재 광저우시 구 시가지 광성로(光塔路)에 소재하는 중국에서 가장 오랜 이슬람사원인 회성사(懷聖寺)에 보관돼 있고, 광저우박물관에는 복제품이 전시되고 있다.
이 라마단 묘비석은 높이 62.0㎝, 폭 42.0㎝이고, 두께는 6.2㎝. 앞면은 매끈한 편이고, 뒷면은 다소 거칠었다.
정면에는 이슬람 경전인 ‘꾸란’ 제2장 255절을 인용한 아랍어가 크게 새겨져 있고, 좌우측에는 한자가 조그마하게 새겨져 있다.
글씨 상태는 정면과 우측면은 깨끗해 판독에는 별 문제는 없으나, 좌측 부분은 이미 심하게 마모돼 글자 판독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박 교수는 전했다.
우측면에서는 “대도로(大都路) 완평현(宛平縣) 청현관(靑玄關) 주인인 라마단(刺馬丹)은 고려 사람이다.
나이 38세이고 지금 광서도(廣西道) 용주(容州) 육천현(陸川縣) 다루가치(達魯花赤)에 임명되었다”(大都路宛平縣靑玄關住人,刺馬丹, 系高麗人氏. 年三十八歲, 今除廣西道容州陸川縣達魯花赤)라는 문구가 확인됐다.
또 같은 비문에 의하면 고려 출신 ‘라마단’은 지정(至正) 9년(=1349년) 3월23일에 사망해 그 해 8월18일에 광주(廣州)의 성북쪽 유화교(流花橋) 계화강(桂花崗)에 묻혔음이 밝혀졌다.
이 비문은 할렙, 즉 지금의 중동 국가인 시리아 일대를 여행하기도 한 다른 이슬람교도 아르사라는 사람이 썼다.
박 교수는 비문을 종합하면 라마단은 고려 충선왕 4년(1312)에 ‘알라웃딘’의 아들로 태어나 대도 완평현(大都宛平縣), 즉 북경 남쪽의 청현관(靑玄關)이라는 저택에 살았다.
그러다가 고려 충정왕(忠定王) 1년(지정 9년, 1349)에 광서도 육천현을 다스리는 다루가치에 임명되었으나 그 해 3월 현지에서 죽어 같은 해 8월에 광주 이슬람교 묘역인 유화교(流花橋) 곁 계화강(桂花崗)이란 곳에 묻혔다.
박 교수는 “라마단과 그의 부친 알라웃딘이 언제, 무엇 때문에 원에 들어갔는지 다른 자료가 없어 알 수는 없다”면서 “다만 그가 다루가치가 된 것으로 보아 원에서 상당한 배경을 지닌 고려 유력집안 출신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이슬람문화권과 한반도간 교류는 이미 신라시대에 확인되고 있다”면서 “특히 원 지배치하 고려시대에는 교류가 더욱 성행했는데 이 자료는 고려인이 이슬람교도가 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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