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후 무렵 영남지방 일대에 활발히 축조된 목관묘(木棺墓·나무널무덤) 중에서도 출토 유물 최대를 자랑하는 고분이 경북 영천시 고경면 용전리에서 확인됐다.
기원전 1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이 목관묘는 지난해 12월 29일 포도밭을 개량하기 위한 공사 도중에 각종 유물이 출토됨으로써 존재가 확인됐다. 이후 국립경주박물관(관장 박영복)이 긴급조사를 벌인 결과 각종 유물이 쏟아졌다.
6일 조사단에 따르면, 긴급조사 돌입 직전에 이미 현장에서는 청동투겁창 1점과 쇠투겁창 11점, 쇠꺾창(철과·鐵戈) 1점, 단조 쇠도끼(단조철부·鍛造鐵斧) 1점 및 덩이쇠(철정.鐵鋌) 1점 등 15건 15점이 발견ㆍ신고됐다.
본격조사 결과 기존 신고 유물 외에 청동 투겁창 1점, 동전 2점, 쇠뇌(청동노기·靑銅弩器) 1점, 쇠투겁창 1점, 쇠꺾창 1점, 쇠화살속 1점, 쇠낫 2점, 판상쇠도끼(板狀鐵斧) 1점, 곤봉 모양 쇠도끼(棒狀鐵斧) 1점, 단조쇠도끼 7점, 덩이쇠 6점 및 재갈로 추정되는 철기 조각과 와질토기 조각 다수를 확인했다.
이에 따라 아직까지 본격조사가 착수되지 않은 목관(木棺) 및 그것이 안치된 묘광(墓壙·무덤방)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면 출토유물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조사성과만으로도 영남지방 목관묘 중 최대 유물 출토량을 기록하고 있으며, 출토 유물의 위상 또한 최고급에 속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목관묘는 기원전 1~2세기대에 출현하기 시작해 기원전후를 거쳐 기원후 2세기무렵까지 영남지방 전역에 퍼진 무덤 형식으로, 유물 출토량이나 그 내용으로 보아 창원 다호리 1호분, 경주 조양동 5호분(이상 기원전 1세기 축조 추정) 및 경주 사라리 130호분(기원후 1세기 후반 축조 추정)이 최대급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이번 영천 목관묘는 이들 기존 목관묘를 능가하고 있다.
금호강 지류인 고촌천(古村川)을 내려다 보는 해발 92m 나지막한 구릉 말단 계곡부에 위치한 이 목관묘는 현재까지 조사결과 등고선과 나란한 동-서 방향으로 암반을 파서 묘광(길이 325㎝ㆍ너비 165㎝ 안팎)을 축조한 다음 널을 안치했다.
묘광 내부에는 암반층을 파낸 잔돌과 적갈색 점토, 황갈색 점토 및 크기 20~30㎝ 가량 되는 깬돌로 채웠으며 그 내부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8자형 청동기 1점과 흑색 와질토기 조각이 다량으로 수습됐다.
출토 유물 중 청동 투겁창이나 청동꺾창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대구 평리동ㆍ비산동ㆍ팔달동ㆍ지산동 유적 출토품과 비슷하며 쇠투겁창이나 쇠꺾창 등의 철기류는 경주 조양동 및 사라리 유적 출토품과 흡사하다.
널과 묘광 사이를 채운 충전토에서 출토된 청동꺾창집과 청동꺾창 세트는 거의 완형일 뿐만 아니라, 특히 꺾창집은 현재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보존상태, 형태, 외면문양 등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희귀한 자료로 평가됐다.
청동쇠뇌는 한강 이남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됐으며 형태로는 평양 석암리나 정백리의 기원전 2세기 무렵 귀틀무덤에서 출토된 쇠뇌보다 보존상태가 훨씬 양호하며 더구나 형태도 정형화돼 있어 매우 주목된다.
기원전 1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이 목관묘는 지난해 12월 29일 포도밭을 개량하기 위한 공사 도중에 각종 유물이 출토됨으로써 존재가 확인됐다. 이후 국립경주박물관(관장 박영복)이 긴급조사를 벌인 결과 각종 유물이 쏟아졌다.
6일 조사단에 따르면, 긴급조사 돌입 직전에 이미 현장에서는 청동투겁창 1점과 쇠투겁창 11점, 쇠꺾창(철과·鐵戈) 1점, 단조 쇠도끼(단조철부·鍛造鐵斧) 1점 및 덩이쇠(철정.鐵鋌) 1점 등 15건 15점이 발견ㆍ신고됐다.
본격조사 결과 기존 신고 유물 외에 청동 투겁창 1점, 동전 2점, 쇠뇌(청동노기·靑銅弩器) 1점, 쇠투겁창 1점, 쇠꺾창 1점, 쇠화살속 1점, 쇠낫 2점, 판상쇠도끼(板狀鐵斧) 1점, 곤봉 모양 쇠도끼(棒狀鐵斧) 1점, 단조쇠도끼 7점, 덩이쇠 6점 및 재갈로 추정되는 철기 조각과 와질토기 조각 다수를 확인했다.
이에 따라 아직까지 본격조사가 착수되지 않은 목관(木棺) 및 그것이 안치된 묘광(墓壙·무덤방)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면 출토유물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조사성과만으로도 영남지방 목관묘 중 최대 유물 출토량을 기록하고 있으며, 출토 유물의 위상 또한 최고급에 속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목관묘는 기원전 1~2세기대에 출현하기 시작해 기원전후를 거쳐 기원후 2세기무렵까지 영남지방 전역에 퍼진 무덤 형식으로, 유물 출토량이나 그 내용으로 보아 창원 다호리 1호분, 경주 조양동 5호분(이상 기원전 1세기 축조 추정) 및 경주 사라리 130호분(기원후 1세기 후반 축조 추정)이 최대급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이번 영천 목관묘는 이들 기존 목관묘를 능가하고 있다.
금호강 지류인 고촌천(古村川)을 내려다 보는 해발 92m 나지막한 구릉 말단 계곡부에 위치한 이 목관묘는 현재까지 조사결과 등고선과 나란한 동-서 방향으로 암반을 파서 묘광(길이 325㎝ㆍ너비 165㎝ 안팎)을 축조한 다음 널을 안치했다.
묘광 내부에는 암반층을 파낸 잔돌과 적갈색 점토, 황갈색 점토 및 크기 20~30㎝ 가량 되는 깬돌로 채웠으며 그 내부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8자형 청동기 1점과 흑색 와질토기 조각이 다량으로 수습됐다.
출토 유물 중 청동 투겁창이나 청동꺾창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대구 평리동ㆍ비산동ㆍ팔달동ㆍ지산동 유적 출토품과 비슷하며 쇠투겁창이나 쇠꺾창 등의 철기류는 경주 조양동 및 사라리 유적 출토품과 흡사하다.
널과 묘광 사이를 채운 충전토에서 출토된 청동꺾창집과 청동꺾창 세트는 거의 완형일 뿐만 아니라, 특히 꺾창집은 현재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보존상태, 형태, 외면문양 등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희귀한 자료로 평가됐다.
청동쇠뇌는 한강 이남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됐으며 형태로는 평양 석암리나 정백리의 기원전 2세기 무렵 귀틀무덤에서 출토된 쇠뇌보다 보존상태가 훨씬 양호하며 더구나 형태도 정형화돼 있어 매우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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