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훼방꾼’

    고하승 칼럼 / 시민일보 / 2004-05-19 19: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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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하승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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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이라는 단체가 있다.

    이 단체가 바로 어제 이명박 서울시장을 올해의 `우리말 으뜸 훼방꾼’으로 선정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무척 재미있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뭔가 가슴 한구석이 ‘찡’해 온다.

    겨레모임은 왜 이 시장에게 경고장을 보냈을까.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즉시 서울시내를 돌아보시라.

    쉽게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서울 거리에는 ‘Hi Seoul my bus 7월 1일부터 버스가 빨라집니다’란 영문 혼용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려 있다.

    가뜩이나 영문간판이 거리에 넘쳐나는 상황에서 서울시는 오히려 영어 쓰기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서울시는 대중교통 수단 우선 체계를 바꾼다면서 시내버스 옆과 뒤에 로마 글자를 표기할 계획이라고 한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버스에 로마 글자를 써 붙이는 것과 대중교통 이용이 서로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오히려 여문 알파벳을 배우지 못한 어르신 세대들로 하여금 대중교통 이용에 불편만 초래할 뿐이다.

    서울시는 지난해에도 `Hi, Seoul’, `Hi 서울 Green 청계천’ 등 영문혼용 광고문을 썼다는 이유로 `우리말 훼방꾼’의 꼬리표를 달았었다. 그런데도 그 버릇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실제로 서울시는 ‘Hi Seoul’이란 표어를 만들고 ‘ Hi 서울 Green 청계천’이란 영문 혼용 선전문을 거리와 지하철에서 광고하고 있다.

    물론 외국인에게 친근감을 주자는 뜻이 담겨 있겠으나 잃는 게 더 많을 것이다.

    따라서 ‘Hi Seoul’과 ‘Hi 서울 Green 청계천’은 우리말로 바로 고치고 영어 간판도 정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Hi Seoul my bus 7월 1일부터 버스가 빨라집니다’란 국경불문의 영문혼용 현수막도 당장 철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서울시만 그런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우선 국민은행을 보자. 이제 거리에서 흔하게 접하던 ‘국민은행’이라는 간판을 구경하기는 매우 어렵게 됐다.

    갑자기 민영화하면서 수백억 원을 들여 우리말 간판을 내리고 영문 이름 ‘KB’를 새로 지어 방송과 신문과 거리에서 엄청나게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을 영문으로 쓴다고 세계적인 은행이 되는 것도 아닌 데 왜 그래야만 했는지 국민은행 관계자에게 묻고 싶을 정도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처럼 예쁜 우리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면 어디 덧나기로 하는가.
    국민은행만 그런 것은 아니다.

    ‘SK Telecom’이라든지 ‘LG Telecom’ 혹은 ‘Let’s KT’ 따위의 영어 간판은 이제 익숙하다 못해 눈에 배길 정도다.

    오히려 미국 회사인 ‘맥도널드’와 ‘버거킹’은 한글을 크게 쓰고 있는 것과 견주어 볼 때 참으로 우습지 않은가. 행여 이것도 사대주의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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