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과 맹획

    고하승 칼럼 / 시민일보 / 2004-08-08 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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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하승 편집국장
    {ILINK:1} 역사는 승자(勝者) 편이다.

    항상 승자가 기록을 남기기 때문이다.

    한번쯤 삼국지를 읽은 사람이라면 촉한의 제갈량과 남만(지금의 베트남)왕 맹획과의 싸움에서 유래된 ‘칠종칠금(七縱七擒)’이라는 고사성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제갈량이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면서 항복을 받아내려고 했다는 데서 비롯된 이 고사성어의 뜻은 ‘마음대로 잡았다가 놓아주었다 하는 비상한 재주’를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승자(勝者) 입장에서 바라본 해석일 뿐이다.

    패자(敗子)인 맹획 입장에서 본다면 50만 대군에 의해 일곱 번 사로잡혔다 풀려나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베트남은 맹획의 정신을 이어받은 국가다.

    1954년 5월7일 호치민의 오른팔 보구엔 자프 장군이 이끄는 베트남군은 56일동안의 전투 끝에 프랑스 제국주의군의 요새를 점령하고 1만6000명을 포로로 잡았다.

    물론 교전 중에 베트남군은 2만5000명이나 전사했다.

    하지만 같은해 7월 제네바 협정을 체결하면서 베트남은 비록 반쪽이기는 하나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급기야 지난 1975년에는 미군을 몰아내고 남베트남마저 해방시키면서 완전한 독립을 하기
    에 이른다.

    이처럼 베트남은 미국·프랑스와 연이어 싸워 승리를 거둔 유일한 아시아 민족이다. 이는 바로 맹획의 ‘불굴의 정신’을 이어받은 탓 아니겠는가. 역사는 이런 것이다.

    50만 대군을 이끌고 남만 정벌에 나선 제갈량은 대국의 관점에서 모든 소수 민족은 촉나라에 굴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자신들의 문화가 우월하니 미개한 오랑캐 족속은 무조건 자신들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이야 말로 침략이다.

    그런데도 제갈량은 침략의 명분으로 ‘덕(德)’을 논하고 있다. 당장 죽일 수도 있지만 일곱 번이나 사로잡았다가 놓아 줄만큼 덕을 베풀었다는 것이다.

    이 모습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너무나 닮았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하면서 민주주의와 독재자 후세인으로부터의 이라크해방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2000년 전에 제갈량이 내세웠던 남만침략 구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차이가 있다면 제갈량은 ‘덕’을 내세우는 반면,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민주’를 침략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지금 이라크 민중은 2000여년 전 맹획이 50만 촉나라대군 앞에 맞서 보잘 것 없는 무기로 항거했던 것처럼, 그렇게 미군의 탱크에 맞서 힘겨운 항거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훗날 역사는 이 싸움을 어떻게 기록할까?

    특히 미국의 침략전쟁에 동참하기 위해 군을 파병한 우리나라를 어떻게 평가할까?

    그 해답은 역시 ‘칠종칠금(七縱七擒)’이다.

    /고하승 국장 gohs@simin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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