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을 채워주랴?

    고하승 칼럼 / 시민일보 / 2004-08-10 20: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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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하 승 편집국장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최근 용산기지 이전과 관련해 여야 의원들이 청구한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용산기지 이전 비용에 관한 감사원 감사를 청구하는 결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약 3개월 동안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FOTA) 회의 협상이 중단될 수 있다는 게 그 주된 이유다.

    감사원 감사를 하지 않더라도 올 정기국회 때 정부가 용산기지 이전에 관한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비용 협상의 내용 등 전모가 드러날 텐데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거다.

    하지만 이런 여권의 논리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앞으로 대규모 국책사업이 국방과 외교라는 이름 하에 성역화 돼 불평등과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감사원의 감사는 반드시 진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용산기지 이전은 50조원 이상의 어마어마한 세금이 소요되는 문제다.

    홍재형 정책위 의장과 국방, 외교부 핵심 당국자 등 극히 일부의 고위 당정관계자들이 비밀리에 모여 ‘얼렁뚱땅’ 결정해도 될 만큼 그렇게 가벼운 사안이 아니라는 말이다.

    필자는 정부가 과연 용산기지 이전 협상에 관해 높은 국민적 의혹을 풀 의사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한 시민단체가 “미국이 10월 회계년도 전에 이전협상을 마무리 짓기를 강력히 요구했고 이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는 정부 고위층에서 감사에 난색을 표한 것 아니겠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겠는가.

    심지어 국방부에서 국회비준동의안용 자료와는 별도로 실제 기지이전 세부계획서를 만든다는 ‘이중계획서 작성’의혹까지 대두되고 있는 마당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각 부처 장관들에게 언론과 현안에 대한 의견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할 것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완장문화에 도전하고 있으므로 참고 가야하며, 군림문화에 굴복해서는 안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정부와 언론관계는 새롭게 정립될 필요가 있으며 언론을 둘러싼 문화개혁, 일종의 행정개혁은 끊임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언론의 완장문화, 즉 군림문화에 도전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노 대통령이 정작 미국의 군림문화에 대해서만큼은 애써 외면하면서 ‘저자세’로 일관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소위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고 나선 미국의 완장이 두렵기 때문인가. 허나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이미 국민은 지난 16대 대선에서 노 대통령을 선택한 것으로 당신의 팔에 힘 있는 완장을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대·미관계에 있어서 ‘국민의 지지’, 이보다 더 힘 있는 완장이 어디 있겠는가.

    노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국민의 힘을 믿고 좀 더 당당한 자세로 대미관계에 임해 주기를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한·미관계 손상을 우려하며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고하승 국장 gohs@simin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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