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양복의 ‘문지기’

    고하승 칼럼 / 시민일보 / 2004-10-24 19: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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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하 승 편집국장
    {ILINK:1} 아무런 편견 없이 독자들에게 묻는다.

    여러분이 만일 어느 방을 찾아갔는데 그 방문 앞에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청년들이 지키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적어도 좋은 느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독자들은 그 방을 조직폭력배 두목이 거처하는 방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뭔가 옳지 못한 사업을 하는 부도덕한 업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폭력배들을 ‘문지기’로 동원했다고 생각할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 실제로 여러분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 같은 장면을 흔히 보아왔을 것이다.

    따라서 웬만한 사람이라면 주눅이 들어서 그런 곳을 방문하는 일이 간단치 않다.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민선 지방차지단체장 방문 앞에 그런 사람들이 지키고 있다면, 여러분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물론 대부분의 독자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이 거짓말 같은 일이 실제로 강남구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구청장실 앞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문지기’처럼 버티고 서 있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 한 강남주민은 이렇게 심경을 토로했다.

    “검정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정문과 구청장 방을 지키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민선구청장을 뽑는 목적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가장 주민과 가까이서 구정을 살펴야 하고 구청장실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얼마나 잘못이 많으면 구민의 접근을 차단한단 말인가.”

    또 다른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구청장 선거운동 기간에는 손을 잡고 잘 좀 부탁한다고 하시더니 3선을 하시는 동안 단 한번 찾아간 구민들을 하루 종일 세워두고 만나주지도 않는 구청장님, 본인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

    이렇게 하소연한 주민도 있었다.

    “우리가 세번씩이나 민선으로 뽑아드린, 그럴 때는 다정한 눈으로 웃으며 악수도 잘 하시던 구청장님이었는데 어째 이렇게 뵈올 수가 없습니까? … 이차저차 구청장님을 뵙고 우리의 사정을 말씀드리러 갔는데 문에도 못들어 가고 무지막지한 양복 입은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밀어내려고 했습니다. 기운도 없는 주민을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그런데 이에 대한 구청측의 답변이 참으로 걸작이다.

    강남구청은 하루 천여명의 주민들에게 항상 개방돼 있다는 것이다. 단지 과격민원인들로부터 방문민원인을 보호하고 더불어 보다 친절한 민원 안내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기 때문에 양해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강남주민들은 지금 구청사를 개방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구청장실을 ‘꼭꼭’ 걸어 잠근 사실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손으로 뽑은 민선구청장인데, 주민들이 만나지도 못하게끔 검은 양복의 ‘문지기’를 방문 앞에 세워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혹시 격려제를 시행하면서 공무원인사를 좌지우지하다보니 자신이 무슨 ‘보스’라도 된 것처럼 착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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