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와 악어새

    고하승 칼럼 / 시민일보 / 2005-02-06 19: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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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하 승 (편집국장)
    {ILINK:1} 방송위원회가 지난 20일부터 26일까지 국회 문광위 소속 의원들과 함께 미국과 영국으로 해외 외유를 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한마디로 방송위가 정치권을 상대로 사실상 로비를 했다는 말이다.

    실제로 방송위원회는 해외방송통신시장 제도 조사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앞세우고 방송발전 기금을 동원해 국회 문광위 소속인 우상호, 윤혜영, 강혜숙, 정병국, 박형준, 정종복 의원 등 여야 의원 6명과 함께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특히 이번 출장에는 방송위에서 박준형 방송위원, 정순경 실장 등이 동행, 여야 의원들을 극진히 모시고 다녔다.

    그렇다면 방송위는 도대체 무슨 경비로 이처럼 호사스러운 외유를 다녀왔는가.

    이에 대해 방송위측은 “이번 해외출장은 지난 해 국회 문광위가 예산을 심의하면서 사전에 출장조사 목적으로 배정해 놓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방송위원회에서 예산을 전용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것이 더 웃기는 해명이다. 국회 문광위가 이번 출장을 위해 지난해 예산을 배정했다면 ‘국회와 방송위가 사전에 짜고 치는 고스톱을 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통부에서는 방송위가 여야 의원을 동원, 해외 실태조사 명분으로 외유를 나간 것을 몹시 부러워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이번 외유로 인해 문광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통신·방송 융합 및 관련 제도나 규제기구 논의에서 정통부보다는 확실하게 방송위 입장을 대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정통부는 국회의원들의 외유를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예산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인 데다가, 지난번 국회에서 과거 정보통신연구진흥원이 일부 의원을 데리고 해외출장을 나간 것이 문제가 돼 난리가 난 적이 있기 때문에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언론들이 당시 정통부 의원들의 외유와 달리 이번 문광위 외유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주요 언론사들이 다른 정부부처나 국회의 외유에 대해 아주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으면서도 유독 방송위원회의 이번 행태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일부 방송사는 인천공항에 카메라 담당 기자들을 상주시키면서 의원들의 외유를 잡아내려고 노력했으나 방송위는 전혀 카메라에 잡히지 않고 외유를 다녀왔다. 역시 언론 앞에는 막강한 문광위였다.

    오죽하면 정통부에서 “기자들이 요즘 일은 안하고 놀고 있는 것 아니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겠는가.

    이래서는 곤란하다. 방송위와 문광위 소속의원들의 관계가 ‘악어와 악어새’ 같듯이 문광위 소속 의원들과 언론이 그같은 공생관계를 유지한다면 언론의 미래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론은 어차피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다. 언론에게 있어서 공생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특정 집단이 아니라 오직 진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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