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못하게 하는 국회

    칼럼 / 시민일보 / 2005-07-12 21: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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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웅 래 국회의원
    지난주인 7월7일 저녁 7시. 국회 본관 식당에 손님들을 모시고 들어가던 저는 뜻하지 않은 낭패를 당했습니다.
    국민 모두의 초미의 관심사인 집값 안정과 서울 강남북 균형 발전을 위한 대안으로 제가 추진하고 있는 뉴타운 관련특별법 간담회를 외부 전문가들을 모시고 하려는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어컨 가동이 중단된 식당 안은 끈끈한 장마철 습기와 무더위 그 자체였습니다.
    정상적인 회의 진행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습니다.
    참석자들이 하나둘 웃옷을 벗고, 넥타이를 풀고, 셔츠 단추를 풀어 보았지만 찜통더위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의제에 집중하기는 참으로 힘이 들었고,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는 참석자들이 여기저기 늘어나면서 1시간여 만에 토론을 형식적으로 마치고 부랴부랴 간담회를 끝내야 했습니다.

    국회사무처측은 에어컨을 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중앙 냉방식이라서 에어컨을 한번 가동하면 비용이 만만치 않아, 수백명이 참석한 모임이 아니면 냉방시스템을 가동하지 않는다는 구차한 설명이었습니다.
    비록 10여명 일지라도 식사비용을 다 지불하는데 왜 쾌적한 환경에서 간담회를 할 수 없는 것이죠?
    여름에 에어컨 문제로 짜증나는 것은 이 뿐이 아닙니다.
    국회의원들의 정책 및 입법 활동의 본산인 의원회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회의원과 보좌진은 여러 업무로 인해 평일 날 정시에 퇴근하지 못하고 밤 늦게 까지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러나 의원회관은 평일엔 밤 8시까지 에어컨을 켜주지만 토요일에는 에어컨을 아예 꺼버리는 실정입니다.
    냉난방이 안 되어 효과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면 국회 의정활동 공간은 있으나 마나 한 것 아닙니까?
    이런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일이 변화와 개혁을 주도한다는 21세기 우리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더위 먹은 사람의 농담이 아니고 대한민국 국회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실제 상황입니다.
    ‘일 안 한다’고 국회의원들 싸잡아 야단치기 전에, 일 하는 국회의원들, 일 하려는 국회의원들이 일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꼭 근무시간 지난 다음에 일을 하려고 하냐고 물으실 수 있겠죠?
    밀린 보고서 보기, 사안별 정책연구 하기, 입법안 준비, 이메일 보내고 답장하기, 의정일기 쓰기에 이르기까지 근무시간 끝나고도 밤 늦게까지 국회의원이든 보좌진이든 ‘나인 투 식스’ 안에 일을 끝내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도 모르는 ‘근무시간’에만 냉난방을 해야 한다는 관행(?)을 내세워 일하려는 국회의원들에게 ‘저효율과 불편’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 안하는 구태국회’의 모습이요,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 발상은 아닌지요?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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