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제 개편은‘제로섬게임’?

    고하승 칼럼 / 시민일보 / 2005-07-19 20:4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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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하승 편집국장
    {ILINK:1}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이란 게임 참여자의 이익과 손해를 합치면 0이 된다는 이론이다. 쉽게 말하면 ‘제로섬게임’은 아이들이 타고 노는 시소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시소의 축을 0으로 볼 때 올라가는 쪽은 플러스(+)가 되고, 내려가는 쪽은 마이너스(-)가 된다. 즉 어느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그만큼 내려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도박에서도 돈을 따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그만큼 잃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도 바로 이 제로섬 게임을 의식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사촌이 논을 사서 잘살게 된다면 밥 한그릇이라도 더 얻어먹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것은 배 아파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선거구제 개편과 관련, 논쟁을 벌이는 정치권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사촌 이논을 사는 꼴’을 보지 못하는 것과 너무나 닮은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7일 “국회의원들이 정당의 기득권에 구속돼 법제도나 구조적 개선 등이 충분치 못하다”며 거듭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 등을 촉구하고 나섰으나 국회의원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특히 한나라당의 반발이 심하다.

    하지만 이는 선거구제 개편을 지나치게 ‘제로섬게임’으로만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 일이다. 사실 영호남 지역구도만 놓고 보면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한나라당에 불리하겠지만 수도권까지 놓고 보면 계산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실제로 지난 17대 총선 당시 서울지역에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득표율은 각각 36.7%와 37.7%였다. 한나라당이 1%포인트 밖에 뒤지지 않았지만 의석수는 16석으로 열린우리당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이를 경기·인천지역까지 확대해보면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에 11%포인트밖에 뒤지지 않았지만 의석수는 33석으로 76석을 얻은 열린우리당에게 무려 43석이나 뒤졌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으로서도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논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선거구제 개편 논란은 여야 간 접점을 찾을 길이 없는 중구난방식 논란 속에서 연정론과 마찬가지로 수면 아래로 잠복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운명을 지닌 것 같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프다’는 극단적인 ‘제로섬게임’의 인식이 선거구제 개편 논의에 묻어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제로섬게임’에는 ‘상생(相生)’이란 단어가 없다. 내가 살려면 반드시 상대를 죽여야 하는 게 ‘제로섬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구제 개편 논의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여야가 함께 ‘윈-윈’할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약간의 손해가 있더라도 지역구도만 타파된다면, 결과적으로 그것이 국가의 이익이 될 수도 있는 문제다. 여야 정치권의 편견 없는 선거구제 개편논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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