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논란 중인 도청사건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몇가지 쟁점이 먼저 정리돼야 한다. 가장 급선무는 이 사건의 본질이 어떤 것이고 곁가지가 무엇인지를 가리는 일이다. 지금도 국민들은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난 도청 테이프에 담긴 대화내용의 불법성과 부도덕성, 반공익성에 경악하고 있다. 국민은 그 구체적인 대화내용을 알 권리가 있다.
대화내용은 불법행위 예비음모에 해당한다. 그것이 과연 실제로 이행됐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소수의 재벌과 언론사주가 결탁해서 대통령선거를 다수의 국민의사와 다르게 조작했는지 조사해야 한다. 이야말로 민주정치의 정체성과 직결된 본질문제가 아닐 수 없다.
테이프 내용의 공개 여부도 불법성을 근거로 결정하면 된다. 다만 불법행위가 아니거나 법적 처벌을 위한 공소시효가 지났다 해도 반공익적 부도덕성에 대해서는 공개해야 한다고 본다. 등장 인물들이 모두 주요 공인이고 따라서 일반국민의 프라이버시와는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국가정보기관의 도청이 본질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정보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그 때의 정권과 대통령을 매도하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물론 불법 도청은 문명사회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할 범죄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엄청난 불법행위도 도청에 의해 포착됐다는 이유로 수사해서는 안된다는 해괴한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마치 도둑이 발견한 살인사건은 신고해도 수사해서는 안된다는 얘기와 똑같은 코미디가 아니고 무엇인가.
또 하나의 쟁점은 도청에 대한 역대 정권의 책임 문제다. 지금 일부 보수언론의 논조는 도청을 가장 악랄하게 자행한 정권 보다도 도청을 근절하지 못한 정권을 더 매도하고 있다. 이 땅에 도청, 정치사찰, 고문이라는 야만적 통치수단을 뿌리내리게 한 정치세력이 누구인가.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과 그 전신인 민자당, 그 핵심집단인 민정당, 그리고 그 군부 선배집단인 공화당 정권이 그들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민주정치의 근본을 짓밟은 대화내용에 이번 도청 사건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알고 보면 소수엘리트가 지배하는 것이 근현대 사회의 실상이었다. 20세기 초 엘리트 이론의 대가인 로버트 미헬스가 이름지은 과두(寡頭)지배의 철칙이 그것이다.
과두지배의 철칙이 발견된 지 한 세기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어둠이 가시지 않고 있다. 1950년대 미국의 정치사회학계를 풍미했던 파워엘리트 이론도 그 어둠에 대한 고발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다원주의를 강조하며 다원주의 사회를 보장하기 위해 분투한 일군의 학자와 언론인이 그 고발을 해결하기도 했다. 우리의 도청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양식 있는 시민사회가 나서기를 기대한다.
대화내용은 불법행위 예비음모에 해당한다. 그것이 과연 실제로 이행됐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소수의 재벌과 언론사주가 결탁해서 대통령선거를 다수의 국민의사와 다르게 조작했는지 조사해야 한다. 이야말로 민주정치의 정체성과 직결된 본질문제가 아닐 수 없다.
테이프 내용의 공개 여부도 불법성을 근거로 결정하면 된다. 다만 불법행위가 아니거나 법적 처벌을 위한 공소시효가 지났다 해도 반공익적 부도덕성에 대해서는 공개해야 한다고 본다. 등장 인물들이 모두 주요 공인이고 따라서 일반국민의 프라이버시와는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국가정보기관의 도청이 본질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정보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그 때의 정권과 대통령을 매도하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물론 불법 도청은 문명사회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할 범죄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엄청난 불법행위도 도청에 의해 포착됐다는 이유로 수사해서는 안된다는 해괴한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마치 도둑이 발견한 살인사건은 신고해도 수사해서는 안된다는 얘기와 똑같은 코미디가 아니고 무엇인가.
또 하나의 쟁점은 도청에 대한 역대 정권의 책임 문제다. 지금 일부 보수언론의 논조는 도청을 가장 악랄하게 자행한 정권 보다도 도청을 근절하지 못한 정권을 더 매도하고 있다. 이 땅에 도청, 정치사찰, 고문이라는 야만적 통치수단을 뿌리내리게 한 정치세력이 누구인가.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과 그 전신인 민자당, 그 핵심집단인 민정당, 그리고 그 군부 선배집단인 공화당 정권이 그들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민주정치의 근본을 짓밟은 대화내용에 이번 도청 사건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알고 보면 소수엘리트가 지배하는 것이 근현대 사회의 실상이었다. 20세기 초 엘리트 이론의 대가인 로버트 미헬스가 이름지은 과두(寡頭)지배의 철칙이 그것이다.
과두지배의 철칙이 발견된 지 한 세기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어둠이 가시지 않고 있다. 1950년대 미국의 정치사회학계를 풍미했던 파워엘리트 이론도 그 어둠에 대한 고발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다원주의를 강조하며 다원주의 사회를 보장하기 위해 분투한 일군의 학자와 언론인이 그 고발을 해결하기도 했다. 우리의 도청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양식 있는 시민사회가 나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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