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얀 가운을 입은 백의의 천사, 환자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고운 모습을 연상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실 나이팅게일의 진면목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의 탁월한 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신화처럼 덧칠되면서 나이팅게일의 진면목이 오히려 가려졌던 것이었다. 램프를 켜고 환자를 위해 기도를 하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라 군 사령관의 명령에 불복하여 사납게 대들고, 망치를 들고 보급 창고를 때려 부수었는가 하면 한편으론 통계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제도를 바꾸어 나갔던 그야말로 맹렬 여성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맥을 이용하여 소정의 목적을 이루어 낼 정도로 정치적이기까지 한 전투력 강한(?) 여성이었다.
그녀가 크림전쟁(1853∼1856년에 걸쳐 러시아와 오스만제국·영국·프랑스·사르데냐의 연합군 사이에 일어났던 전쟁. 크림반도가 그 무대였다.)에서 다친 영국 병사들의 열악한 상황을 전해 듣고 스쿠다리 군사병원을 찾았을 때 그야말로 비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부상자들은 더럽고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상처라기보다는 열병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다. 나이팅게일은 그런 병원 여건을 개선하고자 지휘관들에게 보급품을 늘려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지휘관들은 그럴 수 없다는 대답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였겠는가?
나이팅게일은 지휘관들의 명령에 정면으로 반항하면서 보급품을 얻기 위해 보급품 창고를 부셔버렸던 것이었다. 당시 나이팅게일의 간호를 받던 병사들은 그녀의 그런 모습에 대해 ‘망치를 든 여성’으로 기억했다고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전쟁 사령관 시드니 허버트와 같은 영향력 있는 친구를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낼 정도로 정치적이었다.
그녀의 그런 자질과 더불어 무엇보다 나이팅게일을 돋보이게 하는 점은 그녀 스스로 당시로선 신학문이던 통계학적인 지식으로 무장했다는 점이었다. 나이팅게일은 ‘통계학이 소설보다 더욱 계몽적’이라고 말할 정도였으며, 1858년 그녀는 새로 조직된 통계학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2년 후 통계학회의 주된 주제는 그녀의 병원 통계학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개혁을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자신이 말하는 개혁에 대해 그 개혁이 무엇을 위한 것이며 왜 필요한지, 현실적으로 최선의 선택인지를 다른 사람들을 분명하게 설득해 낼 수 있는 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또 자신이 주장한 개혁을 제대로 지켜서 이루어내는 사람은 더더욱 많지 않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팅게일의 사회에 대한 투철한 소명의식과 목적의식, 단호하고 현실적인 태도, 지적인 무장 이런 것을 모두 가진, 아니 반만이라도 가진 지도자를 우리 국민들은 원한다.
그러나 사실 나이팅게일의 진면목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의 탁월한 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신화처럼 덧칠되면서 나이팅게일의 진면목이 오히려 가려졌던 것이었다. 램프를 켜고 환자를 위해 기도를 하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라 군 사령관의 명령에 불복하여 사납게 대들고, 망치를 들고 보급 창고를 때려 부수었는가 하면 한편으론 통계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제도를 바꾸어 나갔던 그야말로 맹렬 여성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맥을 이용하여 소정의 목적을 이루어 낼 정도로 정치적이기까지 한 전투력 강한(?) 여성이었다.
그녀가 크림전쟁(1853∼1856년에 걸쳐 러시아와 오스만제국·영국·프랑스·사르데냐의 연합군 사이에 일어났던 전쟁. 크림반도가 그 무대였다.)에서 다친 영국 병사들의 열악한 상황을 전해 듣고 스쿠다리 군사병원을 찾았을 때 그야말로 비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부상자들은 더럽고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상처라기보다는 열병 때문에 죽어가고 있었다. 나이팅게일은 그런 병원 여건을 개선하고자 지휘관들에게 보급품을 늘려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지휘관들은 그럴 수 없다는 대답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였겠는가?
나이팅게일은 지휘관들의 명령에 정면으로 반항하면서 보급품을 얻기 위해 보급품 창고를 부셔버렸던 것이었다. 당시 나이팅게일의 간호를 받던 병사들은 그녀의 그런 모습에 대해 ‘망치를 든 여성’으로 기억했다고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전쟁 사령관 시드니 허버트와 같은 영향력 있는 친구를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낼 정도로 정치적이었다.
그녀의 그런 자질과 더불어 무엇보다 나이팅게일을 돋보이게 하는 점은 그녀 스스로 당시로선 신학문이던 통계학적인 지식으로 무장했다는 점이었다. 나이팅게일은 ‘통계학이 소설보다 더욱 계몽적’이라고 말할 정도였으며, 1858년 그녀는 새로 조직된 통계학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2년 후 통계학회의 주된 주제는 그녀의 병원 통계학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개혁을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자신이 말하는 개혁에 대해 그 개혁이 무엇을 위한 것이며 왜 필요한지, 현실적으로 최선의 선택인지를 다른 사람들을 분명하게 설득해 낼 수 있는 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또 자신이 주장한 개혁을 제대로 지켜서 이루어내는 사람은 더더욱 많지 않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팅게일의 사회에 대한 투철한 소명의식과 목적의식, 단호하고 현실적인 태도, 지적인 무장 이런 것을 모두 가진, 아니 반만이라도 가진 지도자를 우리 국민들은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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