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사건의 죽음들! 억울함과 슬픔이 아니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사연이 스친다. 아니 억울함과 슬픔 등 수사를 붙이는 것 자체가 불경한 것 아닐까?
이러함에도 박정희를 두둔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히틀러에게도 모든 것이 잘못만 있는게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위는 항상 일부나마 긍정적인 부분이 붙어 다니게 마련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한 식으로 세상 일을 흐트러 놓으면 정의라는 개념은 설 자리가 없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독립운동가인 김구선생이나 친일에 앞장선 박정희나 그게 그런 것이라는 식의 역사관이라면 거기에 무슨 민족이 중요하며 고생스러운 독립운동은 또 무슨 의미를 지니겠는가!
인혁당 사건은 과연 무엇인가!
민족적 지도자 김구였다면 함께 걸어가며 나라와 미래를 생각했을 동지가 되었을텐데 친일의 시각으로 그들을 보았던 박정희는 그들 민족주의적 인사들을 빨갱이로 몰아야 권력 유지가 가능했던 것이다.
내가 서대문 교도소에서 만난 인혁당 관련 이재형 선생은 아마도 1년 넘게 면회를 하지 못했다. 사람이 중앙 정보부 고문중에 부지기수로 죽거나 병신이 되고 인혁당이 조작돼 재판 하루만에 사형이 집행되는 판에 김지하 시인이 1년 반동안 일체 가족면회를 차단 당하고 장영달이가 1년이나 면회를 못해 가족들이 생사 확인을 못해도 인권 얘기가 사치스러웠던 치욕의 역사가 바로 박정희 유신 독재 시절 아니었던가!
이러한 사건에 대해 늦게나마 과거사 진상을 규명하여 억울한 죽음들의 원혼을 풀어주고 국민적 화합의 길을 모색하자는 차원에서 인혁당 사건의 고문 조작이 일부나마 만 천하에 밝혀졌다면 당연히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같은 입장이면 유가족에 사과의 마음을 밝히고 국민 앞에도 최소한의 유감의 념을 표명하는 게 인간의 기본이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인혁당으로 잡혀가 죽을 고문의 형편이 어떠했는지 한가지 예만 여기에 적는다. 이재형 선생은 지금도 보존되어 전시중인 일제 왜놈들이 건축 했다는 서대문 형무소 9사 상층 38방, 한평이 안되는 감방에 수감돼 있었다.
집에 쉬다가 낚시질로 소일 하던 중 갑자기 잡혀 왔는데 날더러 무슨 인혁당이라며 죽이려 한다”며 “고문 중에 살아 나갈 수가 없을 것만 같다” 고 말했다.
결국 그는 무기 징역 형인가를 받아 감옥에서 정신 분열 현상까지 얻었다.
이토록 억울하고 서러운 죽음을 덮어두고 바로서는 미래를 기대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렇게 서서히 벗겨지는 지난 날의 과오를 덮기위해 이치에 어긋남을 알면서도 사학법을 핑계로 장외에서 맴도는 박 대표의 의도에 말려들고 있노라는 지적도 한번쯤은 새겨둘 내용이리라!
이러함에도 박정희를 두둔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히틀러에게도 모든 것이 잘못만 있는게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위는 항상 일부나마 긍정적인 부분이 붙어 다니게 마련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한 식으로 세상 일을 흐트러 놓으면 정의라는 개념은 설 자리가 없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독립운동가인 김구선생이나 친일에 앞장선 박정희나 그게 그런 것이라는 식의 역사관이라면 거기에 무슨 민족이 중요하며 고생스러운 독립운동은 또 무슨 의미를 지니겠는가!
인혁당 사건은 과연 무엇인가!
민족적 지도자 김구였다면 함께 걸어가며 나라와 미래를 생각했을 동지가 되었을텐데 친일의 시각으로 그들을 보았던 박정희는 그들 민족주의적 인사들을 빨갱이로 몰아야 권력 유지가 가능했던 것이다.
내가 서대문 교도소에서 만난 인혁당 관련 이재형 선생은 아마도 1년 넘게 면회를 하지 못했다. 사람이 중앙 정보부 고문중에 부지기수로 죽거나 병신이 되고 인혁당이 조작돼 재판 하루만에 사형이 집행되는 판에 김지하 시인이 1년 반동안 일체 가족면회를 차단 당하고 장영달이가 1년이나 면회를 못해 가족들이 생사 확인을 못해도 인권 얘기가 사치스러웠던 치욕의 역사가 바로 박정희 유신 독재 시절 아니었던가!
이러한 사건에 대해 늦게나마 과거사 진상을 규명하여 억울한 죽음들의 원혼을 풀어주고 국민적 화합의 길을 모색하자는 차원에서 인혁당 사건의 고문 조작이 일부나마 만 천하에 밝혀졌다면 당연히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같은 입장이면 유가족에 사과의 마음을 밝히고 국민 앞에도 최소한의 유감의 념을 표명하는 게 인간의 기본이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인혁당으로 잡혀가 죽을 고문의 형편이 어떠했는지 한가지 예만 여기에 적는다. 이재형 선생은 지금도 보존되어 전시중인 일제 왜놈들이 건축 했다는 서대문 형무소 9사 상층 38방, 한평이 안되는 감방에 수감돼 있었다.
집에 쉬다가 낚시질로 소일 하던 중 갑자기 잡혀 왔는데 날더러 무슨 인혁당이라며 죽이려 한다”며 “고문 중에 살아 나갈 수가 없을 것만 같다” 고 말했다.
결국 그는 무기 징역 형인가를 받아 감옥에서 정신 분열 현상까지 얻었다.
이토록 억울하고 서러운 죽음을 덮어두고 바로서는 미래를 기대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렇게 서서히 벗겨지는 지난 날의 과오를 덮기위해 이치에 어긋남을 알면서도 사학법을 핑계로 장외에서 맴도는 박 대표의 의도에 말려들고 있노라는 지적도 한번쯤은 새겨둘 내용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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