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동네북이 된 까닭

    기고 / 시민일보 / 2006-05-15 20: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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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일도(한나라당 의원)
    {ILINK:1} 요즘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노무현 대통령이 동네 북 신세가 된 듯하다.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 원수인데, 이 사람이 손가락질하고 저 사람이 험한 말을 해댄다.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좌파라며 인상을 찌푸리고,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신자유주의에 빠졌다고 고개를 젓는다. 그러한 현실에서 여당마저 묘해져, 최근에는 사립 학교법을 양보하라는 대통령의 협상 안을 아예 무시해 버렸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답을 찾자 하면 백가쟁명이 따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견해라 해도, 대통령 자신이 스스로 자초한 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근거를 대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람들이 흔히 입에 담는 속담 하나가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한 마리도 못 잡는다! 야당 의원이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머리 써서 찾아 낸 말이 아니다. 대통령 스스로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 누가 공연히 트집을 잡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온갖 규제와 정책 실패로 인해 성장은 더디어지고 분배 구조는 더욱 악화되었다는 점이다. 규제에 발목이 잡힌 기업들은 자유를 달라고 호소하고, 양극화의 칼바람은 더욱 매섭게 불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 두 마리 토끼는 어디에 있나? 아니, 한 마리의 토끼라도 잡았는가?
    성장의 깃발을 든 사람들과 분배에 목마른 사람들 모두 몹시 불만스러워한다. 성장을 기대한 이 사람도 불만이요 분배를 기대한 저 사람도 불만이니, 동네 북 신세가 되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생각은 ‘두 마리의 토끼’의 틀에 갇혀 있는 듯 보인다.
    최근에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를 가리켜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했다. 이게 말이 될까? 그렇다면 ‘우파 사회주의자’라는 말도 쓸 수 있을 터인데, 도대체 무슨 뜻일까? 애매한 말의 뜻을 굳이 밝히려 애쓸 필요는 없다. 대통령의 의도는, 좌파와 신자유주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국민들은 대통령의 의도와는 달리 혼란에 빠지거나 불만을 터뜨릴 뿐이다. 앞서 언급했듯 좌파는 신자유주의자라고 비판하고, 신자유주의자들은 좌파라고 비판한다.
    노사 문제를 봐도, 노동자들은 대통령이 신자유주의에 빠져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등 노동자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비난한다. 반면에 기업인들은 분배 등 좌파의 논리를 내세우는 대통령 때문에 경쟁력을 키우기 힘들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다는 대통령의 생각은 중요한 정치적 선택을 할 때 잘 드러난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했다. 지역 갈등과 여야 갈등, 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 이 나라 정치가 좀 더 성숙해지리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제안은 그 어느 쪽으로부터도 환영을 받지 못했다. 한나라당이 대연정을 거부한 것은 물론이고, 여당 지지자들도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못마땅해 하며 대통령을 의심과 비난의 눈길로 쳐다봤다.
    우리나라 외교의 중요한 축인 미국과의 관계는 또 어떻게 보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며 국민에게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그 말속에는 그 동안 우리나라가 할 말을 제대로 못했다는 뜻이 숨어 있다. 그러니까 ‘두 마리의 토끼’를 빗대어 말하면, 그 동안 ‘할 말 못하는 토끼’를 쫓아왔을 뿐, ‘할 말 하는 토끼’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태도를 보이자 미국과의 우호 관계를 굳은 신념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한미 동맹의 손상을 불러와 안보를 불안하게 하고, 나라의 발전을 저해시킨다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서는 이라크 파병, 평택 미군기지 이전 과정, 한미 FTA 추진 과정 등을 예로 들며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는 대통령은 어디 갔느냐고, 미국과의 관계에서 지나치게 저자세가 아니냐고 비판의 날을 세운다.
    그러니 대통령이야 억울하다고 여길지 모르나, 이쪽에서 또 저쪽에서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니 영락없는 동네북이 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양극화 해소’와 ‘한미 FTA 체결’, 그 두 가지를 이루는 데 온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 두 가지만 놓고 볼 때 가장 낙관적인 전망은, 피할 수 없는 개방화 시대에 한미 FTA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고, 그 성장에 따라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등의 효과로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것이겠다.
    그러나 그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목소리도 높다. 성급한 한미 FTA 체결은 양극화를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심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는 임기 후반에 주어진 마지막 시험대라 할 수 있는데,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까?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 헛된 희망이라면, 그것은 더 깊은 절망을 낳을 뿐이다. 한 마리의 토끼라도 제대로 잡자. 그래야 희망의 불씨를 지필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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