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INK:1} 며칠 전 한미FTA가 문화예술에 미칠 영향에 관한 토론회를 준비하며 몇몇 작가들의 참여를 부탁하면서 씁쓸했다. 대부분이 ‘FTA가 문학에 어떤 영향을 주지?’하는 반문이었다. FTA는 보수 언론의 선전 그대로, 스크린쿼터 축소를 맞는 영화인들이나 농민들의 문제였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평택기지 확장과 전략적유연성 획득을 축으로 한 한미군사동맹의 강화, FTA를 통해 완성될 한미경제동맹 강화의 내용은 실제로는 한국의 미국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종속의 강화에 있다. 이러한 불건강한 체재 유지를 위해서 그들은 문화시장에서도 초과이윤 확대를 넘어서서 문화적 종속을 획책하고 있다.
한미FTA는 문화를 산업으로 규정하면서 그 시장을 내놓기를 강요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영화를 넘어 방송, 언론, 출판 시장의 쿼터제를 폐지하고, 개방하라는 압력이다. 교육을 시장으로 규정하고 그 시장을 내놓으라는 요구이다. 초국적 문화자본을 통해 언론, 방송, 영상, 문학, 출판 시장이 장악당하게 되면 그간 양서와 양질의 문화예술활동을 고집해 왔던 대다수의 영세 문화예술단위, 출판사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마트 주변의 동네 슈퍼들이 연쇄 도산을 맞는 현상과 다를 바가 없다.
예를 들어 양서를 고집하는 출판사들의 붕괴는 문학인들의 자기 부정을 요구하게 된다. 이는 문학예술인들로 하여금 창작에 대한 포기 내지는 투항을 요구하게 된다. 도미노 현상처럼, 지난 근대화 100여년 동안 한국사회가 지난하게 이룩해 온 한국사회의 지적, 문화적 전통이 급속도로 무너질 것이다.
창작자들의 생존 환경 역시 급속도로 악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방송과 언론, 교육 등의 편성권을 손에 거머쥔 초국적 문화자본들의 파상적인 지원을 받는 문화상품들과 공정한 경쟁을 해서 살아남을 한국 문화예술인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해 새로운 꿈을 꾸고자 하는 진보적인 문학인들은 보이지 않는 총구 앞에 선 형국이 될 것이다.
이러한 한미FTA의 수용은 결과적으로 역사적 패배감에 대한 승인 행위이다. 일반 대중들은 더 한층 패배감에 사로잡혀 보수화될 것이며, 그 썩은 바탕을 기반으로 해서 전체 사회는 더욱 급격히 민간 파쇼화될 것이다. 비정규직 850만명은 그나마 행복한 일로 기억될 것이다. 한순간의 현실 도피 외의 어떠한 진지한 문화예술 향유행위도 가능치 않게, 그들은 각종 문화예술의 진지한 애독자층을 철저히 파괴할 것이다. 이처럼 한미FTA, 이것은 진지한 문학예술인들 대한 명백한 확인사살 기도다.
한편 한미FTA는 현재의 문화예술정책 역시 그 생태적 다양성과 공공성을 거세하고 경쟁성과 시장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자 한다. 초국적 자본의 진입을 막는 어떤 형태의 인간적인 보호막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FTA의 기본적인 방향인 바 문화주권의 침탈은 자연스레 문화복지의 축소, 문화공공성 및 다양성 보장 축소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은 점점 시장으로부터 도태당하고, 국가의 보호로부터도 멀어져 대다수가 타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황소개구리처럼 이해할 수 없는 문화적 변태종들만이 이 땅의 정신들을 갉아먹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계속해서 반도체와 자동차의 수출만을 얘기한다. 농업과 바꿨을 때, 또는 무엇과 바꾸어도 손해 보지 않는다는 엉터리 대차대조표만을 들이댄다. 앞에서는 문화강국, 신지식사회 건설, 정보화사회 도래를 외치면서도, 그들의 대차대조표는 여전히 산술적이고, 전근대적이다.
그간 한국사회의 진보적인 문화예술인들은 자신의 생존권만을 위해 살아오지 않았다. 이 사회의 진실을 지키는 나침반과 파수병 역할을 자임해왔다. 때론 핍박당하고, 탄압받으면서도 자신의 사회적 역할들을 방기하지 않았다. 누가 시켜서도, 무엇을 얻기를 바래서도 아니었다. 진정한 문화예술의 정신이 무엇이냐는 끊임없는 질문이 우리를 치우치지 않는 긴장감의 칼날 위에 서게 해 왔다.
그런데 지금 한미FTA는 문화예술인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심대한 공격을 전방위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표현의 장, 모든 부분을 시장화하고 저희들이 독점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시도는 결과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모두를, 세상의 가치로운 모든 것을 이윤 취득이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더러운 음모일 뿐이다.
아직 대안은 분명치 않지만 우리 모두는 이 사회의 모두가 골고루 평화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원한다. 그 길에서 하나의 원칙만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그때 그때의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모두를 위해 가장 평등하고 평화로운 방도가 무엇인가를 고심해서 선택해간다. 신자유주의 착취의 세계화가 아닌 평등평화의 세계화, 다양한 민족들의 다양한 세계화를 원한다. 우리는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는 희망찬 마음의 세계화를 원하지, 강한 국가에게, 강한 자에게 무조건 무릎 꿇어야 한다는 사대굴종의, 패배감의 세계화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반 노동자가 아닌 그런 꿈을 꾸고, 생산하는 공장의 노동자인 문화예술인들로 남게 되기를 원한다. 한미FTA는 그런 진보적인 문화예술인들의 시대정신과 감각과 자존심을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싸운다.
위 글은 시민일보 6월1일자 오피니언 5면에 게재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평택기지 확장과 전략적유연성 획득을 축으로 한 한미군사동맹의 강화, FTA를 통해 완성될 한미경제동맹 강화의 내용은 실제로는 한국의 미국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종속의 강화에 있다. 이러한 불건강한 체재 유지를 위해서 그들은 문화시장에서도 초과이윤 확대를 넘어서서 문화적 종속을 획책하고 있다.
한미FTA는 문화를 산업으로 규정하면서 그 시장을 내놓기를 강요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영화를 넘어 방송, 언론, 출판 시장의 쿼터제를 폐지하고, 개방하라는 압력이다. 교육을 시장으로 규정하고 그 시장을 내놓으라는 요구이다. 초국적 문화자본을 통해 언론, 방송, 영상, 문학, 출판 시장이 장악당하게 되면 그간 양서와 양질의 문화예술활동을 고집해 왔던 대다수의 영세 문화예술단위, 출판사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마트 주변의 동네 슈퍼들이 연쇄 도산을 맞는 현상과 다를 바가 없다.
예를 들어 양서를 고집하는 출판사들의 붕괴는 문학인들의 자기 부정을 요구하게 된다. 이는 문학예술인들로 하여금 창작에 대한 포기 내지는 투항을 요구하게 된다. 도미노 현상처럼, 지난 근대화 100여년 동안 한국사회가 지난하게 이룩해 온 한국사회의 지적, 문화적 전통이 급속도로 무너질 것이다.
창작자들의 생존 환경 역시 급속도로 악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방송과 언론, 교육 등의 편성권을 손에 거머쥔 초국적 문화자본들의 파상적인 지원을 받는 문화상품들과 공정한 경쟁을 해서 살아남을 한국 문화예술인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해 새로운 꿈을 꾸고자 하는 진보적인 문학인들은 보이지 않는 총구 앞에 선 형국이 될 것이다.
이러한 한미FTA의 수용은 결과적으로 역사적 패배감에 대한 승인 행위이다. 일반 대중들은 더 한층 패배감에 사로잡혀 보수화될 것이며, 그 썩은 바탕을 기반으로 해서 전체 사회는 더욱 급격히 민간 파쇼화될 것이다. 비정규직 850만명은 그나마 행복한 일로 기억될 것이다. 한순간의 현실 도피 외의 어떠한 진지한 문화예술 향유행위도 가능치 않게, 그들은 각종 문화예술의 진지한 애독자층을 철저히 파괴할 것이다. 이처럼 한미FTA, 이것은 진지한 문학예술인들 대한 명백한 확인사살 기도다.
한편 한미FTA는 현재의 문화예술정책 역시 그 생태적 다양성과 공공성을 거세하고 경쟁성과 시장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자 한다. 초국적 자본의 진입을 막는 어떤 형태의 인간적인 보호막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FTA의 기본적인 방향인 바 문화주권의 침탈은 자연스레 문화복지의 축소, 문화공공성 및 다양성 보장 축소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은 점점 시장으로부터 도태당하고, 국가의 보호로부터도 멀어져 대다수가 타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황소개구리처럼 이해할 수 없는 문화적 변태종들만이 이 땅의 정신들을 갉아먹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계속해서 반도체와 자동차의 수출만을 얘기한다. 농업과 바꿨을 때, 또는 무엇과 바꾸어도 손해 보지 않는다는 엉터리 대차대조표만을 들이댄다. 앞에서는 문화강국, 신지식사회 건설, 정보화사회 도래를 외치면서도, 그들의 대차대조표는 여전히 산술적이고, 전근대적이다.
그간 한국사회의 진보적인 문화예술인들은 자신의 생존권만을 위해 살아오지 않았다. 이 사회의 진실을 지키는 나침반과 파수병 역할을 자임해왔다. 때론 핍박당하고, 탄압받으면서도 자신의 사회적 역할들을 방기하지 않았다. 누가 시켜서도, 무엇을 얻기를 바래서도 아니었다. 진정한 문화예술의 정신이 무엇이냐는 끊임없는 질문이 우리를 치우치지 않는 긴장감의 칼날 위에 서게 해 왔다.
그런데 지금 한미FTA는 문화예술인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심대한 공격을 전방위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표현의 장, 모든 부분을 시장화하고 저희들이 독점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시도는 결과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모두를, 세상의 가치로운 모든 것을 이윤 취득이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더러운 음모일 뿐이다.
아직 대안은 분명치 않지만 우리 모두는 이 사회의 모두가 골고루 평화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원한다. 그 길에서 하나의 원칙만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그때 그때의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모두를 위해 가장 평등하고 평화로운 방도가 무엇인가를 고심해서 선택해간다. 신자유주의 착취의 세계화가 아닌 평등평화의 세계화, 다양한 민족들의 다양한 세계화를 원한다. 우리는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는 희망찬 마음의 세계화를 원하지, 강한 국가에게, 강한 자에게 무조건 무릎 꿇어야 한다는 사대굴종의, 패배감의 세계화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반 노동자가 아닌 그런 꿈을 꾸고, 생산하는 공장의 노동자인 문화예술인들로 남게 되기를 원한다. 한미FTA는 그런 진보적인 문화예술인들의 시대정신과 감각과 자존심을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싸운다.
위 글은 시민일보 6월1일자 오피니언 5면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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