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이상을 한주아파트에서 살다가 이번주 운암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유
학을 마치고 미국에서 귀국하던 1993년부터 한주에서 살았으니 아파트 곳곳에 정이 배어 있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지금 중학교 2학년인 딸 이슬이가 첫 생일을 맞고, 유치원, 초등학교를 다녔던 곳이 한주입니다.
아들 하늘이 역시 신생아때부터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지금까지 살았으니 고향집인 셈입니다.
귀국당시 재미교포신분이었던 아이들 엄마는 어려운 한국생활을 적응하며 어느새 오산아줌마가 되어 지금은 한주아파트 반장 일을 맡고 있습니다.
105동, 102동, 현재의 101동에 이르기까지 전세 신세를 면치 못하였지만 우리가족에게 한주는 꿈과 희망의 아파트였습니다.
몇 해 전에는 수청동 우미아파트 분양을 받아 작은 평수이지만 제 이름의 아파트를 갖게 된 곳도 한주입니다.
한주아파트는 저에게 발전과 도약의 기회를 준 장소였습니다. 장교로 의무군복무 기간을 35세에 마치고 연구원 취직, 그리고 중앙대 교수 임용, 국회의원 당선으로 이어지는 파노라마가 한주에 사는 동안 펼쳐졌습니다.
일요일 아침이면 아이들과 아파트 뒤의 동산에 올라 상쾌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체조를 하면서 가족의 사랑을 채워 갔던 기억은 여느 아파트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요즈음은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아빠가 동산에 가자는데도 별 호응이 없지만, 아이들은 아빠와 어린 시절 놀았던 한주의 동산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입니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저는 한주에 사는 10년 넘는 세월동안 단 한 번도 분리수거를 아내에게 맡긴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분리수거만큼은 내가 했고,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분리수거만큼은 분명히 내 몫이었습니다.
정치를 하면서 어느새 가족과 비켜서있게 되어 가장으로서의 정체성 위기를 느끼게 되었고 결혼이후 내가 담당해온 분리수거조차 하지 않으면 내가 가정에서 설 땅이 사라지리라는 묘한 생각이 들어 아무리 바빠도 분리수거만큼은 아내를 시키지 않았습니다.
지난 토요일이 한주에서 마지막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데 아들 녀석이 디지털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정들었던 한주아파트를 떠나는 마음이 착찹합니다.
항상 친철히 저희 가족을 아껴 주셨던 슈퍼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노인회장님을 비롯한 경로당 어른신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부녀회장님 그리고 통장님들, 별이 엄마, 아빠, 세탁소 아줌마, 과일가게 선배님을 비롯한 한주 모든 가족여러분! 그동안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와 저의 가족들은 한주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유
학을 마치고 미국에서 귀국하던 1993년부터 한주에서 살았으니 아파트 곳곳에 정이 배어 있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지금 중학교 2학년인 딸 이슬이가 첫 생일을 맞고, 유치원, 초등학교를 다녔던 곳이 한주입니다.
아들 하늘이 역시 신생아때부터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지금까지 살았으니 고향집인 셈입니다.
귀국당시 재미교포신분이었던 아이들 엄마는 어려운 한국생활을 적응하며 어느새 오산아줌마가 되어 지금은 한주아파트 반장 일을 맡고 있습니다.
105동, 102동, 현재의 101동에 이르기까지 전세 신세를 면치 못하였지만 우리가족에게 한주는 꿈과 희망의 아파트였습니다.
몇 해 전에는 수청동 우미아파트 분양을 받아 작은 평수이지만 제 이름의 아파트를 갖게 된 곳도 한주입니다.
한주아파트는 저에게 발전과 도약의 기회를 준 장소였습니다. 장교로 의무군복무 기간을 35세에 마치고 연구원 취직, 그리고 중앙대 교수 임용, 국회의원 당선으로 이어지는 파노라마가 한주에 사는 동안 펼쳐졌습니다.
일요일 아침이면 아이들과 아파트 뒤의 동산에 올라 상쾌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체조를 하면서 가족의 사랑을 채워 갔던 기억은 여느 아파트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요즈음은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아빠가 동산에 가자는데도 별 호응이 없지만, 아이들은 아빠와 어린 시절 놀았던 한주의 동산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입니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저는 한주에 사는 10년 넘는 세월동안 단 한 번도 분리수거를 아내에게 맡긴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분리수거만큼은 내가 했고,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분리수거만큼은 분명히 내 몫이었습니다.
정치를 하면서 어느새 가족과 비켜서있게 되어 가장으로서의 정체성 위기를 느끼게 되었고 결혼이후 내가 담당해온 분리수거조차 하지 않으면 내가 가정에서 설 땅이 사라지리라는 묘한 생각이 들어 아무리 바빠도 분리수거만큼은 아내를 시키지 않았습니다.
지난 토요일이 한주에서 마지막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데 아들 녀석이 디지털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정들었던 한주아파트를 떠나는 마음이 착찹합니다.
항상 친철히 저희 가족을 아껴 주셨던 슈퍼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노인회장님을 비롯한 경로당 어른신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부녀회장님 그리고 통장님들, 별이 엄마, 아빠, 세탁소 아줌마, 과일가게 선배님을 비롯한 한주 모든 가족여러분! 그동안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와 저의 가족들은 한주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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