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정체성은 보수(保守)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보적인 사고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보다 좌로 몇 발자국 떨어져 있거나, 우로 몇 발자국 떨어져 있더라고 용납되고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보수(保守)의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 당내 정체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다름과 차이를 포용하지 않는 당내 분위기를 보면서 한나라당이 지금 오만과 독선에 길로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20~30년 전 뒤로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감이 든다.
시대는 변했다. 진보(進步)와 보수(保守)의 개념은 물론 그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이제는 보수(保守) 본연의 가치가 중요시 되고, 국민들도 보수(保守)정당의 필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보수(保守)정당의 모습 또한 꾸준히 변화하며 발전해 왔다.
그동안 많은 부침이 있었지만 우리 한나라당도 보수(保守) 본연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보수(保守)정당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을 때 보수(保守)는 보수(保守)가 아니라 수구(守舊)로 전락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나라당이 일각에서 수구(守舊)로 불리어질 때는 바로 이런 점이 부각되었을 때였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킨 주동력은 보수세력이 움직였을 때 흔히 진보가 역사를 발전시킨다고 하지만, 인류의 역사적 경험을 돌이켜보면 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보수세력이 움직였을 때 역사는 실제적인 발전해 나갔다.
대처 총리가 이끌던 영국의 보수당이 대영제국이라는 화려한 간판 뒤에서 퇴락하던 영국을 다시금 일으켜 세웠고, 헬무트 콜 수상이 이끌던 독일의 기민당이 결국은 독일 통일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던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의 보수당과 독일의 기민당은 보수정당이지만, 다양성이 보장되고 활발한 토론이 가능한 스펙트럼이 넓은 정당이기도 했다.
현재 우리사회의 발전을 위한 최대 과제는 아마추어적인 현 정권의 연장을 막고 정권교체를 실현하는데 있다.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이 한나라당에게 그 역할을 맡기려 하고 있다.
그러나 50%에 넘나드는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은 한나라당 자체의 힘으로 만들어낸 지지가 아니다. 우리가 내부에서조차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지 못하고 오만과 독선에 빠질 때는 매서운 비판가 차가운 외면으로 다가올 수 있는 지지와 성원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스스로도 인정받을 수 없어 다르다는 것은 틀리다는 것이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틀린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보적인 사고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보다 좌로 몇 발자국 떨어져 있거나, 우로 몇 발자국 떨어져 있더라고 용납되고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보수(保守)의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 당내 정체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다름과 차이를 포용하지 않는 당내 분위기를 보면서 한나라당이 지금 오만과 독선에 길로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20~30년 전 뒤로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감이 든다.
시대는 변했다. 진보(進步)와 보수(保守)의 개념은 물론 그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이제는 보수(保守) 본연의 가치가 중요시 되고, 국민들도 보수(保守)정당의 필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보수(保守)정당의 모습 또한 꾸준히 변화하며 발전해 왔다.
그동안 많은 부침이 있었지만 우리 한나라당도 보수(保守) 본연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보수(保守)정당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을 때 보수(保守)는 보수(保守)가 아니라 수구(守舊)로 전락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나라당이 일각에서 수구(守舊)로 불리어질 때는 바로 이런 점이 부각되었을 때였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킨 주동력은 보수세력이 움직였을 때 흔히 진보가 역사를 발전시킨다고 하지만, 인류의 역사적 경험을 돌이켜보면 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보수세력이 움직였을 때 역사는 실제적인 발전해 나갔다.
대처 총리가 이끌던 영국의 보수당이 대영제국이라는 화려한 간판 뒤에서 퇴락하던 영국을 다시금 일으켜 세웠고, 헬무트 콜 수상이 이끌던 독일의 기민당이 결국은 독일 통일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던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의 보수당과 독일의 기민당은 보수정당이지만, 다양성이 보장되고 활발한 토론이 가능한 스펙트럼이 넓은 정당이기도 했다.
현재 우리사회의 발전을 위한 최대 과제는 아마추어적인 현 정권의 연장을 막고 정권교체를 실현하는데 있다.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이 한나라당에게 그 역할을 맡기려 하고 있다.
그러나 50%에 넘나드는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은 한나라당 자체의 힘으로 만들어낸 지지가 아니다. 우리가 내부에서조차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지 못하고 오만과 독선에 빠질 때는 매서운 비판가 차가운 외면으로 다가올 수 있는 지지와 성원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스스로도 인정받을 수 없어 다르다는 것은 틀리다는 것이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틀린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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