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향한 힘든 여정 속으로 (1)

    기고 / 시민일보 / 2007-04-09 16:07:16
    • 카카오톡 보내기
    김정기(중국북경대학 연구교수)
    또다시 갈림길에 섰다.

    나는 운명론자가 아니다. 운명은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내 삶의 주체는 나, 즉 나는 내 삶의 창조주라고 믿는다.

    잘 나가는 대학 영어 저술가와 영어 강사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공부를 계속할 것인가? 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떤 결정이 운명에 도전하는 길인지 따질 겨를도 없이 뉴욕주립대로 떠날 때처럼 미국 로스쿨을 향해 새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정치학을 통해 진정한 인간학을 알고 싶었다면 법학을 통해서는 세부적이고 구체적으로 인간을 탐색하고 나아가 국가와 사회 그리고 세계를 알아가고 싶었다. 나는 용기와 자신감만으로 로스쿨이라는 또 다른 새로운 길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인간이 육십을 살든 팔십을 살든 평생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생을 산다고 할 때 오늘보다 나은 내일, 내일보다 나은 미래를 내다보며 노력하는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은가. 그 희망에 안착하려는 불안감이 나를 로스쿨로 향하게 한 것이다.

    로스쿨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무척 어려운 코스를 밟아가는 과정이다. 다시 출사표를 던졌지만, 공부가 녹록치 않았다. 일종의 논리 시험인 LSAT를 준비하면서 나는 여러 번 포기할까 생각했다. 로스쿨에서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기운이 다 빠져버릴 것 같았다. 결국 LSAT를 무사히 치르고 미국 시라큐스 로스쿨에 입학하게 됐다. 1997년 30대 중반의 나이에 시작한 미국 로스쿨 과정은 논산훈련소 신병 생활처럼 끝없는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미국 로스쿨은 10여년 전 방영된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것처럼 스승과 제자 또는 학생과 학생이 어떤 사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제기하면서 답변을 이끌어내는 소크라테식 수업 방식으로 진행된다.

    새벽같이 일어나 수업 준비하고, 강의실에 들어서면 그때부터 치열한 전투가 시작된다. 자신이 가진 모든 법학 지식을 동원하여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에 나오는 킹스필드 교수가 그랬던 것처럼 맹렬하게 퍼부어대는 교수의 질문 공세를 막아내야 한다. 수업이 끝나면 그날 숙제는 물론 다음날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직행한다. 취미생활은 커녕 차 한 잔 마시고 도서관 밖으로 나가 잠시 여유 있게 앉아 휴식을 취할 틈도 없다. 감시자도 없고, 정해진 규율도 없지만 모두들 하루하루를 그렇게 치열하게 산다.

    로스쿨 1년차 시절에는 체력의 한계 때문에 과제물로 밤을 새우면 다음날은 하루 종일 봄볕 받아 졸고 있는 병아리같이 되곤 했다. 공부가 어렵고 힘이 들어도 내가 지금 어디쯤 가고 있고, 어떤 수준인지 알면 조금 나을 듯도 싶은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충분히 공부하지 못한 것 같아 불안했고,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워 불안했다. 심지어 어떤 과목은 시험 바로 전날, 아니 시험 당일 시험지를 받아보기 직전까지 답안을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감도 못 잡은 경우가 많았다. 너무나 막막했다.

    책상 위에는 늘 다음날 수업을 위해 읽어야 할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교수들은 매일 도저히 해낼 수 없을 만큼 많은 과제를 내주었다. 학생들은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어떻게든 교수의 맹렬한 질문 공세에 대처해보려 하지만 완벽한 준비는 늘 어림도 없었다. 60퍼센트 정도 준비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그날 수업에 자신이 호명되지 않기만을 바래보지만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교수의 질문은 어김없이 이어진다.

    한 학생이 호명되어 기본적인 내용부터 질문을 받는다. 그 학생이 제대로 대답을 하면 교수는 다시 더 깊이 있는 질문으로 들어간다. 다시 학생이 대답하고, 교수는 더 깊이 질문하고…. 이렇게 열 번 스무 번 질문과 대답은 계속된다. 로스쿨에서는 이런 식으로 학생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킨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시민일보 시민일보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