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기고 / 시민일보 / 2007-07-19 20:20:52
    • 카카오톡 보내기
    이 승 우(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
    {ILINK:1} 무고하게 쫓기는 사람이 숨어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고 거짓말을 했을 때 그의 행동은 규범 ‘거짓말을 하지 말라‘를 어겼지만, 그러나 비난받아선 안 된다고 상황윤리론자들은 주장한다.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게 되면 누군가 해를 입는 것이 명백할 때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덕적이라고 말해진다. 왜냐하면 그의 거짓말은 이타적인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사랑만이 유일한 규범이라는 것이 상황윤리의 강령이다.

    생존을 위한 거짓말도 있을 수 있다.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럴 때 거짓말은 약자의 최후수단(ultima-ratio)으로 보장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거짓말은 자신의 경제적 정신적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고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용납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거짓말이나 이타적인 거짓말의 경우, 그 거짓말은 지금 가해자이거나 잠재적으로 가해자일 수 있는 사람을 향해 행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이 탄로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있지만, 죄책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는 거짓말의 경우,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피해자를 향해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통해 피해자를 만든다. 따라서 이런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과 죄책감이 동반된다. 이런 감정들은 거짓말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대가가 클수록 증가한다.

    미국 국방성과 FBI 등의 자문을 맡은 바 있는 폴 애크만이라는 심리학자의 ‘거짓말 잡아내기’라는 재미있는 책에 의하면, 거짓말에 동반된 감정에는 두려움과 죄책감 말고도 쾌감이란 것이 있다. 성공적으로 거짓말을 하고난 후에 느끼는 안도의 기쁨, 성취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희생자를 경멸하면서 우쭐해 하는 쾌감 같은 것을 말한다. 죄의식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도 좋은 쾌감의 재료가 된다. 이때 거짓말도 등산이나 운동처럼 즐기는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이 저자는 말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거짓과 가짜들에 대해 탄식하게 하고, 거짓과 가짜를 양산하는 우리 사회의 허위의식과 허술한 검증 시스템을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 또 터졌다. 한 여교수의 대담하고 뻔뻔스런 학력 사기 사건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어떻게 입학한 적도 없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연히 폴 애크만의 책이 눈에 띄어 훑어 읽었는데,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몇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에 따른 죄책감을 줄일 방법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스스로의 환상을 필요로 한다는 지적이 있다. 고귀한 목적을 위한 과정이라고 합리화하거나 직업상 어쩔 수 없다고 자위하거나 거짓말의 대상이 개인이 아니고 불특정다수인 경우 실제로 손해를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해 버리는 식이다.

    더 그럴 듯한 설명이 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고의적인 행동이므로, 거짓말 하는 사람은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이 한 거짓말을 진실로 믿어 버리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한 거짓말에 본인 스스로 속게 된다는 것.

    무솔리니가 그 본보기로 소개되었는데, 그는 1938년 1개 사단의 편성을 기존의 3개 연대에서 2개 연대로 바꿨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파시스트당이 실제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60개 사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선전했다. 그런데 막상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이탈리아 군은 이 변화 때문에 큰 혼란을 겪었고, 무엇보다도 무솔리니 자신이 자기 속임수에 속아 이탈리아 군의 역량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으며, 결국 그 때문에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는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문제의 여교수는 자신의 가짜 학력을 즐겨 과시하고 자랑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속여 넘기고 있다는 쾌감을 누렸음직하다. 그리고 상당히 고귀한 목적을 위해 쓰인 훌륭한 거짓말이라는 도구를 합리화했을 것도 같다. 무엇보다 저 이탈리아의 파시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 역시 자신의 거짓말에 속아 자신의 거짓말을 진짜로 믿어 버렸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 입으로 어떻게 그렇게 대범하고 뻔뻔하게, 혹은

    경솔하게 자신의 가짜 학력을 내세우고 자랑하고 했겠는가.

    내가 읽은 그 책의 끝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헨리 키신저의 말이 소개되어 있다.
    “속임수를 통해 협상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낭만주의자뿐일 것이다. 외교관에게 속임수는 영리한 통로가 아니라 재앙의 통로가 될 것이다. 주로 같은 사람과 반복하여 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속임수가 통하는 것은 기껏해야 한번뿐이다. 그것 역시 오랫동안 불편한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 대가를 치르고 말 것이다.”

    외교관에게 그럴진대, 누구에겐들 그렇지 않겠는가. 교수에게는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시민일보 시민일보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