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의 ‘이비어천가’

    고하승 칼럼 / 시민일보 / 2008-04-20 14:4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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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고 하 승
    우리나라 언론의 ‘이비어천가(李飛御天歌)’가 도를 넘은 것 같다.

    실제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간의 한미정상회담을 보도하는 우리나라 언론을 보면, 군부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각 방송과 신문들은 방미 중인 이 대통령의 세세한 동정은 물론, 곁다리에 불과한 대통령 부인 동정까지 시시콜콜 보도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도착시 영접을 맡은 이는 부시대통령도 심지어 라이스 국무장관과도 아닌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였다. 일개 차관보에게 일국의 대통령의 영접을 맡긴 것이다.

    더구나 이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대한 현지 언론의 반응은 말 그대로 '썰렁'했다. 어떤 메이저 언론도 이 대통령의 방미기사를 싣지 않았다. 심지어 이날 삼성 광고가 실린 신문들조차 이 대통령의 방미에 대한 기사가 전혀 실리지 않았다. 그나마 삼성의 '광고'가 기사를 대신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한국 언론은 이 대통령이 매우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처럼 호들갑이다.

    실제 우리나라 언론은 미국의 부시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관계자, 그리고 미국의 기업인들, 또 세계적 지도자들이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가 환대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할 만큼 대서특필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오전 캠프 데이비드 한미정상회담이 열리는 그 시간에 미국의 대표적 뉴스전문 채널인 CNN 방송은 지난 닷새동안 해왔던 대로 미국을 방문 중인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중 '반갑게도'(?) 캠프 데이비드를 연결하겠다는 방송멘트가 나왔지만, 북핵과 관련된 부시 대통령의 짤막한 멘트만이 1분 남짓 방송됐을 뿐 TV화면은 다시 뉴욕에 있는 교황의 모습으로 채워졌다.

    즉 정상회담을 마친 뒤 양 정상이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TV화면에서조차 이 대통령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 대통령과 함께 방미 중인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의 경우는 어땠을까?

    CNN은 지난 17일 백악관 정상회담 뒤 양 정상의 공동기자회견 실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생중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18일자 신문에서 3면에 부시와 브라운 총리가 함께 걷는 사진을 큼지막하게 실었다.

    이 대통령을 외면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런데도 영국 언론은 고든 총리를 향해 매우 비판적이다.

    하필 교황 방미 일정과 겹쳐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꼬집는 기사들이 영국 내에서 무더기로 쏟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고든 총리보다도 훨씬 더 홀대를 받은 이 대통령의 방미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우리나라 언론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 대통령이 미국에서 크게 환대를 받는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식의 거짓 보도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국민들도 우리 대통령이 외국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알아야 올바른 대처를 하도록 당국에 요구할 것 아니겠는가.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진실을 전할 용기가 없다면, 최소한 ‘이비어천가’를 부르는 짓이라도 중지해야 하는 게 언론인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양심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공천과 관련, 박근혜 전 대표가 “내가 속았다”고 표현한 것을 빗대 “나도 속았다”고 말했는데도, 이를 문제 삼은 언론은 별로 없었다.

    필자는 처음에 “내가 속였다”는 말을 강재섭 대표가 잘못 전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였는데도 대부분의 언론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박 전 대표와 같은 피해자의 위치에 서도록 만들어 준 셈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진실을 알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진실보다 더 큰 무기는 없다. 한국 언론의 ‘이비어천가’가 일시적으로 국민의 눈을 가리는 효과를 낼지는 모르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훗날 누가 당신을 향해 ‘이비어천가를 부른 언론인’이라고 손가락질 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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