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입장에서 솔직히 시인해야할 일을 시인하지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로 얼버무리는 것을 ‘고좌우이언타(顧左右而言他)’라고 한다. 이는 맹자의 양혜왕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날 맹자가 제선왕(齊宣王)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왕의 신하 가운데 어떤 사람이 자신의 처자식을 친구에게 맡기고 초나라에 일을 보러 갔는데 돌아와 보니 그동안 친구가 처자식을 돌봐주지 않아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왕께서는 그런 친구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친구를 믿고 처자식을 맡겼는데 그들을 외면하고 굶게 만든 사람이라면 당장 절교를 해야 합니다. 그는 친구를 할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버려야 합니다.”
그러자 맹자는 이번에 이렇게 물었다.
“사사(士師, 오늘날 법무장관)가 그 부하를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면 당장 파면시킬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왕은 난처한 듯 좌우를 둘러보면서 엉뚱한 이야기로 현장을 얼버무리려 했다.
그래서 나온 고사성어가 바로 ‘고좌우이언타(顧左右而言他)’다.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에 대한 불교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은 “뭘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기본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9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이 대통령이 직접 불교계에 사과할 것이란 예측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냥 ‘유감표명’ 수준으로 그치겠다는 것.
특히 청와대는 한나라당의 거듭된 건의와 요청에도 불구, 불교계가 줄곧 요구해온 어청수 경찰청장 경질마저도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 공동의장인 김진홍 목사에 따르면 그가 지난달 28일 뉴라이트전국연합 회원들과 함께 청와대를 찾았을 때 이 대통령에게 ""불교에서 마음이 불편한 것 같은데 풀어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묻자, 이 대통령은 ""무엇을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입장에선 당혹하다""라고 말했다는 것.
즉 자신은 사과할 것도 없는데 불교계에서 사과를 요구를 해 당혹스럽고, 그런데도 불교계가 사과를 요구하니, 그냥 “유감”이라는 말만 하겠다는 뜻이다.
심지어 상왕(上王)으로 불리는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마저 지난 5일 “대통령이 유감의 뜻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사과할 것은 아니다. 사과는 잘못했을 때 하는 것”이라고 ‘사과할 필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일부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언행이 있었고,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 탑승 차량의 검색이 '불교계 어른'에 대한 예우에 어긋난 것이지만, '불법·위법'은 아닌 만큼 '사과'를 하기는 어렵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도 개인 신앙생활을 자유로이 할 권리가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논리로 이 문제를 이끌어 가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자신이 누려야할 자유를 모두 누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속박해야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법치도 좋지만, 때로는 정치가 필요하고, 그런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 자리가 바로 대통령이다.
불교계와의 갈등은 ‘법대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풀어야할 문제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여전히 ‘법대로’를 고집할 태세다.
위장전입 등 그 스스로 살아온 이력이 ‘법대로’와는 거리가 먼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하필 이런 때에 ‘정치’가 아니라, ‘법치’를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이 대통령이 지지율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여기서 더 물러나면 하반기 국정 주도권 장악에도 적잖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즉 공안정국에 버금가는 강공책을 쓰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고좌우이언타(顧左右而言他)’다.
즉 제선왕이 “내가 왕을 그만 두어야지요”라거나 “정말 잘못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고쳐나가도록 하겠다”고 답변하지 않고, 엉뚱한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수법과 너무나 닮았다는 말이다.
이명박 집권 이후 초기 장관과 청와대 참모진 인사의 패착이 실정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7년래 최고라는 소비자 물가 4. 9% 급등을 초래했고, 결국 서민들은 생활고에 찌든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자신의 잘못을 애써 외면했던 제선왕 시절, 제나라 백성들의 궁핍한 삶을 연상케 하는 것이어서 참으로 씁쓸하기 그지없다.
어느 날 맹자가 제선왕(齊宣王)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왕의 신하 가운데 어떤 사람이 자신의 처자식을 친구에게 맡기고 초나라에 일을 보러 갔는데 돌아와 보니 그동안 친구가 처자식을 돌봐주지 않아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왕께서는 그런 친구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친구를 믿고 처자식을 맡겼는데 그들을 외면하고 굶게 만든 사람이라면 당장 절교를 해야 합니다. 그는 친구를 할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버려야 합니다.”
그러자 맹자는 이번에 이렇게 물었다.
“사사(士師, 오늘날 법무장관)가 그 부하를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면 당장 파면시킬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왕은 난처한 듯 좌우를 둘러보면서 엉뚱한 이야기로 현장을 얼버무리려 했다.
그래서 나온 고사성어가 바로 ‘고좌우이언타(顧左右而言他)’다.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에 대한 불교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은 “뭘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기본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9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이 대통령이 직접 불교계에 사과할 것이란 예측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냥 ‘유감표명’ 수준으로 그치겠다는 것.
특히 청와대는 한나라당의 거듭된 건의와 요청에도 불구, 불교계가 줄곧 요구해온 어청수 경찰청장 경질마저도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 공동의장인 김진홍 목사에 따르면 그가 지난달 28일 뉴라이트전국연합 회원들과 함께 청와대를 찾았을 때 이 대통령에게 ""불교에서 마음이 불편한 것 같은데 풀어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묻자, 이 대통령은 ""무엇을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입장에선 당혹하다""라고 말했다는 것.
즉 자신은 사과할 것도 없는데 불교계에서 사과를 요구를 해 당혹스럽고, 그런데도 불교계가 사과를 요구하니, 그냥 “유감”이라는 말만 하겠다는 뜻이다.
심지어 상왕(上王)으로 불리는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마저 지난 5일 “대통령이 유감의 뜻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사과할 것은 아니다. 사과는 잘못했을 때 하는 것”이라고 ‘사과할 필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일부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언행이 있었고,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 탑승 차량의 검색이 '불교계 어른'에 대한 예우에 어긋난 것이지만, '불법·위법'은 아닌 만큼 '사과'를 하기는 어렵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도 개인 신앙생활을 자유로이 할 권리가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논리로 이 문제를 이끌어 가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자신이 누려야할 자유를 모두 누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속박해야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법치도 좋지만, 때로는 정치가 필요하고, 그런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 자리가 바로 대통령이다.
불교계와의 갈등은 ‘법대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풀어야할 문제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여전히 ‘법대로’를 고집할 태세다.
위장전입 등 그 스스로 살아온 이력이 ‘법대로’와는 거리가 먼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하필 이런 때에 ‘정치’가 아니라, ‘법치’를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이 대통령이 지지율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여기서 더 물러나면 하반기 국정 주도권 장악에도 적잖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즉 공안정국에 버금가는 강공책을 쓰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고좌우이언타(顧左右而言他)’다.
즉 제선왕이 “내가 왕을 그만 두어야지요”라거나 “정말 잘못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고쳐나가도록 하겠다”고 답변하지 않고, 엉뚱한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수법과 너무나 닮았다는 말이다.
이명박 집권 이후 초기 장관과 청와대 참모진 인사의 패착이 실정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7년래 최고라는 소비자 물가 4. 9% 급등을 초래했고, 결국 서민들은 생활고에 찌든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자신의 잘못을 애써 외면했던 제선왕 시절, 제나라 백성들의 궁핍한 삶을 연상케 하는 것이어서 참으로 씁쓸하기 그지없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