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친박계 좌장격인 김무성 의원이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아름다운 동행’론을 전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지난 21일 부산 부경대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표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축사를 통해 “박 전 대표의 깨끗한 경선 승복이 아름다운 동행으로 이어지지 못해 아쉽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그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과 같이 어려운 시점에서 아름다운 동행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라고 말하는 가하면, “어느 누구도 박 전 대표에게 진정성을 갖고 손을 내민 적이 없다. 정말 어렵다고, 도와달라고 진심으로 얘기하는 데 뿌리칠 박근혜가 아니다”는 말로 이명박-박근혜의 동행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자신과 경선에서 치열하게 맞붙었던 힐러리 클린턴의원을 국무장관에 내정한 것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대목이다.
미국 대선 당시 오바마와 힐러리는 이명박-박근혜 경선 못지않게 사활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인 바 있다. 또 힐러리는 경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막강한 ‘클린턴 사단’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에서 박 전 대표와 상당히 닮은꼴이다.
물론 힐러리와 박근혜 모두 깨끗한 경선 승복으로 정권교체에 큰 힘이 되었다는 점도 흡사하다.
반면 승리자인 오바마와 이명박은 너무나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가 마음을 열고 힐러리를 포용한 것과는 달리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를 포용하려 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 친박 진영에선 이명박 정부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인사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국회 안팎에서 이 대통령을 향해 끊임없이 ‘탕평인사’ 주문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면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의 아름다운 동행은 김무성 의원의 말처럼 ‘당위’의 문제일까?
맞다.
최소한 이 대통령의 취임 초기까지만 해도 그것은 ‘당위’의 문제였다.
또 그렇게 되는 줄 알았었다.
이 대통령 자신이 대선 당시 “대통령이 되면, 박근혜 전 대표를 국정의 소중한 동반자로 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 버린 사람이 누군가.
바로 이 대통령 자신이다.
따라서 지금은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그 가능성조차 희박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국민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동행’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한 가닥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끝내 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 경제가 너무도 암울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중산층이 붕괴되고, 서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말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경제팀이 제 아무리 ‘희망의 메시지’를 소리쳐 외쳐도 국민들의 귀에는 모든 게 거짓말 같이 들리는 상황이다.
각료라는 사람들이 도무지 믿지 못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절망이다.
이런 이명박 정부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바로 ‘신뢰’다.
지금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사실상 사망선고에 해당하는 20%대에 불과하다.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뢰’를 긴급수혈이라도 받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정권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명박 대통령 주변에는 ‘신뢰’를 수혈할만한 인물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이 없다는 말이다.
고작해야 총선에서 낙마한 이재오 전 의원의 이름이나 거론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불가피하게 박근혜 전 대표의 ‘신뢰’라도 차용을 해야 하는데, 속 좁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걱정이다.
현재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김무성 의원의 말처럼 ‘아름다운 동행’이 이뤄져야 하는데 쉽지 않다는 말이다.
특히 말로만 ‘동행’을 강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즉 실천과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동행’은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진정 박 전 대표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이 대통령은 지금까지 대립과 갈등을 부채질 해오던 모든 정책을 과감하게 버리고 국민통합으로 나아가는 정책을 새롭게 수립해야 할 것이다.
오바마 당선자처럼 통합의 리더십을 보이라는 말이다.
문제는 그게 좀처럼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남북관계조차 매끄럽게 풀어나가지 못하는 한심한 정부다.
이러니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의 ‘아름다운 동행’은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가능성마저 희박하게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는 지난 21일 부산 부경대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표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축사를 통해 “박 전 대표의 깨끗한 경선 승복이 아름다운 동행으로 이어지지 못해 아쉽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그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과 같이 어려운 시점에서 아름다운 동행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라고 말하는 가하면, “어느 누구도 박 전 대표에게 진정성을 갖고 손을 내민 적이 없다. 정말 어렵다고, 도와달라고 진심으로 얘기하는 데 뿌리칠 박근혜가 아니다”는 말로 이명박-박근혜의 동행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자신과 경선에서 치열하게 맞붙었던 힐러리 클린턴의원을 국무장관에 내정한 것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대목이다.
미국 대선 당시 오바마와 힐러리는 이명박-박근혜 경선 못지않게 사활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인 바 있다. 또 힐러리는 경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막강한 ‘클린턴 사단’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에서 박 전 대표와 상당히 닮은꼴이다.
물론 힐러리와 박근혜 모두 깨끗한 경선 승복으로 정권교체에 큰 힘이 되었다는 점도 흡사하다.
반면 승리자인 오바마와 이명박은 너무나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가 마음을 열고 힐러리를 포용한 것과는 달리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를 포용하려 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 친박 진영에선 이명박 정부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인사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국회 안팎에서 이 대통령을 향해 끊임없이 ‘탕평인사’ 주문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면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의 아름다운 동행은 김무성 의원의 말처럼 ‘당위’의 문제일까?
맞다.
최소한 이 대통령의 취임 초기까지만 해도 그것은 ‘당위’의 문제였다.
또 그렇게 되는 줄 알았었다.
이 대통령 자신이 대선 당시 “대통령이 되면, 박근혜 전 대표를 국정의 소중한 동반자로 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 버린 사람이 누군가.
바로 이 대통령 자신이다.
따라서 지금은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그 가능성조차 희박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국민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동행’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한 가닥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끝내 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 경제가 너무도 암울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중산층이 붕괴되고, 서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말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경제팀이 제 아무리 ‘희망의 메시지’를 소리쳐 외쳐도 국민들의 귀에는 모든 게 거짓말 같이 들리는 상황이다.
각료라는 사람들이 도무지 믿지 못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절망이다.
이런 이명박 정부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바로 ‘신뢰’다.
지금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사실상 사망선고에 해당하는 20%대에 불과하다.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뢰’를 긴급수혈이라도 받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정권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명박 대통령 주변에는 ‘신뢰’를 수혈할만한 인물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이 없다는 말이다.
고작해야 총선에서 낙마한 이재오 전 의원의 이름이나 거론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불가피하게 박근혜 전 대표의 ‘신뢰’라도 차용을 해야 하는데, 속 좁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걱정이다.
현재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김무성 의원의 말처럼 ‘아름다운 동행’이 이뤄져야 하는데 쉽지 않다는 말이다.
특히 말로만 ‘동행’을 강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즉 실천과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동행’은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진정 박 전 대표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이 대통령은 지금까지 대립과 갈등을 부채질 해오던 모든 정책을 과감하게 버리고 국민통합으로 나아가는 정책을 새롭게 수립해야 할 것이다.
오바마 당선자처럼 통합의 리더십을 보이라는 말이다.
문제는 그게 좀처럼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남북관계조차 매끄럽게 풀어나가지 못하는 한심한 정부다.
이러니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의 ‘아름다운 동행’은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가능성마저 희박하게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