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 민주주의를 누릴 준비가 안 된 것인가. 용산 사건 이후를 보며 이런 자괴감을 지울 수 없다. 민주주의는 곧 법치주의다. 법이 잘못 되었다면 그 법을 먼저 고쳐야 한다. 야당과 좌파들이 말하는 것처럼 세입자들의 권리가 짓밟히고 있었다면 지난 십 년간 왜 법을 고치지 않았나. 재개발관련 법들이 세입자의 생존권을 침해했다면 당연히 위헌이다. 법을 고치지 않았던 건 적어도 위헌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또 고칠 명분이 없었거나 현행 법률이 정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야당은 지독한 게으름뱅이거나 건망증 환자인가.
적어도 건망증인 것은 맞아보인다. 전철연은 김대중 정권 때도 노무현 정권 때도 있었다. 망루농성도 있었고 목숨을 잃은 세입자와 철거용역원도 있었다. 지금 전철연과 한편이 된 민주당이나 김대중 전대통령 역시 전철연에 대해서 법으로 다스렸다. 당시 한겨레신문 그리고 오마이뉴스에는 전철연을 비판하는 기사가 보인다. 그런데도 이번 용산 사건이 터지자 태도들이 싹 바뀌었다. 이건 폭력의 문제, 법치의 문제가 아닌 생존권의 문제가 된다. 그러니 건망증도 단단히 든 것이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민주당이 이번 기회에 잘 싸워 한나라당의 독재를 타도하라고 주문한다. 도대체 어느 나라 전직 대통령이 이런가. 대통령을 마구 씹어대는 지금이 독재라면 소가 웃을 일이다. 좌파와 노조 이에 호응하는 시민단체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독재인 것인가.
야당과 좌파의 눈에는 간선도로에 염산병과 신나병 골프공과 쇠구슬을 난사한 전철연은 거리로 내쫓겨 생존의 기로에 선 불쌍한 서민으로 보일 뿐이다. 그리고 이를 강제 진압한 경찰이 독재의 하수인이요 살인폭력집단으로 매도된다. 한나라당과 우파의 시각은 정반대다. 우파의 눈엔 신나병은 곧 살인무기이고 거리를 향해 신나병을 던지는 건 살인행위이다. 그런데 야당이 지금 경찰청장 내정자를 물고 늘어지는 것처럼 한나라당도 노무현 정권 당시 농민시위 때 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물어 끝내 물러나게 했다. 결국 이런 놀라운 시각의 차이가 무슨 철학의 차이도 아니요 사상의 차이도 아닌 걸 알게 된다. 입장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사람들이 죽었다. 세입자도 죽었고 전철연도 죽었고 경찰도 죽었다. 무엇보다 소중한 목숨들을 잃었으니 감성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정치적으로 보면 홍준표의원 말대로 결과책임을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회창 총재가 자진사퇴를 종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그건 다 정치적 흥정이지 원칙의 문제는 아니다. 이 참에 등장한 양비론은 참으로 해괴하다. 전철연의 폭력은 나쁘지만 경찰의 진압이 빨랐다는 것이다. 전철연의 망루농성을 더 두었다가 멀쩡한 시민들이 다쳐야만 명분이 생긴다는 것인지 망루로 가지고 올라간 신나와 염산 같은 무기들을 다 쓴 뒤에 진압했어야 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문제는 전철연과 경찰 어느 쪽에 정당성이 있느냐 아니면 둘다 정당성을 잃은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건 이번 참사의 책임을 정확히 가려야 정해진다. 우선 세입자들이 재개발을 안 시점이 입주 전인지 후인지, 철거가 언제 그들에게 고지되었는지, 철거가 이미 예고되었는데 세입자들이 터무니없는 투자를 하였다면 거기에 건물주나 행정당국의 오도는 없었는지 밝혀야 한다. 이건 세입자들이 불법투쟁으로 나간 것이 과연 그럴 수밖에 없었느냐 하는 정당성의 문제, 즉 자구행위 여부를 가리는 문제이다. 만약 세입자들이 재개발과 철거를 안 상태에서 입주한 것이라면 그들의 입지는 매우 좁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법을 앞세워 세입자들을 궁지로 내몬 건물주는 최소한 도덕적인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또 세입자들이 전철연에 가입하게 된 동기와 전철연이 세입자들에게 약속한 것이 무엇인지도 밝혀야 한다. 전철연의 투쟁이 세입자들의 '순진한' 권리찾기에 편승한 계급투쟁적인 방식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나와 염산병을 던지고 골프공과 쇠구슬을 쏘아대는 게릴라전을 기획하고 사주한 자와 이를 지휘한 자를 찾아내야 한다. 그 어떤 경우라도 살상무기를 동원한 투쟁은 그 정당성을 잃는다. 불법 폭력을 동원한 농성에는 강경진압이 당연하다. 서울의 대동맥 중 하나인 용산로를 볼모로 불붙인 신나병을 투척하는 현장을 하루라도 방치할 수는 없다. 그러니 졸속진압이니 성급했다느니 하는 말은 그저 하기 좋은 말인 것이다.
그러나 진압이 정당했다하더라도 과실(過失)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경찰이 강제진압할 때 현장에 산적한 위험물에 대해 어떤 대비책을 세웠는지는 경찰의 과실 여부를 정하는 일이다. 인명이 훼손된 참담한 결과를 회피할 방도는 과연 없었는가. 도심 한복판에서 살상무기가 쌓여 있는 농성장을 진압하는 것이 특공대를 동원한 무지막지한 방법밖에 없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신나와 염산이 흘러넘치는 현장에 컨테이너로 기습한 진압방식은 살상을 어느 정도 각오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명확히 하지 않고 세입자와 전철연의 투쟁이 테러와 같다면서 인명훼손을 가져온 진압행위를 '정당행위'로 면책한다면 공권력의 정당성도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전부 규명되지 않으면 이번 사태의 책임을 어느 쪽에 지운다 해도 다른 쪽은 결코 승복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라도 살상무기를 동원한 투쟁은 허용되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그걸 허용한다면 더이상 이땅에 법치주의는 없다. 야당과 좌파는 경찰을 탄핵하기 전에 그런 폭력을 휘두른 전철연을 먼저 나무라야 한다. 그 반대편의 대통령과 여당이 할 일은 세입자들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다. 법과 원칙만 앞세워 소수자 소외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을 게을리하는 대통령은 가진 자들만의 대통령일 뿐이다. 그건 더큰 불행의 씨앗이 된다.
적어도 건망증인 것은 맞아보인다. 전철연은 김대중 정권 때도 노무현 정권 때도 있었다. 망루농성도 있었고 목숨을 잃은 세입자와 철거용역원도 있었다. 지금 전철연과 한편이 된 민주당이나 김대중 전대통령 역시 전철연에 대해서 법으로 다스렸다. 당시 한겨레신문 그리고 오마이뉴스에는 전철연을 비판하는 기사가 보인다. 그런데도 이번 용산 사건이 터지자 태도들이 싹 바뀌었다. 이건 폭력의 문제, 법치의 문제가 아닌 생존권의 문제가 된다. 그러니 건망증도 단단히 든 것이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민주당이 이번 기회에 잘 싸워 한나라당의 독재를 타도하라고 주문한다. 도대체 어느 나라 전직 대통령이 이런가. 대통령을 마구 씹어대는 지금이 독재라면 소가 웃을 일이다. 좌파와 노조 이에 호응하는 시민단체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독재인 것인가.
야당과 좌파의 눈에는 간선도로에 염산병과 신나병 골프공과 쇠구슬을 난사한 전철연은 거리로 내쫓겨 생존의 기로에 선 불쌍한 서민으로 보일 뿐이다. 그리고 이를 강제 진압한 경찰이 독재의 하수인이요 살인폭력집단으로 매도된다. 한나라당과 우파의 시각은 정반대다. 우파의 눈엔 신나병은 곧 살인무기이고 거리를 향해 신나병을 던지는 건 살인행위이다. 그런데 야당이 지금 경찰청장 내정자를 물고 늘어지는 것처럼 한나라당도 노무현 정권 당시 농민시위 때 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물어 끝내 물러나게 했다. 결국 이런 놀라운 시각의 차이가 무슨 철학의 차이도 아니요 사상의 차이도 아닌 걸 알게 된다. 입장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사람들이 죽었다. 세입자도 죽었고 전철연도 죽었고 경찰도 죽었다. 무엇보다 소중한 목숨들을 잃었으니 감성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정치적으로 보면 홍준표의원 말대로 결과책임을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회창 총재가 자진사퇴를 종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그건 다 정치적 흥정이지 원칙의 문제는 아니다. 이 참에 등장한 양비론은 참으로 해괴하다. 전철연의 폭력은 나쁘지만 경찰의 진압이 빨랐다는 것이다. 전철연의 망루농성을 더 두었다가 멀쩡한 시민들이 다쳐야만 명분이 생긴다는 것인지 망루로 가지고 올라간 신나와 염산 같은 무기들을 다 쓴 뒤에 진압했어야 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문제는 전철연과 경찰 어느 쪽에 정당성이 있느냐 아니면 둘다 정당성을 잃은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건 이번 참사의 책임을 정확히 가려야 정해진다. 우선 세입자들이 재개발을 안 시점이 입주 전인지 후인지, 철거가 언제 그들에게 고지되었는지, 철거가 이미 예고되었는데 세입자들이 터무니없는 투자를 하였다면 거기에 건물주나 행정당국의 오도는 없었는지 밝혀야 한다. 이건 세입자들이 불법투쟁으로 나간 것이 과연 그럴 수밖에 없었느냐 하는 정당성의 문제, 즉 자구행위 여부를 가리는 문제이다. 만약 세입자들이 재개발과 철거를 안 상태에서 입주한 것이라면 그들의 입지는 매우 좁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법을 앞세워 세입자들을 궁지로 내몬 건물주는 최소한 도덕적인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또 세입자들이 전철연에 가입하게 된 동기와 전철연이 세입자들에게 약속한 것이 무엇인지도 밝혀야 한다. 전철연의 투쟁이 세입자들의 '순진한' 권리찾기에 편승한 계급투쟁적인 방식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나와 염산병을 던지고 골프공과 쇠구슬을 쏘아대는 게릴라전을 기획하고 사주한 자와 이를 지휘한 자를 찾아내야 한다. 그 어떤 경우라도 살상무기를 동원한 투쟁은 그 정당성을 잃는다. 불법 폭력을 동원한 농성에는 강경진압이 당연하다. 서울의 대동맥 중 하나인 용산로를 볼모로 불붙인 신나병을 투척하는 현장을 하루라도 방치할 수는 없다. 그러니 졸속진압이니 성급했다느니 하는 말은 그저 하기 좋은 말인 것이다.
그러나 진압이 정당했다하더라도 과실(過失)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경찰이 강제진압할 때 현장에 산적한 위험물에 대해 어떤 대비책을 세웠는지는 경찰의 과실 여부를 정하는 일이다. 인명이 훼손된 참담한 결과를 회피할 방도는 과연 없었는가. 도심 한복판에서 살상무기가 쌓여 있는 농성장을 진압하는 것이 특공대를 동원한 무지막지한 방법밖에 없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신나와 염산이 흘러넘치는 현장에 컨테이너로 기습한 진압방식은 살상을 어느 정도 각오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명확히 하지 않고 세입자와 전철연의 투쟁이 테러와 같다면서 인명훼손을 가져온 진압행위를 '정당행위'로 면책한다면 공권력의 정당성도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전부 규명되지 않으면 이번 사태의 책임을 어느 쪽에 지운다 해도 다른 쪽은 결코 승복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라도 살상무기를 동원한 투쟁은 허용되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그걸 허용한다면 더이상 이땅에 법치주의는 없다. 야당과 좌파는 경찰을 탄핵하기 전에 그런 폭력을 휘두른 전철연을 먼저 나무라야 한다. 그 반대편의 대통령과 여당이 할 일은 세입자들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다. 법과 원칙만 앞세워 소수자 소외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을 게을리하는 대통령은 가진 자들만의 대통령일 뿐이다. 그건 더큰 불행의 씨앗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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