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 처리와 관련, 여·야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직권상정에 의한 강행처리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사실상 여론독과점을 합법화시켜 줄 수 있는 언론관계법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하고, 적어도 발전적인 미디어법으로 개정이 되기 위해서는 여·야간 충분한 논의를 거쳤어야 옳았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국민의 뜻을 존중한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판단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다.
사실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는 미디어법은 당장 시급한 민생현안 법안이 아니다.
따라서 굳이 6월에 강행처리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즉 현 상황에서는 국민의 뜻에 따라 미디어법 직권상정 강행처리를 포기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라는 말이다.
더구나 미디어법이라는 큰 틀 안에는 이른바 ‘사이버 모욕죄’라고 불리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포함돼 있는 상태다.
즉 미디어법에는 네티즌의 입을 틀어막고,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치명적인 독소가 숨겨져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사이버모욕죄가 미디어법에 포함됐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신문방송 겸영 등 워낙 첨예한 사안이 포함돼 있다 보니 세인의 관심은 온통 신문법과 방송법에만 쏠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사이버모욕죄는 그동안 줄곧 우리 사회의 논란이 돼 왔던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고(故) 최진실씨의 자살 사건을 계기로 도입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사이버모욕죄가 미디어관련법에 파묻혀 제대로 논의조차 해보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통과된다면, 그게 어디 말이나 될법한 일인가.
어쩌면 국민들 대다수에게 적용되는 사이버모욕죄가 신문법과 방송법보다 더 큰 사안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에 대해서는 제대로 토론조차 못하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지금 6월 임시국회의 최대 쟁점인 미디어법 처리와 관련, 국민 10명 중 6명은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미디어법 개정에 반대하며, 10명 중 8명가량은 충분한 여론수렴을 위해 처리를 연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실제 <경향신문>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와 공동으로 지난 13일 전국의 성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전화로 실시한 정기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7%포인트) 결과, 응답자의 60.8%가 신문과 대기업의 방송 소유 허용을 골자로 하는 미디어법 개정에 ‘반대한다’고 대답한 반면 ‘찬성한다’는 답변은 33.2%에 불과했다.
특히 한나라당의 직권상정을 통한 표결처리 추진에 대해선 응답자의 78.9%가 ‘충분한 여론수렴을 위해 처리를 늦춰야 한다’고 답했다. ‘야당이 타협을 거부해 불가피하다’는 응답은 18.5%에 그쳤다.
그런데 만일 미디어법에 사이버 모욕죄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정확하게 알리고 미디어법 찬반여부를 묻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반대 의견이 더 늘어날 것은 불 보듯 빤하다.
그렇다면 법안을 아예 용도폐기하거나, 아니면 여야간 충분히 협의한 후에 제대로 된 새로운 안을 내놓게 상식이다.
그런데도 친이(親李,친 이명박) 세력에 의해 점령당한 한나라당은 이를 포기하려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 의사를 밝힌 박 전 대표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마구 쏘아대고 있다.
심지어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직권상정 강행처리 반대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한나라당을 탈당하라”거나 “친박연대에 합류하라”는 식의 막말을 하는가하면, “좌파”운운하는 등 정신 이상 여부를 의심케 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거듭 말하지만 미디어법은 이렇게 여야가 죽기 살기로 싸우면서까지 통과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법안이다.
오죽하면 김형오 국회의장이 "이 법은 민생과 직결된 것도 아니고, 이것보다 더 중요한 법도 많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겠는가.
이를 보다 못해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과 민주당 안을 절충해 한 회사의 시장점유율을 매체합산 30%로 제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매체합산은 신문, 통신, 잡지, 인터넷 등 언론사가 방송에 진출하려 할 때 그 영향력을 TV 기준으로 환산한 뒤, 이를 TV의 시청률과 더해 30%가 넘으면 진입을 불허하는 사전 규제방식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이 같은 박 전 대표의 제안을 일방적으로 묵살해 버리고 말았다.
실제 이날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 최종 수정안 마련이 임박한 가운데 박근혜 전 대표가 제안한 '한 회사 매체합산 시장점유율 30% 이내 조건'이 사실상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끝까지 힘으로 밀어붙여서라도 한나라당 친이 세력의 뜻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강행처리할 경우, 그 후폭풍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거세게 몰아닥칠 것이다.
어쩌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간판을 단 후보들에게 가혹한 심판을 내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2012년 총선까지 그 여파가 미칠 수도 있다.
한마디로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하는 날이 곧 ‘한나라당 사망신고서’를 작성하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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