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두나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문화 / 차재호 / 2009-10-12 20: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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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고레에다 감독 “‘공기인형’ 캐스팅 전 부터 팬
    “촬영현장에 있는 세살짜리 어린이부터 일흔다섯살 할아버지까지 모두가 사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제일 좋아했습니다.”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74)의 말이 아니다.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47·是枝裕和)가 생각하는 한국배우 배두나(30의 존재다. 스스로를 “배두나의 팬”이라고 밝히는 고레에다 감독은 “혼토니 스바라시”란 감탄사로 배두나를 이야기했다.

    고레에다는 영화 ‘공기인형’을 들고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왔다. 고레에다란 이름만으로도 화제성은 충분해 보인다. 배두나를 캐스팅, 칸 국제영화제에 진출한 그에게 이번 방한의 의미는 각별하다.

    배두나를 캐스팅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감독은 “팬이었다”는 말로 모든 것을 정리했다. “고양이를 부탁해, 플란다스의 개,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복수는 나의 것, 튜브….” 배두나 출연작들을 거의 섭렵했다는 감독은 팬이 갖춰야 할 기본 덕목 아니겠냐는 듯 “팬이었다니까요”라며 웃는다.

    고레에다는 “캐스팅을 염두에 두고 알아보기 위해 배두나의 작품을 봤던 것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정말 팬이었다. 아, 이런 여배우와 함께 작업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고레에다라도 배두나를 캐스팅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일본 영화에서 함께 할 만한 작품이 없었다”는 고백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영화가 바로 공기인형이다. ‘인형이 말을 하네’ 정도로만 일어를 구사하면 되는 역할로 배두나를 낙점했다.

    “인형이긴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서 말을 배우고 사람 흉내를 내는 과정을 그리기 때문에 처음부터 일어를 잘 할 필요가 없었다”는 배역 설명이다. “이 캐릭터라면 부탁할 수 있겠다 싶었다.”
    공기인형이 갑자기 생명을 얻으면서 걷고 말하게 되는 이 영화에서 배두나는 곧 인형이다. 단발에 동그랗게 뜬 눈 덕에 정말 인형처럼도 보인다. 일본의 거리를 활보하며 신기한 듯 물건을 만지작거리는 인형 배두나는 일본인이 아니라서 더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 인형, 범상치 않다. 섹스를 위해 만들어진 사람크기 공기인형이 배두나의 몫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던 성인용품이다. 인형이라기보다 마네킹에 가까운 이 물건은 일본에서 구할 수 있다는 소문만 파다했다. 촉감까지도 사람과 유사한 실리콘 재질의 인형도 있다.

    상당히 변태적인 존재를 예술적으로 재해석해내는 감독의 능력이 돋보인다. 삶과 죽음, 상실의 메시지를 꽤 경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죽음이란 존재를 공기인형으로 투영하는 감독의 영화는 역시나 비극적이다.




    “배두나, 매력적이고 퍼펙트한 배우”

    고레에다 감독 일문일답


    -배두나를 보면서 인형 같다는 인상을 받았나.

    ▲그렇지 않았다. 그보다는 굉장히 섬세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말을 할 때 호흡을 잘 알고 있고, 상대와 대사를 주고 받을 때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코미디 센스다. 사람을 웃기는 데만 코미디 센스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배두나는 어떤 배우인가.

    ▲퍼펙트했다. 프로페셔널했고. 차밍했다. 현장에 있는 세살짜리 어린이부터 75세 할아버지까지 모두가 사랑했다. 그 중에서도 제가 제일 좋아했다.


    -칸이 좋아하는 감독인 것 같다.

    ▲그렇게 칸에서 좋아하는 것 같진 않은데…. 이런 건 칸 영화제에서 좋아하겠지 이런 생각으로 찍는 건 아니니까. 작년 같은 경우는 ‘걸어도 걸어도’란 작품이 굉장히 일본적인 가족을 만들어서 에이전트로부터 지나치게 내수용이란 말을 들었다. 칸 출품이 무리일 거라 들었는데. 그런 얘기 듣는다고 실망하지도 않았고, 만들고 싶은 걸 만들었는데 안 불러주면 안 부르는 쪽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프랑스 현지에서는 걸어도걸어도가 내 영화들 가운데 가장 히트를 했다. 어떤 게 널리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고 전달될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래서 어렵기도 하고 재미있는 것 같다.


    -칸 영화제는 어땠나.

    ▲칸 영화제 갔더니 행사장부터 동네까지 올해 칸에 진출한 한국영화 10편의 포스터가 여기 저기 붙어 있더라. 국가적으로 영화 지원이 일본보다 잘 돼 있었던 것 같아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감독 개개인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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