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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근감독, 첫장편 ‘혜화, 동’ 오는 17일 선봬
유기견 보살피며 상처 치유하는 이야기 그려
유기견 보살피며 상처 치유하는 이야기 그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과정이 이어진다. 소재를 골라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투자 지원을 받고, 촬영과 편집 등을 거쳐 세상의 빛을 보는 복잡하고 어려운 단계들이다.
어느 영화인은 임신과 출산에 비유하기도 했다. 정도와 방법의 차이일뿐 상업영화나 독립·예술영화 모두 비슷하다. 첫 장편 ‘혜화, 동’을 내놓은 민용근(35) 감독도 마찬가지다.
2004년 KBS 1TV ‘현장르포 제3지대’ 조연출 당시, 짧지만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긴 사연 하나가 ‘혜화, 동’의 출발점이다. “무척 추운 겨울, 외딴 변두리 마을에서 탈장된 개를 쫓아다니며 도와주려는 여자분이 있었어요. 도망치는 개를 향해 도와주려고 하는 마음을 몰라준다며 우시더라고요.”
다큐멘터리 혹은 교양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 속 인물은 ‘혜화, 동’에 상처입은 유기견을 보살피는 혜화(유다인)로 투영됐다. 여기에 청소년들의 풋사랑과 미혼모 등을 덧씌워나갔다.
18세 동갑내기 고등학생 혜화와 한수(유연석)는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한수는 임신한 혜화를 놔두고 떠난다. 아기마저 잃고 홀로 남겨진 혜화는 유기견을 돌보며 동물병원 미용사로 사회에 적응해 나간다. 그런데 5년이 지나 다시 나타난 한수는 자신들의 아이가 살아있다고 한다. 혜화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혜화가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됐을 때를 먼저 생각했어요. 5년 후면 우리나라 나이로 여섯살이잖아요. 연년생 조카들이 있는데 다섯살은 너무 적은 것 같고, 일곱살은 좀 많은 것 같더라고요. 또 혜화가 어느 정도 과거를 잊고 적응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5년이 적당하다 싶었어요.”
그렇지만 민 감독은 “혜화가 과거를 완전히 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인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겉으로는 잊고 있는 듯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지는 않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에 과거가 남아 있어요. 작게는 그녀가 손톱을 모은 것이라든가, 개를 향해 보이는 애정이 그런 것이죠.”
그래서인지 등장인물과 개, 소품 하나하나,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을 나누는 매니큐어 칠한 손톱 등 표현들이 정밀하다. 아이를 향한 모성(부성) 가득한 분위기의 영화는 감독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도 하다. 약 5년간 방송 다큐멘터리 조연출·PD로 일하며 쌓은 내공이 감지된다.
‘병원24시’를 보고 고통에서 피어나는 희망에 감동을 받았고, 그 프로그램에서 일하고 싶었다. 한양대 영화과 95학번인 그는 1998년 졸업영화를 찍고 늦은 나이에 군대를 다녀온 뒤 조연출과 PD로 현장을 뛰었다. ‘병원24시’는 아니었지만 ‘현장르포 제3지대’ 팀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능력을 키웠다.
그는 “영화 다큐멘터리는 긴 시간을 갖고 깊이있게 담아내지만 6주에 한 텀씩 돌아오는 방송은 밀착해서 촬영을 하는 기간이 2~3주”라며 “깊게 들어가진 못하지만 짧은 시간에 다양한 분들을 만나면 공통점이 생긴다. 나중에 편집하다가 ‘이 사람의 마음이 이거였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전했다.
“모든 소재들을 미리 배치하는 것은 어려운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에서 처음에는 사소하다고 생각한 요소들이 뒤에서 우연히 터질 때가 있어요. ‘혜화, 동’은 퇴고하는 과정에서 정교하게 다듬고,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노력했어요. 써나가다 보면 각각의 요소들이 저절로 매치가 되기도 했죠.”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마음, 그리고 혼란스러워하는 마음을 연출하는 것이 미혼이자 경험없는 감독에게 어렵지는 않았을까. “한수는 건강하게 극복하지 못하는데 혜화는 건강하게 극복하는 모습이 있어요. 사실 여자가 약해보이지만 오히려 강한 것 같아요. 연애경험에서 여자가 강하다는 인식이 있기도 하고, 서른살이 되기 전까지 부모님과 같이 살 때 어머님을 보고 느낀 부분도 담겨 있고요.”
이런 면에서 배우 유다인(27)은 딱 ‘혜화’였다. 얼굴이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지만 매력적인 눈 때문에 들여다보면 빠지고 마는 담백한 아름다움이었다. 유연석(27)도 “단 3초만”에 감독을 붙들었다. 영화 ‘호야’ 촬영을 하고 있던 그를 위해 모든 스태프에 양해를 구하고 한 달간 촬영을 미루기까지 했다.
기억의 편린으로 시작한 시나리오는 제작 지원을 받지 못하다 서울영상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 제작지원작이 됐다. ‘워낭소리’의 콤비 고영재(42) PD와 이충렬(45) 감독도 도움을 줬다.
대학시절 연출 습작들과 단편 ‘도둑소년’, 옴니버스 영화 ‘원 나잇 스탠드’를 통해 연출감각을 익힌 감독은 그렇게 자신의 장점과 열정을 한껏 뽐낼 수 있었다. “20개관 이상에서 상영된다”며 좋아하는 민 감독은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이다. 또 “기회조차 얻기 힘든데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게 너무 행복한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한다.
‘혜화, 동’의 결말은 허무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뒤통수를 때린다. 민 감독은 “몇 차례 시나리오 수정을 했는데 3분의 2 정도 지점에서 결론을 내렸다”며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에게 주인공의 마음이 여운을 남겼으면 한다”고 바랐다.
“아무리 힘들어도, 둘 사이에 상처가 있어도 옆에 같이 있어주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요…”라고 말줄임표를 사용한 감독의 메시지처럼 영화의 여운은 희망과 비관을 다시 생각케 만든다.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부문 감독상을 수상했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코닥상, 독립스타상(배우부문)을 받은 작품이다. 2월1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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