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가의 죽음, 영화사만의 책임인가

    칼럼 / 안은영 / 2011-02-10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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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 문화평론가)
    한 학회모임에 갔을 때다. 일선 교육현장에서 진학상담을 맡은 고교교사들과 방담을 나눌수 있었다. 그런데 교사 가운데 한 명이 요즘 연예인이 되겠다고 공부 같은 것은 필요 없다며 진학을 포기하는 학생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옆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어느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연예인 되는 게 서울대학교 법대 들어가서 사법고시 합격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말해주세요.”
    흔히 잘 만하면 큰 인기를 끄는 작품을 만들거나 스타가 되는 것은 쉬워보인다. 그런데 확률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행정고시의 경우에도 매년 300여명을 선발하지만, 스타는 1년에 몇 명 배출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은 문화예술산업의 특징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뼈를 깎고 살을 태우며 피를 말리는 각고의 노력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이러한 점들은 고급예술이라 불리는 영역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즉 그것은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크지만 그만큼 큰 성공을 바랄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각고의 노력을 해도 왜 돌아오는 것은 가난과 질병뿐일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 분야가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크기때문일까. 제작사나 기획사에서 주어야할 대가를 착복했기 때문일까. 그러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제작사와 기획사의 도의적인 책임도 있지만 제도적 시스템의 미비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보험이나 기금제도와 같은 예술가 복지시스템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반드시 적절한 범위내에서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그런데 다시금 부각되어야 할 점은 예술 아니 예술로 간주하는 의식 나아가 지금의 예술교육이 어떠한 일을 낳게 되는가이다. 순수한 예술은 사실 상업성과 거리가 멀다. 적어도 순수예술이라는 단어에 집중해 볼 때 말이다. 대부분의 예술관련 교육기관이나 학과에서는 학생들에게 상업성의 예술을 가르치지 않는다. 비상업적인 예술론을 가르친다. 정작 그들의 생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아니 그들이 학교에서 배출되어 들어가는 곳이 시장이라는 점을 주지시키지도 않는다. 많은 경우 시장에 들어가서 비시장적 행태를 하도록 주입된다. 그래야 훌륭한 아티스트라고 한다.
    그러나 곧 사회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초년병들은 도덕적인 죄의식을 느껴야 한다. 순수한 예술 활동을 하지 않고 밥벌이를 위해 다른 일을 하게 되니 말이다. 상업적인 예술과 거리를 둘 수 없을 만큼 현실은 절박하기 때문이다. 정말 순수한 열정을 지닌 예술학도들은 예술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굶주림과 질병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한 고통스런 작업 속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유명하다는 영화제에서 시상이 이루어지면서 명예의 타이틀을 받는다.
    하지만 그러한 타이틀을 거머쥐어도 현실은 여전히 배고프고 춥다. 예술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정부가 그들을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날 수도 있다. 문화대통령이라도 나와서 그러한 정책을 추진한다면 나을지 모른다.
    한예종은 한국의 문화예술 천재들을 모아 교육하는 기관이다. 예술정신을 엄밀하고 정치(精緻)하게 가르친다. 하지만 최고의 교육기관은 시장의 기본적인 논리마저 외면한다. 어디 한예종만일까. 수많은 학과만이 아니라 예술을 논하는 매체들도 마찬가지다. 일반 사람들이 원하는 작품과는 상관이 없으며 심지어 그것을 매우 가볍게 여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는 이는 시장에서 도태된다. 말이 도태이지 생존의 위협이다.
    그들은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찾을 때까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말도 듣고 학교를 졸업한다. 이른바 예술이라는 것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문화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맞춘다. 대중들이 찾지 않아도 고통을 감내하며 예술 활동에 매진하는 것은 칭송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악순환의 늪에 빠진다. 대중이 찾지 않은 예술을 하다보면 더욱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스트레스는 몸을 해친다. 약해지는 몸을 지지할 영양분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한다. 일은 더욱 할 수가 없고 수입은 줄어든다.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노동을 해야하고 목숨을 해치게 된다.
    신화도 성립하는 환타지가 있다. 감내하는 사람은 마침내 영웅이 되고 신화속의 주인공이 된다. 한국의 예술사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그러한 고군분투의 예술 역정을 보인 사람들의 작품은 사후에 큐레이터나 경매사들을 거치면서 고가가 매겨지기도 한다. 만약 고흐의 고통스런 삶이 없었다면 그의 작품이 그렇게 고가가 되었을지 의문이다.
    문제는 무엇인가. 상업과 비상업, 순수와 비순수, 고급과 대중예술의 경계는 없고, 그러한 분별은 진정한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서 타당하지도 않다. 예컨대 수많은 상을 받은 능력 있는 창작자이어도 기본적인 논리를 외면하면 그 상들이 보호해주지는 못한다. 상은 밥이 아니다. 상을 주는 사람이 밥을 만들지 않는다. 밥은 대중이 만든다. 그들에게서 밥이 나온다. 시장은 인류역사 이래로 존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왕조시대에도 있었고, 귀족정일 때도 있었다.
    다만,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요인이 자본이 된 지 몇 백년이 안 되었을 뿐이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자본의 시장이 중심이다. 그것도 정확한 말은 아니다. 그 자본을 축적시키는 이들은 사람들의 '기호'이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은 예술세계에도 예외가 없다. 수요자는 시상식의 심사위원에 한정될 수 없다. 그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관계없이 창작 행위를 유지하려면, 스피노자처럼 안경렌즈를 다듬는 일을 하면서 밤에 자신의 작품을 써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스피노자와 같은 천재도 아니다. 예술만을 밥으로 삼을 때, 순수 예술은 더 위험해진다.
    지금 시장의 중심은 대중에게 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예술의 방법들, 높은 평가를 받은 내용들이 실질적으로 현실에서 외면 받는 것이 다반사이니 심각한 일이다. 수요를 배반하며 만들어낸 콘텐츠로 밥을 만들 수는 없다. 인간에게 밥은 최우선이어야 하며, 예술의 이름으로 그것이 부정되는 것은 수많은 죽음을 잉태하는 것이다. 순수한 예술에 대한 열정과 매진 자체를 폄하할 수는 없지만 그것으로 밥을 먹고 살 수 없다. 시장과 밥과 관련 없이 창작을 해야 한다. 하지만 대중과 호흡과 맞추는 작업은 밥을 해결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는 사회적 역할과 의무에 복무하는 것이기도 하다. 엘리트주의 문화예술 지상주의의 예술학교는 혁파되어야 한다. 앞서는 가되 이시대의 사람들의 눈높이와 마음에 철저하게 서비스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예술 활동에 대한 지지시스템은 또다른 문제점을 낳는다. 자칫 또다른 죽음을 낳을수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만든다.
    앞의 이러한 맥락들에 비추어 비극적 상황에 이를 때까지 밥과 건강은 방치되었는가 싶다. 그것을 해결할 작품들이었을까. 이번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 영화제작사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일까. 예술정신, 예술교육기관은 산정묘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에 대한 관점의 전환은 항상 필요하다. 당대의 수요를 반영하지 않고 반대중적인 것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강변할 수만은 없다. 예술사에서 족적을 남긴 작가와 작품들은 오히려 현실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그 수요에 부응한 작품들이다.
    하지만 교육기관이 시장의 원리를 외면하듯 문화산업 안의 기업도 시장의 원리를 해쳐오기는 마찬가지였다. 예술을 돈과 결부시키지 않으려는 예술가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그들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지불해오지 않은 반시장적 관행을 공고히 하면서 수익을 노려왔기 때문이다. 관행은 무섭다.
    관행에 무감각해져 시장의 원리들을 지키지 않는 이들은 실제 시장에서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이 정책 당국이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시장의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기업의 역할이나 책임을 다하지 않는 콘텐츠 회사들에 표준적인 체계들이 하루 빨리 만들어지고 집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시장의 원리는 물론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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