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이명박 대통령과 보수 진영의 통일론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2011년 통일부 업무보고도 정책의 핵심은 단연 통일이었다. 남북관계 파탄과 전쟁위기라는 비정상적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통일준비를 언급하는 걸 보면 보수 진영의 통일론은 북한 붕괴후 흡수통일이 틀림없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은 연평도 포격 이후 북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고 무대책의 자포자기 심정을 자인했고 곧이어 북한의 붕괴를 염두에 둔 발언이 쏟아졌다. 통일이 가까이 오고 있다거나 통일이 멀지 않았다는 대통령 발언은 지금 국면에서 화해와 협력에 의한 민족공동체 형성과정으로서의 통일이 결코 아니다. 오직 급변사태에 의한 흡수통일이라는 ‘한 방’ 해결책만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명박 대통령이이 바라마지 않는 흡수통일은 지금 당장 가능하지 않다. 현실과 동떨어진 착각일 뿐이다. 제재하고 압박하면 북한 스스로 이내 붕괴할 것이라는 보수의 오랜 희망은 이미 입증되었다시피 결코 가능하지 않다. 독일통일을 보면서 김영삼 정부는 북도 곧 망하고 흡수될 것이라는 주관적 기대만을 내세워 최악의 남북관계로 일관했고 결국은 ‘잃어버린 5년’만 허송하고 말았다. 경수로 제공 이전에 북이 망할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으로 북한과의 합의 이행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미국 정부도 결국 제네바 합의 무산과 2차 북핵위기라는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북한붕괴라는 오랜 환상이 결코 실현되지 않았음에도 우리의 보수는 여전히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망해야 한다는 근본주의적 신념이 아마도 곧 망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착시된 탓일 거다. 이른 시일 안에 북이 망하지 않을 가장 확실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중국의 존재이다. 소련의 패망과 붕괴가 동구 붕괴를 가져온 것에 비춰본다면 G2로 급부상하는 중국이 있는 한 북한 붕괴를 기대하는 것은 정말 비현실적인 착각일 뿐이다.
우리 보수는 또한 햇볕정책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 빠져 있다. 햇볕을 주장하면 모두 친북좌파로 규정된다. 즉 북에 대한 화해협력은 바로 김정일 체제를 지지 옹호하는 것이고 따라서 북한체제의 존속을 전제한 현상 유지론으로 매도된다. 필자도 친북인명사전 100인에 수록되고 최근에는 토론회에 참석한 공식패널에게서 종북세력으로 비난받아야 했다. TV 토론 후 댓글에서 평양으로 가라는 이야기는 이제 식상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햇볕정책은 결코 친북정책이 아니다. 햇볕정책은 북이 예뻐서 북이 좋아서 화해협력을 하는 게 아니라 지구상 가장 다루기 힘든 애물단지 북한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한 불가피한 현실적 접근이다. 북이 밉다고 증오와 오기에 사로잡혀 남북관계 중단과 대북 제재로 일관하는 보수의 북한다루기가 실패였음은 이미 드러나지 않았는가?
오히려 진보진영의 햇볕정책은 일관되고 꾸준한 화해협력으로 한반도 평화를 이루면서 장기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냄으로써 우리가 주도하는 통일을 이루려는 전략이다. 따라서 종국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입각한 통일을 상정하는 것이고 내용적 결과적으로 흡수통일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독일통일이 장벽붕괴와 흡수통일이라는 사건만으로 설명된다면 그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실제는 20년 동안 여야 공히 추진했던 화해협력정책의 결과가 평화적 흡수통일과 결합되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햇볕정책이 일관된 화해협력과 북한변화 그리고 우리 주도의 통일이라는 가장 냉정하고 현실적인 통일구상을 공유하고 있음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를 모른 채 화해협력 주장과 미래의 흡수통일 가능성을 마치 서로 다른 진보인양 편가르고 낙인찍는 것은 그야말로 무식의 소치일 뿐이다. 필자는 어느 신문이 규정한 ‘고급 좌파’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햇볕정책의 성공을 바라는 현실주의자일 뿐이다. 보수 진영은 북한붕괴 임박이라는 착각과 햇볕론이 친북세력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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