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좌파’와 ‘리무진 리버럴’

    칼럼 / 안은영 / 2011-03-28 12: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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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나는 이명박 정권이 끝나거나 무너질 때까지는 ‘진보’니 ‘좌파’니 하는 담론은 하지 않으려 했는데, 중앙일보가 세련되게 시작한 ‘강남 좌파’ 담론(3월 9일자 기사)에 이어 조국 교수를 ‘단무과’식으로 치고받은 동아일보 칼럼이 나와서 몇 글자 적어 보려 한다.

    나는 조국 교수가 자신이 “‘강남 좌파’임을 자임한다”고 한 부분이 진심인지, 아니면 중앙일보의 과장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중앙일보 기사대로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와 조 교수가 하고 있는 ‘진보집권플랜’ 북 콘서트가 ‘강남 좌파 설명회’라면 한나라당이 웃을 일이다. (그래서 나는 중앙일보 기사가 ‘세련됐다’고 본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강남 3구가 한나라당을 ‘묻지마 지지’하는 현상은 세계적으로 드문 현상이다. 미국에선 부유층이 많이 사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가 민주당의 아성(牙城)이다. 반면 저소득 계층이 사는 농촌이 오히려 공화당의 지지기반이 되어 있다. 뉴욕 맨해튼에 사는 사람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센트럴 파크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비좁고 낡았지만 월세가 턱없이 비싼 임차 아파트에 산다. 죽어서 나가기 전에는 임차인을 내 보낼 수 없고 월세도 마음대로 올릴 수 없게 한 ‘진보 정책’이 거기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의 이해를 반영하기 때문에 이들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와 CBS 방송의 기자들도 이렇게 월세로 살고 있으니 이들이 쓰는 기사는 항상 임차인의 시각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근래에는 재개발에 힘입어 맨해튼에도 우리 식(式)의 고가 분양 아파트가 서서히 늘고 있다. 이런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월세 인상을 억제해 주겠다는 민주당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 이들의 관심은 재산세이지 월세가 아니라서 감세를 내건 공화당을 지지하기 마련이다. 도심 재개발로 그런 현상이 워싱턴과 보스턴 등에도 서서히 생기고 있어 대도시가 민주당의 진보 정책을 계속 지지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전월세 사는 사람이 아닌, 자기 집을 갖고 있는 강남 사람들이 진보 정책을 지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더구나 노무현 정권 때 종부세 폭탄을 맞은 악몽이 있는 사람들은 두 눈에 흙이 들어가는 날까지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강남에서 나오는 민주당 표는 대개 ‘자기 집 없는 강남 사람들’일 것이다.

    ‘강남 좌파’ 담론의 핵심은 “부유한 사람들이 진보를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함일 것이다. 사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보수가 되고 빈곤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진보가 된다는 법은 없다. 부유한 가정에서 부족함이 없이 성장한 사람이 진보 좌파가 되는 경우가 많음은 미국이나 서유럽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익숙한 현상이다. 일제시대에 부유한 지주계층의 자식들이 서울에 올라와서 그 좋은 경성제대나 전문학교 다니다가 데까르트니 엥겔스니 하는 것을 읽고 사회주의자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산주의자가 되기도 했다. (나의 외가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외가 쪽 사위 중 가장 부유한 지주 집안 출신이고 가장 좋은 학교 나오고 가장 좋은 직장- 서울대 교수 -을 갖고 있던 사위가 6-25 전쟁시 인민군을 따라 북으로 넘어가서 김일성 대학 교수를 지냈다 한다. 가장 빈곤한 집안 출신 사위는 다름 아닌 나의 아버지였다.) 해방 후에, 또 6-25 전쟁 와중에 월북한 좌파 지식인들은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니 그들은 세상을 너무 몰랐던 것이다.

    월북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원래 지식인은 좌파 지향적인 것이 정상이다. 다만 우리나라에는 반공 이데오르기가 너무 오랫동안 강하게 지속돼서 그런 현상이 표면으로 나오지 못했을 뿐이다. 진보 좌파 지식인과 노조 운동이 진보정치의 두 기둥인 것은 어느 나라이든 똑같다. 하지만 진보 좌파에 ‘강남’이란 수식어가 붙으면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되고 만다. ‘강남 좌파’에 해당하는 미국의 ‘리무진 리버럴’이란 용어는 ‘비아냥’ 또는 ‘욕’이기 때문이다. 말로만 평등, 정의, 빈곤 해결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부자 동네에서 호의호식하고 살고 자식들은 비싼 사립학교 보내는 진보 정치인을 ‘리무진 리버럴’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리버럴 리무진’을 자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부자는 ‘진보’를 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
    한나라당을 ‘강부자당’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부자가 대통령이 되고 싶으면 '진보'를 해야 한다”하면 그게 무슨 엉뚱한 이야기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부자는 결코 보수 정권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부자가 대통령을 하려면 ‘진보’ 정당을 선택해야 한다. (이 점에서 나는 정몽준 의원이 정당을 잘못 선택하는 우(愚)를 범했다고 본다.)
    부자 가문 출신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존 F. 케네디가 공화당을 택했더라면 그들은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현명하게도 민주당을 택해서 대통령이 됐다. 그렇다면 역시 부자 가문 출신인 조지 H. W. 부시와 조지 W. 부시 부자(父子)는 어떻게 해서 대통령이 됐냐고 물을 것이다. 조지 H. W. 부시의 아버지 스콧 부시는 코넷티컷 공화당원으로 상원의원을 지냈는데, 처가인 워커 가문은 대단한 금융재벌이다. (부시 부자의 미들 이니셜 ‘W’는 ‘워커’이다.) 그런데 조지 H. W. 부시는 석유사업을 하기 위해 공화당에게는 불모지와 같았던 텍사스에 일찍이 자리를 잡아서 정치적으로 성공했다. 즉 고향을 절묘하게 바꾸어서 공화당원 부자(富者) 부자(父子)가 모두 대통령이 된 것이다.
    록펠러 가문에서 대통령직에 가장 가까이 갔던 넬슨 록펠러는 정당도 잘못 택했고, 고향도 잘못 택해서 뉴욕 주지사와 부통령을 지내는 데 그쳤다. 재벌 가문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억지로라도 ‘진보 행세’를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던 넬슨 록펠러는 공화당내 ‘진보파’ 노릇을 해서 뉴욕 주지사와 부통령이 됐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만일에 그가 민주당을 택했거나 텍사스 주지사를 지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빈한한 가정 출신으로 변변치 못한 대학을 나오고 그저 그런 영화배우였던 로널드 레이건은 ‘부자 정당’이라는 선입견이 있던 공화당에게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 레이건은 표리부동이 없는 사람이었고, 동성애 마약 매춘 같은 것을 천성적으로 싫어했고, 낸시 여사만 사랑했고 외도라는 것을 몰랐기에 ‘보수주의자’로서 ‘퍼펙트 스톰’이었다. 아버지는 밀주(密酒)와 주식 사기로 떼돈을 벌고 아들 형제들은 성적(性的) 방탕이 극에 달했던 케네디 집안과 레이건은 이 점에서도 비교된다.

    진보 지식인의 ‘위선’이 보수주의를 탄생시켰다

    돌이켜 보면 ‘리무진 진보’식의 위선 때문에 미국에 ‘보수주의’라는 정치철학이 탄생했다. 예일 대학을 나온 윌리엄 버클리 2세는 모교 교수들의 좌편향과 위선, 그리고 무신론(無神論)을 고발하는 ‘예일에서의 신(神)과 인간’을 펴냈는데 그것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유명해졌다. 부유한 집안 출신인 그는 사재를 털어 ‘내셔널 리뷰’라는 보수평론지를 창간했고, 이렇게 해서 지적 운동(intellectual movement)으로서의 보수주의가 시작됐다.

    매력적인 여성 보수논객 앤 코울터와 로라 잉그레이엄은 아이비 리그인 코넬 대학과 다트머스 대학을 다니면서 “진보 교수와 진보 학생회의 위선에 분노해서 보수주의자가 됐다”고 자신들이 낸 책에서 밝혔다. 아이비 리그의 ‘리무진 리버럴’이 이들을 ‘보수 스타’로 만든 셈이다. 폭스 뉴스의 빌 오라일리, 정치토크 쇼의 스타인 러시 림보와 숀 해니티의 말에는 아이비 리그와 UC 버클리에 대한 경멸이 녹아 있다. 이들은 이런 일류대학 출신들이 위선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오라일리는 이름도 없는 작은 대학을 나왔고, 림보와 해니티는 대학을 중퇴했다. 러시 림보가 “저 자식들은 뉴욕타임스를 읽는다 말이야”하고 내뱉는 말이 보통 미국인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아이비 리그와 버클리를 나온 엘리트들이 대중과 멀어져서 자기들만의 세계에 살기 때문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나는 내년 총선은 ‘MB 심판’이 테마가 될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것은 시의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강남 좌파’니 ‘분당 우파’니 하는 이야기를 해서 몇 자 적어 보았다. ‘리무진 리버럴’과는 조금 다른 뉘앙스를 갖는 것이 ‘샌프란시스코 리버랄’이란 용어인데, ‘강남 좌파’는 ‘리무진 리버럴’ 보다는 ‘샌프란시스코 리버럴’과 의미가 더 가깝지 않나 한다. 이에 대해서 다음에 소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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