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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춘 17대 국회의원)
얼마 전 평소에 아끼는 대학생 K군이 문자메시지로 내게 질문을 보내왔다.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세칭 명문대 졸업반인 K는 요즘 20대 다수의 모습과는 다르게 민주주의와 정의의 문제에 골몰하면서 사회참여의식이 강한 청년이다. 그런 그에게 한 친구가 잔뜩 비꼬아서 비난을 했나보다. “너는 강남에 살고 외고-명문대를 나와 앞으로도 그런 연장선의 인생을 살 것이면서 그 기득권과 안락함은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 사람들의 마음까지 얻고자 위선적으로 민주, 정의, 평등 따위의 가치들을 주장하는 것 아니냐? 더 큰 명예와 부를 얻기 위해서...” 대략 이런 요지의 비판에 당혹스러웠다는 자칭 강남좌파 K군은 자신에 대한 돌아봄과 함께 정치인들, 특히 야당 정치인들은 어떤지를 물었다. 즉답으로 간단히 대답할 수는 없는 문제다 싶어 생각을 정리해 내 블로그에 올려놓으마고 약속하고서는 이제야 답을 하게 되었다.
글쎄, 어떨까? 우선 K군에 대해서만 말해보자면 그의 사회정의 지향성이 무슨 위선이나 대가 추구 때문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가뜩이나 성공을 위한 스펙쌓기를 중시하는 현 세태에서 그는 이른바 스펙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시간을 많이 쓴다. 작년 말에는 시험을 앞두고도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접질 않고 인터넷 공간에 글을 많이 올리고 하더니 그만 로스쿨 시험에 낙방하고 말았다. 작은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정의감과 변혁에의 열정은 젊은 청년의 고유한 특성이다. 이미 그 시절을 거쳐온 나로서는 그러질 못하는 다른 청년들이 문제이지 K가 위선적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아직도 학생인 사람에게 그런 열정이 무슨 명예와 부를 가져다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아쉽게도 이 경우는 K군과 상황이 전혀 다르다. 직업적 정치인들은 대부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위선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아니, 위선적이어야 한다. 정치인은 무대 위에 올라간 배우처럼 요구되는 선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선하지 않더라도 애국, 민주주의, 사회정의, 민생우선 등 선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선거에서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치인 중에는 공천을 얻기 위해, 그리고 당선을 위해서 심지어 위에서 요구하는 위악적인 언행마저 서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하물며 선을 표방하는 말이야 무슨 말을 못하랴. 하지만 공개된 정치인의 말은 그의 진심 여부와는 상관없이 지켜져야 하는 것으로, 번복하면 안되는 것으로 구속된다. 그것이 정치이다. 그래서 정치는 정치인의 인격과 상관없이 약속의 경쟁, 진실의 경쟁 양상을 띠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심판하는 것이 국민의 몫이고, 좋은 심판은 좋은 정치를 갖게 된다.
K군이 궁금해 했던 것은 주로 지금 야권의 정치인들인데 아무래도 이들은 개인사적으로나 철학적으로 한나라당 정치인들에 비해서 민주주의, 사회정의 등의 가치에 더 헌신적인 사람들이 많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당에 있느냐 하는 것이 진실성의 절대 지표는 되지 못한다.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고 더욱이 결정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때 진실과 정의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느냐 하는 물음을 던진다면 그 대답은 참으로 어려워진다. 아마도 대부분의 정치인은 그러질 못할 것이다. 다만 일부의 정치인은 다를 수도 있다. 국회의원이, 대통령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 그들은 보다 진실될 수 있다.
K의 질문 속에 포함됐던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의 최근 행보도 마찬가지다. 서울이 지역구인 그의 행동이 소신있고 개혁적인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이 내년 총선에서 보다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의 발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슨 거창한 이념이 아니더라도 절차적 민주주의와 타협의 가치에 대한 신념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초선의원으로서 겪었던 국회의 정치문화에 근본적인 회의가 들어 당내에서의 정치적 불이익을 각오하고 그런 소신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진실이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격적으로 완벽하지 못하다. 그래서 욕망을 추구하는 본능과,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이성의 양면을 모두 갖고 있다. 이중에서 인간사회를 보다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힘은 욕망보다는 정의를 권장하는 사회적 노력이다. 정치는 그것을 제도화한 것이지만, 정치 이전의 인간 개개인도 그것이 바람직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K를 비판한 그의 친구는 철저하게 속물적이고 또 비현실적이다. 기득권층이면 오직 자기 욕망에 충실하게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성자처럼 살아가야 하는가? 둘 다 답이 아님은 자명하다. 아무리 기득권층이라도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나누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문명사회의 요체인 것이다. 그런 강남좌파가 많은 나라가 좋은 선진국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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