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무슨 위원회

    칼럼 / 안은영 / 2011-06-13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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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봉승 극작가
    (신봉승 극작가)

    민간단체 같기도 하고, 정부의 산하단체 같기도 한 무슨 무슨 위원회가 새로 발족하였는데 아무개가 위원장으로 선임 혹은 발탁되었다고 전할 때면 대개가 <장관급>이라고 그 이름 밑에 부연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고, 또 발탁된 사람들의 이력은 장관 출신도 있고 또 더러는 무슨 단체장을 했거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한 사람들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하도 잦은 일이라 대통령이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있거니 하게 되고, 더러는 되게 관운이 좋은 사람들이구나 하는 감탄도 나오게 되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저 그러려니 하는 무딘 생각을 하면서 지냈는데 며칠 전 ?동아일보?의 사설을 읽으면서 아, 그게 아니라 심각한 병폐로구나 하고 새삼스러운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 사설의 한 부문을 인용해 본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제 “1년에 한 번 회의하는 위원회라면 만들지 마라”며 “실제 일을 할 수 있는 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국무총리실 산하에 위원회가 41개나 있다는 말을 듣고 “총리실이 위원회 집합소도 아니고…”라며 “총리가 끼고 장관 여러 명 끼는 것보다 민간단체가 중심이 돼서 하는 것이 좋다”는 개선 의견을 내놨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출범 당시 364개였던 각종 위원회가 임기 말 416개로 늘어났다. 한나라당은 야당 시절 노무현 정부를 ‘위원회 공화국’이라고 비판했지만 현 각종 위원회가 15개 늘어나 431개로 집계됐다. 중앙민방위협의회를 비롯한 11개 위원회는 이 정부 출범 이후 한 번도 회의가 열리지 않았는데도 정리되지 않고 있다.

    이런 적폐가 왜 가시지 않고 날로 더해지는가. 그러고 보니 나도 이런 불합리한 일들을 겪어 본 당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5년, 나는 <공연윤리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일이 있다. <공연윤리위원회>는 정부의 일을 대행하는 민간 위원회지만 위원장과 부위원장의 임기는 3년이었고, 그것은 법률로 보장된 임기였다.

    부위원장 노릇을 한지 꼭 1년 만에 임기 3년의 위원장이 전격 교체되면서 하는 업무와 전혀 사관이 없는 분이 새위원장으로 부임하였다. 나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전임 위원장이 일신상 사정으로 사임을 했다기에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였는데, 나중에야 알았지만 사임을 강요하는 압력을 견디지 못한 결과였다.

    새로 부임한 위원장도 꼭 1년 만에 또 교체되었다. 전임 위원장과 꼭 같은 사정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위원장의 이름이 통고되어왔다. 공교롭게도 나와는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었지만 그 친구 역시 <공연윤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기에는 여러모로 부적격한 사람이었다. 부위원장 임기 3년 중에 세 사람의 위원장을 모셔야 하는 불합리를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법률로 보장된 임기를 1년을 남겨두고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정부에서는 위원장 후보를 다른 사람으로 교체한다면 사임의사를 철회하겠느냐고 타진해 왔다. 차원이 다른 얘기였다. 위원장의 임기 3년은 법률로 보당된 것인데 그렇게 바꿀 수 있느냐는 항변이 계속되는 데도 부위원장의 사표는 수리되지 않는 채 시간만 흘리다가 결국 어영부영 부위원장의 임기 3년을 채우고야 물러나게 되었다.

    <공연윤리위원회>는 누구의 편의를 위해 임시로 만들어진 기구가 아니라 정부의 업무를 대행하는 공식기구임에도 불구하고 3년 임기의 위원장을 1년마다 한 번씩 갈아 치는 것은 그 정부의 출범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보은하는 차원의 관행으로 치더라도 업무와 무관한 사람을 지명하는 것은 큰 병폐가 아닐 수가 없다. 그런 몰상식한 병폐가 그로부터 대통령이 세 번 바뀌었는데도 아직 건재하다면 참으로 한심한 나라가 아니고 무엇인가.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431개나 되는 무슨 무슨 위원회 중에서 1년에 단 한 번도 회의를 하지 않는 위원회가 부지기인데도 아무런 조처가 없다는 것은 국정의 난맥이 분명하다. 대통령만 해도 그렇지, 있으나 마나한 위원회라면 해체하면 그만인데 이러쿵 저러쿵 말만 하고 있는 것도 딱하기 그지없다. 쌓여진 적폐를 끊어내지 않고서는 <공정한 사회>가 이루어질 까닭이 없지를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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