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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지금 한반도 정세는 최악의 상황이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6.15 정신은 작금의 파탄지경의 남북관계 앞에서 무색하기만 하다. 남북의 내밀한 비밀접촉을 공개한 북한이나 이를 한사코 부인하면서 진실게임에 나서고 있는 남한은 이제 다시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남북관계 개선과 민족화해의 증진이라는 6.15 정신이 무력화되면서 급기야 한반도는 남이 나서서 한반도 평화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한반도 정세의 주인인 남과 북이 상호 적대와 극한 대결을 지속하게 되면서 오히려 한반도 평화는 미국과 중국이 우려하고 관리하는 기이한 상황에 놓여 있다.
지난 해 연평도 포격 이후 남과 북이 군사적 대응을 맞교환하면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로 치달았고 미중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양측의 냉정한 자제를 요구했다. 중국은 연평도 포격 이후 최고조로 달한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중대발표를 통해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를 제의했고 남북 양자에게 평화적 해결을 주문했다. 미국 역시 남북의 극단적 대결 행위가 예상 밖의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사격 재강행 직전 주한 미국대사와 주한미군 사령관이 청와대를 전격 방문한 사실은 잘 알려진 일이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이명박 정부의 사격훈련에 대해서는 오히려 유엔안보리가 나서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연평도 포격과 이후 남북의 강경 대응을 목도하면서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적 우려를 갖게 되었고 결국 2011년 1월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G2 국가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가장 핵심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미중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개선되지 않았고 아예 남과 북은 대화재개의 실낱같은 희망마저 스스로 포기한 상태다. 이제 한반도 평화는 우리가 아닌 외부의 걱정거리가 되었고 우리의 노력이 아닌 남의 노력이 강조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직후 중국의 국방부장은 ‘북한에 모험을 하지 말라고 중국이 촉구하고 있다’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중국의 대북 노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1년 사이 세 차례 방중이라는 이례적인 북중 밀착관계는 북한에게 중국의 지지와 지원을 제공해주는 반면 중국에게는 북한의 추가 도발과 군사적 모험행위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위기조성 행위를 중국이 온갖 방편을 동원해서 막아내는 형국이다.
중국이 북한을 자제시키고 제어하고 있다면 이명박 정부의 과도한 대결정책과 전쟁불사의 강경기조는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관리해내는 모습이다. 지난 해 천안함 사태 이후 이명박 정부는 대북 심리전 재개를 발표했고 이에 대해 북한은 조준격파를 공언하면서 한국군이 비무장지대에 화력을 증강하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해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이 긴장으로 고조시키는 과도한 조치라며 우려를 전달했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지기도 했다. 남북간 군사실무회담이 천안함 사과 문제로 결렬되자 미국과 중국이 나서서 남북 비핵화 회담과 북미 회담을 거쳐 6자회담을 재개하는 이른바 ‘3단계 프로세스’의 대화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사실 남북의 대화부재 상황이 한반도 긴장고조에 기여할 것이라는 미중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었다. 남북관계가 파탄나고 최악의 대결상황으로 일관하면서 어느새 우리의 평화마저 남들이 우려하고 걱정하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미중의 한반도 평화에 대한 우려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북관계는 최악이고 그로 인해 우리의 평화는 언제라도 위협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남측은 제2의 연평도 사태 발생시 단호한 응징과 전쟁불사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창설해 군사태세를 강화했다. 북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할 경우 조준격파를 하겠다고 공언하는가 하면 시민단체의 대북삐라 살포에 대해서도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지역에 전면 격파하겠다고 강조했다. 남측에서 김부자 사진을 사격 표적지로 삼은 것에 대해서는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직접 전면적 보복행동에 돌입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최근 ‘무찌르자 북괴군, 때려잡자 김부자’ 구호를 강조한 남측 일부 군부대의 과잉충성에 대해 북은 즉각 최고 존엄을 모욕하는 중대한 도발행위로 규정하고 인민군 최고사령부 성명과 함께 이례적으로 정부 대변인 성명까지 내놓음으로써 북한 전체 차원에서 이 문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을 시사하고 나섰다. 일촉즉발의 긴장상황은 결국 남측 해병대 초병이 멀쩡한 민항기를 오인 사격하는 아찔한 상황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남북의 팽팽한 군사적 긴장이 급기야 서해 상공을 지나는 민항기에 대고 총격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불상사까지 초래하고만 것이다.
지금 당장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고 있고, 남북의 적대와 대결을 오히려 미국과 중국이 걱정해야 하는 한반도 정세의 초라한 성적표는 결국 남북관계 단절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북관계 유지는 한반도 정세의 긴장 고조를 막아내는 안전판이었고 한반도 정세의 개선을 촉진해내는 촉매제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가능하지도 않은 대북 강경정책을 고집함으로써 남북관계가 완전히 망실되었고 그 결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우리의 개입력과 주도권을 외부에 넘겨주고 말았다. 남이 걱정하는 한반도 평화를 이제라도 우리가 나서서 관리해내고 정착시켜야 한다. 군사적 긴장을 일상의 평화로움으로 전환시켜내고 위협받고 있는 한반도 평화를 지켜내고 증진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해답은 남북관계 개선에 있다.
/폴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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