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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17대 국회의원)
10월6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프랑스 사회당이 새로운 실험에 착수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것은 일반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사회당 대통령 후보를 선출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되는 국민참여경선이다. 기사에 따르면 선거권을 가진 사람은 최소 1유로를 내고 좌파의 가치를 공유한다고 밝히면 누구나 후보선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 사회당은 이렇게 새로운 후보선출 방식에 200만명 정도의 시민들이 참여해 흥행을 일으켜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 힘으로 니콜라 사르코지의 연임을 막겠다는 뜻이다.
국민참여경선, 어떻게 볼 것인가?
당원 뿐 아니라 일반 유권자도 정당 후보선출에 참여하는 국민참여경선은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은 제도다. 2002년 당시 민주당이 노무현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면서 처음 도입된 이후 주요 정당은 일반 유권자 참여 비율에 정도 차는 있지만 모두 이 제도를 통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는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연방과 주 단위 선거 후보를 국민참여경선과 동일한 성격의 ‘예비선거’(primary election)를 통해 선출했으며, 1970년대 이후에는 민주·공화 양당의 대통령 후보 역시 이 제도를 통해 선출해왔다. 그렇다면 이렇게 프랑스, 한국, 미국에서 이뤄지는 독특한 제도적 실천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국민참여경선은 정당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효과를 미칠까? 그것은 개방성과 투명성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민주주의를 향한 바람직한 개혁인가 아니면 정당의 기반을 허무는 또 다른 시도인가? 민주주의는 우리가 직접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만큼이나 우리들의 사고방식에 따라 발전하는 것이라면 정당의 공직후보를 결정하는 방식 또한 따져볼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이다.
찬성의 근거
먼저 국민참여경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유권자의 직접적인 선택의 대상이자 장차 의회와 정부를 이끌어갈 후보만큼은 일반 시민의 참여로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국민참여경선을 옹호하는 근거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국민개방경선은 기존 정당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당내 기득집단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특히 한국처럼 가장 중요한 공직이자 사실상 정당의 대표로 인정받는 대통령 후보가 당 지도부의 영향력 밖에 있는 일반 유권자들의 참여를 통해 선출된다면, 그 후보의 대중적 정당성은 더욱 높아지고 그만큼 정당운영의 정당성도 높아지는 상황을 상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국민참여경선은 정당 조직의 개방성을 확대하여 정치에 관심은 있지만 당에 가입하지 않은 유권자들의 참여를 고양시킨다. 민주주의가 일반 시민의 참여를 통해 작동하는 정당체제라면 정당 밖 유권자의 참여는 그 자체로서도 가치롭거니와 그들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정책은 기존 정당의 개혁에도 자극제로 활용될 수 있다.
셋째, 국민참여경선은 한국과 같은 지역정당체제, 즉 광역단위 지역에서 정당간 경쟁이 미미한 상황에 경쟁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줄 수 있다. 물론 본 선거에서 정당간 경쟁이 활성화된 상태가 최선이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경우에는 후보선출단계에서 다수의 예비후보들이 경쟁하고 그들 각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정치경쟁의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다.
반대의 근거
이에 반해 국민참여경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제도의 지지자들이 정당활동에서 후보선출이 갖는 본원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또한 이들 찬성론자들은 후보선출의 중요성에 착목한 만큼이나 그 대안이 가져올 부작용을 고려치 않았다고 주장한다. 반대론자들의 근거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국민참여경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제도의 지지자들이 정당활동에서 후보선출이 갖는 본원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또한 이들 찬성론자들은 후보선출의 중요성에 착목한 만큼이나 그 대안이 가져올 부작용을 고려치 않았다고 주장한다. 반대론자들의 근거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개방형 후보선출제도는 민주화 이후에도 낮은 제도화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정당조직을 더욱 약화시킬 수 있다. 다른 모든 단체나 조직이 그렇듯 정당조직이 제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조직활동에 대한 참여에는 유인이 필요하고, 그들 중 특히 정당만이 제공하는 중요한 유인은 공직후보라는 지위이다. 그럼에도 당비도 내지 않고 당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은 일반 유권자가 당의 후보를 선출한다면, 당원과 대의원의 참여 유인은 줄어들고 그만큼 정당조직의 활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둘째, 개방형 후보선출제도는 당의 분열을 극대화할 수 있다. 같은 당 소속이라는 의미에서 다른 당 사람보다 이념, 노선, 정책에서 유사한 후보들이 대의원을 넘어 당원뿐 아니라 일반 유권자의 지지까지 얻고자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간 차이를 두드러지게 만들다보면, 그러한 동원경쟁은 주관적이고 감정적이며 사소한 근거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고 뚜렷한 이념ㆍ정책상의 차이를 갖고 경쟁한다면, 이 또한 그들 예비후보가 굳이 같은 당에 속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낳게 된다.
셋째, 개방형 후보선출제도는 정당이 보장하는 책임성의 메커니즘을 약화시킨다. 후보선출에서 정당 조직의 경계가 사라질 때 나타나는 현상은 정당 밖 기득집단이 영향력이 당내로 침투하는 것이다. 허약한 정당이라도 그 정당이 계속해서 선거에 참여하는 한 선거경쟁이 부과하는 책임성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쉽지 않고, 그 정당에 의해 후보로 선출된 공직자 또한 동일한 책임성의 제약 하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정당 밖 언론, 운동, 이익집단, 전문가집단과 같은 단체에게 그와 같은 책임성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들 집단과 거기서 활동하는 엘리트가 정당의 후보 선출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당과 선거를 통한 책임성은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참여경선의 가능성과 한계
위와 같이 국민개방경선은 찬반을 둘러싸고 팽팽한 의견대립을 보여왔다. 찬성론자들은 ’더 많은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정당 안팎 시민들이 아래로부터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가치를 옹호한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정당 고유의 가치와 선거에서의 책임성을 강조한다. 물론 다른 많은 제도 선택에서도 그렇듯 어떤 제도가 본원적으로 보다 더 바람직하고, 보다 민주적인 결과를 낳을지 확신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정치에서 무엇보다 분명한 진리는 제도는 그 자체로 고유한 효과를 갖기보다는 시대와 사회의 맥락과 사람들의 실천에 따라 크게 영향 받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정당정치에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번 프랑스 사회당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주목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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